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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Mar 25. 2023

일타강사는 아니지만, 사교육 현장에 서보다.

사진출처: https://www.shutterstock.com/ko/image-photo/pupil-boy-hi-five-teacher-classroom-1814892272


미국에 다녀와야 하는 원어님 선생님 대타로 어학원 단기 알바를 시작했다. (지난번 글에 언급한 하루 한시간 영어 선생님 알바와 다른 일이다.)

2주만 커버해 주면 되는 일이지만 난 요즘 매일 열공 중이다.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커버해야 하고, 전 수업을 100% 영어로 진행하며 과목도 영어, 토론, 과학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 없었는데 학원수업 준비가 만만치 않다.


어제 겪은 일이다. 3학년 아이들이 진도를 빨리 끝내주어 3분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그럼 단어 공부를 해도 되느냐고 물어왔다. 알고 보니 바로 다음 시간에 단어 테스트가 있었던 거였다. 우와.. 3학년이면 집에서 팽팽 놀고 있는 우리 딸이랑 같은 나이인데 시험 성적 욕심이 있는 아이들을 보니 괜히 우리 아이보다 더 성숙해 보인다.


오늘 겪은 일도 있다. 또 3학년 이야기인데, 영어 스토리를 읽기 전 숙제로 풀어야 하는 질문을 먼저 읽고 답은 스토리를 읽어가면서 찾아보자고 했다. 한문단 읽고 질문에 답 힌트를 찾아 하이라이트 치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총 9문제가 끝났고 오늘의 진도도 같이 끝났는데 5분이 남았다. 아이들은 숙제로 적어야 하는 하이라이트 쳐놓은 답들을 지금 옮겨 적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그러라고 했더니 남은 5분 안에 최대한 숙제를 끝내려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 나갔다. 집에 가서 숙제하기 굉장히 싫은 거다. 아무리 그래도 3학년 밖에 안 됐는데 공부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숙제는 책임감 있게 끝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이 어학원 아이들의 영어 수준은 지금 당장 캐나다 학교에 보내진다 해도 별문제 없이 적응할 수준이었다. 특히나 고학년으로 갈수록 아이들의 영어 능력과 학습 태도는 캐나다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쩌면 더 높을 것 같았다. 소규모 (4-8명)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내가 질문하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매번 손을 들고 참여하려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늘 아침 남편과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은 아무것도 안 해서 조급한 마음이 들진 않냐고 물어왔다. 글쎄.. 우리 큰아이는 3학년이니 내가 어학원에서 만난 3학년 아이들과 비교가 자연스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아이가 더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공부하는 능력만 놓고 본다면 학원 아이들이 더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우린 학원엔 보내고 있지 않지만, 남편이 수학 문제집을 집에서 같이 봐주고 있다. 공부시키는 건 그게 전부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니 영어로 말하고 읽기는 당연히 잘 하지만, 쓰기가 안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생활 6개월 차가 넘어가니 쓰기는 한국어가 더 편하다고 한다. 영어는 철자도 외워야 하고 규칙도 다양한데 한글은 원리를 깨치면 소리 나는 데로 못쓰는 말이 없다. 물론 받침은 많이 틀리지만...ㅎㅎ 한글은 정말 우수한 것 같다. 


2주 단기 알바가 끝날 무렵 어학원 쪽에서 혹시 더 수업을 맡아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난 이 2주 동안 살이 거의 2kg 가까이 빠졌다. 이유는 쉬는 시간이 너무 짧아 중간에 뭘 먹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이 빠져서 쬐금 좋긴 했지만, 거의 못 먹어서 빠진 것으로 힘도 같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수영시간에 팔 돌릴 힘도, 요가시간에 물구나무서기 할 힘도 같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대전 유명 학원가에 위치한 학원으로 거리상 멀어서 지금은 어려울 것 같다고 조심스레 거절했다. 


엄청 긴장하고 시작한 알바였는데 또 도전하면 못할 것이 없구나.. 라는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누굴 가르치는 건 잘 못할 거라고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재밌었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는 경험도 좋았다. 그리고 신기한 건 지난 2주 동안 하루에 5시간씩 영어를 막 해댔더니 내 영어 실력도 같이 좋아진 것 같다. 은행을 퇴사하고 지난 2년간 나의 대화 상대는 남편과 아이들 이였기 때문에 한국어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번 기회에 원 없이 영어로 떠들고 왔다. 마지막까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못한다고 할까 고민했었는데, 도전하길 잘한 것 같다. 이번 일로 나도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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