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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May 25. 2022

오늘 너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는 일 없어?

또 해방일지를 보다가..

오늘 글은 지난 3일간 나에게 일어났던 '오늘 나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는 일들'이, 원했더니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이다.


5월 21일 자 해방일지 13회를 보다가, 미정이가 보고 싶은 구 사장이 삼식이에게 '오늘 너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는 일 없어? 내가 들어줄게' 하고 묻는다. 그 부분을 보는데 옆에서 남편이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너는 그런 거 없어?' 본인이 들어줄 건진 모르겠으나 물어보니 생각을 해 보았다. 음.. 난 별로 없는데. 곰곰이 몇 초 생각하니 원하는 게 문득 떠올랐다. '아 있어! 우리 유튜브 비디오 중 하나가 떡상을 해서 백만뷰를 찍거나, 내 브런치 글 조회수가 폭발하거나 ㅎㅎㅎ' 상상만으로도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그날 해방일지를 본 후, 우린 2박 3일 캠핑을 갔다. 토욜일-월요일 일정이었다. 짐을 다 싣고 출발하는데 브런치 알람이 뜬다. '시부모님께 일주일간 안방을 내어 드렸다' 글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라고. 천명을 돌파했다는 알람이 올 경우 그 뒤로 몇천 명을 더 돌파했다는 알람이 따라오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기에 이번에도 그럴까? 라며 내심 기대하고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토요일 밤, 텐트에 누었는데 '조회수가 8,000을 돌파했습니다!'가 떴고, 새로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22일에 (이틀 만에) 조회수 10,000을 돌파했다는 알람을 받고서야 브런치 알림이 조용해졌다. 알림이 오기 시작 하자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다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눈빛이 동시에 반짝였다. '앗! 내가 오늘 나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 너무 신기한데.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어제 월요일이 빅토리아 데이로 휴일이어서 롱 위켄드였다. 그래서 우리가 연간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캠핑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캠핑 트레일러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고, 텐트 캠퍼인 우리 가족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한두 개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찌어찌 두 개의 큰 트레일러 사이에 좁은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나니, 옆 가족이 인사를 한다. 엄마와 딸 그리고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있었다. 좀 있다 우리 아들이 트럭을 끌고 올 건데 혹시나 해서 알려준다며, 아들은 트럭에서 밤에 잘 거라고 했다. 그 사이트에는 이미 트럭 두대가 세워져 있었다. 원래 규칙은 한 사이트에 차 두대까지 이다. 우리도 다음날 친구 가족이 트럭을 가지고 올 예정이라 곤란했지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알겠다고 했다. 조금 후 아들이 왔고, 아들이 주차를 한 후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자기가 여기다 차 댔는데 괜찮겠냐고, 혹시 싫으면 캠핑장 입구에 공터에 주차해도 된다고 한다. 우린 다시 한번 음..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내일 친구 차가 오면 서로서로 좀 양쪽으로 붙여서 주차하면 우리 친구 트럭도 중간에 비집고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면 그때 가서 그 아들에게 차 좀 빼 달라고 하지 뭐 했다. 다 즐기자고 온 캠핑장에서 서로 기분 상하지 않고 각자 즐기다 돌아가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다 조금 후 처음 본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남자였는데, 그 사람이 왔을 땐 옆 트레일러엔 아무도 없을 때였다. 남자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자기 옆자리에 텐트를 가까이 친 우리 사이트를 쳐다보고 뭐라고 혼잣말을 한다. 들리진 않았지만 뭔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은 바이브가 느껴졌다. 흠.. 곤란하군. 첫인상이라는 게 있지 않나. 소심한 인사도 했는데 들리지가 않았는지 무시당하고 나니, 내일 우리 캠핑장에 놀러 와서 하루 자고 가기로 한 친구 가족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이트가 매우 좁다고 미리 알려줘야 하나.. 고민되었으나 멀리서 벌써 출발하기로 한 가족에게 도착 전부터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요일 밤, 속으로 내일이면 우리가 말하기 전에 차 한 대가 빠져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오늘 나에게 일어나면 좋겠는 일 두 번째를 마음속으로 잠시 생각해보았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옆에 기분 나쁜 바이브를 풍기던 남자와 나머지 가족들이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뭘 먹었는지 갑자기 토를 하기 시작했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밖에다가 하라고 트레일러 문을 열고 다 함께 뛰쳐나왔다. 토를 한 것 같고, 남자가 뭐라고 뭐라고 괜찮다고 처음엔 그럴 수도 있다고 달래면서 말을 건네는데 엄마가 말 걸지 말고 그냥 두라고 잔소리를 한다. (뭐가 처음이라는 거지? 어려 보이던데 술을 처음 먹었다는 건가? 설마 대마초나 마약을 한 건가? 별별 상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은 피곤에 곯아떨어졌고, 남편도 잠들었고 나는 바로 옆에서 너무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잠들지 못하고 생생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상상을 하면서 핸드폰도 켜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남자가 자꾸만 그냥 두라는 여자의 말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더니 트레일러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한 것 같고, 여자는 다시 잔소리를 했다. '제발 토 좀 밟지 말아 줄래? 밟지 말라고! 내 말 안 들려?'

