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가 어제 끝났다. 이제 제주도 드라마도 끝나면 남편은 당분간 드라마를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아침 7시 10분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 남편에게 큰애 학교 준비를 시키고 부엌으로 내려왔다. 큰아이 점심 도시락을 후다닥 싸는 동안 남편이 내려와 토스트를 만들고 커피를 내렸다. 난 사과를 두 개 잘라 식탁으로 가져갔다.
둘째는 새벽 5시 반에 우리 방으로 와 아침 8시 40분까지 꿀잠을 자고 있었다.
큰 아이가 옆집 앞집 아이들과 함께 등교를 한 시간이 7시 50분이었다. 그때부터 우린 어제 막 끝난 경기도 삼 남매 이야기 뒤풀이를 시작했다.
마치 같은 책을 읽고 감상평을 논하듯이 16부작 드라마를 다 끝낸 후, 각자 느낀 점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나는 드라마가 후반부로 넘어갈 때쯤, 유튜브 리뷰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미쳐 알지 못한 내용을 짚어 주는 게 좋았다. 리뷰 영상들을 보다 보니 이 드라마가 시청률 대비 한국에서 엄청 화자 되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댓글들만 봐도 정말 어느 독후감 못지않은 느낌의 글들이 많았다.
작년에 회사를 나왔고, 20년 넘게 살던 곳에서 멀리 이사와 살고 있는 우리는 해방이 되었나? 아니면 해방이 계속되는 중인가?
우리를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회사, 사람들, 돈, 사회적 지위, 남들의 시선,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의 감정, 채워지지 않는 욕망,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다행히도 해방이 되고 싶다는 자각을 한 후, 많은 것들로부터 해방이 된 것 같다.
저 중에 일 순위로 해방이 필요했던 건 '돈'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필요한 적당한 돈이 없으면 다른 해방도 어렵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이 채워질 때까지 회사나 사업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런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 남들의 시선, 그리고 지금 당장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결핍 등을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어'가 된다는 건, 해방을 하기 좋은 조건을 셋업 하는 것과도 같다고 남편은 말했다. 다만 '돈'을 놓고 너무 열심히 노력하다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계속 '돈'만 보며 살게 되는 경우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정도면 돈도 충분하고 나란 인간도 충분하다. 이런 자각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한번 게임의 룰을 파악하고 나면 이젠 진짜 잘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고, 그럼 거기서 그만두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가질 수 있는지 나에게 맞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처음 목표했던 나에게 필요한 적당한 돈을 가지게 됐다고 해서, 난 이제 더 이상 게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남편은 마지막에 미정이가 어떻게 해방을 그렇게 금방 할 수 있었던 건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창희가 자기에게 오는 신호를 깨닫고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런 촉이 열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알아차리는 능력. 정말 대단한 거라 생각한다.
한참을 떠들다 보니 남편과 서로 '아침부터 이러고 있다~~ㅋㅋㅋ'를 얘기하며 아침식사를 마무리했다. 난 홍상수 감독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우리가 진지하게 오래 수다를 떨다 보면 그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본인들은 너무 진지하게 대화하는데 밖에서 쳐다보면 별 얘기 아닌 걸 가지고 자기들끼리 열띈 토론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적절한 비유인진 모르겠으나 나의 개인적인 느낌 이니깐. (참고로 남편은 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둘째를 남편과 함께 학교에서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노는 프로그램에 보내고 나니, 월요일 아침에 바삐 출근하던 내 지난 인생은 어디 가고 아침부터 드라마 감상평으로 한 시간이나 수다 떠는 이런 호사를 누리나 싶었다.
10년 직장생활에서의 탈퇴 후 지난 일 년은 어리바리 적응기였던 것 같고,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브런치를 '나의 해방일지'로 사용 중인 내 미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