남자는 말한다. '뭐 어쩌라는 거야? 나 좀 내버려 둬! 그리고 밟지 않았거든?'

'아니야 너 또 밟았잖아! 제발 밟지 말라고!'

이쯤 되니 더 이상 토가 문제가 아닌 듯했다.

'제발 좀 그만 뭐라고 할래? XX (쌍욕) 내가 여기 있는 게 그냥 싫은 거지? 내가 갔으면 좋겠는 거지? 알겠어 내가 가면 될 거 아니야!!' 하더니 자기 차로 가서 문을 꽝 닫는다.


난 가만히 누워서 아.. 여기 캠핑 관리자에게 신고를 해야 하나.. 아 근데 전화번호를 모른다. 싸움이 커지면 곤란한데.. 갑자기 텐트에 있다가 나가볼 수도 없고.. 곤란했다. 이럴 땐 내가 자고 있는 이곳이 한없이 연약한 천 쪼가리 텐트가 아니고 튼튼한 캠핑 트레일러라면 좋을 것 같았다.


조금 후, 남자가 차문을 박차고 다시 나오더니 내가 가긴 어딜 가냐고 너네가 나가라면서 트레일러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여자는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XX 제발 거기 좀 밟지 말라고!!' 나 같으면 진작에 다 치웠을 것 같은데...... 아무튼, 다시 싸움이 시작됐고 여자가 밟지 말라고 하면서 남자를 밀친 것 같다. 이제 말싸움이 몸싸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몸싸움을 남자, 여자 커플이 한다는 건 가정 폭력으로 연결되는 것이고 동성끼리 싸우는 것과는 달리 매우 큰 사건이다. 남자가 지금 너 나 건드렸냐면서 여자를 밀친 것 같고 여자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딸과 아들도 그만하라면서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이 난리 통에 우리 애들이 잘 자는 게 참 다행이었다. 이젠 잠에서 깬 남편과 나는 나가봐야 하나.. 라며 곤란한 눈빛을 어둑 깜깜한 텐트 속에서 주고받았다. 그 순간 앞집 사이트 여자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면서 여자한테 괜찮냐고 물어본다. 남자와 여자는 동시에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했다. 앞집 여자는 별일이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네가 이 여자를 때린 거 아니냐면서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했다. 싸움을 하던 커플은 갑자기 굉장히 당황하면서 아니라고 진짜 괜찮다고 경찰은 부를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앞집 여자는 굴하지 않고, '아니야. 난 경찰한테 전화할 거야. 지금' 그리고 진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제발 경찰만은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옆집이 조용히 좌절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텐트 안에서 겁먹고 있던 나는 영웅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앞집 여자는, 자기는 애들도 있고 이렇게 난폭한 환경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여자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 텐트 바로 옆에서 경찰과 통화를 했다. 장소와 본인 이름, 전화번호고, 본인 주소를 댄 후, 경찰의 질문에 대답을 이어갔다. 무기는 없어 보인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걸 봤다. 상황이 안 좋으니 어서 와 달라. 나는 아.. 이젠 진짜 나가봐야 하나? 지금 나가면 상황 정리될 때까지 나가 있어야 할 텐데.. 역시나 난 가만히 있는 쪽을 택했다. 이쯤 되니 주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다 괜찮은 건지 수군거렸다.


정말 경찰을 부른 여자를 보고, 머리채를 잡혔다던 여자는 신고한 여자를 원망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호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캠핑장을 큰길에서 들어오려면 15분은 걸린다. 한 20여 분이 지났을 때 경찰이 도착한 것 같다. 남자에게 질문을 하는데, 남자는 딱 잡아 땠다. '맹세코 여자를 건드리지도 않았어. 우린 그냥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온 것뿐이야'라고 한사코 부인했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자가 자리에 없으니 남자랑 대화를 하던 경찰 두명중 남자경찰이, 알겠다면서 오늘 밤은 그냥 돌아갈 테니 조용히 있다 가라고 한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냥 간다고? 진짜? 과연 경찰이 돌아가고 조용할까 저 가족이? 같이 왔던 여자경찰은 계속 남자에게 날카로운 톤으로 질문을 해 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여자를 때리지 않았는지, 뭘 먹었길래 정신이 없고 말이 어눌한지 등.

그때 남자경찰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 짐작으론 상사가 아닐까 싶다. 통화를 마친 경찰은 태도를 바꿨다. 너를 여기 두고 갈 수 없으니, 너네 집으로 데려다주던지, 근처 호텔에 내려주던지 하겠다 했다. 남자는 그 제안을 싫어했다. 경찰은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자기에게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오라고 했다. 결국 남자는 수갑을 채워 경찰차에 타게 되었고 그렇게 사건은 일달락 되었다. 새벽 1시쯤 됐을까. 어떤 남자가 와서, 경찰에 끌려간 남자가 두고 간 차를 가져갔다. 결국 차가 하나 없어졌으면 하는 내 바람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에게 어젯밤에 내가 바라던 우리 친구 차가 오기 전에 옆집 사이트에 차 하나가 줄었으면 좋겠다던 내 바람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다. 하.. 그래도 라이브로 남의 집 가정 불화를 듣고, 누가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해서 한 명을 데려하고 하는 걸 경험한 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일요일 아침은 평화로웠다. 옆집도 우리가 떠나온 월요일 아침까지 조용했고, 일요일 오전에 놀러 와서 하룻밤 같이 보낸 친구 가족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캠핑장에서 이렇게 소란스럽게 싸움하는걸 본건 처음이었다. 아니 캐나다 이민 22년 동안 누가 내 앞에서 이렇게 싸우는걸 본건 (들은 건?) 처음이다. 신고 정신이 투철한 앞 사이트 여자가 아니었다면, 물론 내가 나서기 전에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나섰겠지만, 난 텐트 안에서 내적 갈등을 하다 옆집 싸움을 더 생생하고 길게 지켜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신고도 용기가 필요하고, 증인으로 나서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데 나에겐 용기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것 같아 꺼려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까지가 경찰에 도움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남은 내 캠핑 일정이 망쳐지는 게 싫어서 어떤 사건에 눈감아 버린 건 아닌지. 누군가 크게 다친 게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그 순간 무섭다고 가만히 있지 말고 용기 내서 나서야 했던 건 아닌지. 사실 그날 밤 그리고 캠핑하는 내내 또 집으로 돌아와 글로 옮기는 이 순간까지도 왜 신고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인지 생각해 본다.


오늘의 글은 지난 3일간 나에게 일어났던 '오늘 나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는 일들'이, 원했더니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였다. 브런치 글 조회수가 폭발했고, 자고나니 옆 캠핑 사이트에 차 한대가 사라졌다. 캠핑장에서 이일을 겪고 다음날 아침부터 집으로 돌아가면 이 이야기를 빨리 브런치에 옮겨야지 생각했다.


재밌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바라는 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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