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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Apr 10. 2023

나는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그렇게 바라지 못한다.

작년 9월, 22년 만에 한국에 살러 들어온 나는 아주 오랜만에 친정 가족들과 추석을 지냈다. 

치매 초기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는 연신 나에게 어디 사냐고 물어보셨다.

"그 멀리 캐나다에 산다고?" 

"뭣하러 그렇게 멀리 살아~ 한국이 좋아 한국에서 살아." 하시기도 하고,

"애들은 몇 명이야? 딸 둘이라고? 그래 요즘은 딸도 아들처럼 공부시키고 잘 키우면 되지.."라고도 하셨다. 

똑같은 대화를 100번은 하신 것 같다. 


뼛속까지 효자인 우리 아빠.

어렸을 때부터 아니 태어났을 때부터 같이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리 달가운 분들이 아니었다. 물론 두 분은 우리 형제 중 내가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나를 가장 아껴하셨지만 내 속마음은 달랐다. 효자 남편 만나 기한번 못 피고 고생만 하는 것 같은 우리 엄마가 불쌍해서, 그리고 며느리에게 다정다감하지 않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싫어서, 아무리 나를 편애하셔도 내 속마음은 그저 우리 엄마 힘들게 하는 가족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자녀 5명을 모두 키워낸 우리 엄마는 할아버지 연세 80 후반까지 모셨고, 지금은 연세 90이 넘으신 치매 초기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 다행히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는 귀여운 치매라고 한다. 말투가 어딘가 모르게 귀엽거나 공손하고 때를 쓰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조용조용 얌전하시다. 그렇지만 씻기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거나 새벽에 일어나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며 집 밖을 나가려 하실 땐 새벽잠은 다 잤다고 봐야 한다. 그럴 땐 효자인 우리 아빠는 할머니를 차에 태워 할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가서 할머니에게 '어머니, 아버지는 여기 계신데 어디로 만나러 가신다는 거예요?'라고 하신다고 한다. 그럼 할머니도 순순히 다시 집으로 들어오신다. 


귀여운 치매라도 환자 이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하루도 맘 편히 어딜 다닐 수 없고 둘만의 여행은 꿈도 못 꾸신다. 


할머니는 아빠 말고도 딸 둘이 있다. 큰고모는 일하시느라 바쁘고 막내고모는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건 본인의 능력 밖이라 생각하시는 듯하다. 마음 약한 우리 엄마와 당연히 본인의 책임이라 생각하는 우리 아빠 두 분이 정말 어쩌다가 한번 고모들에게 부탁할 때 빼곤 항상 할머니와 함께 하신다. 


한국에 들어와 언니네 가족과 여행을 몇 군데 다녔는데 엄마 아빠가 같이 가고 싶어 하시는 눈치다. 제 작년 막내 동생이 한국 왔을 때 할머니 모시고 다 같이 제주도 갔다가 집에 언제 가냐고 계속 물어보시는 할머니 때문에 여행이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세종시 우리 집에 놀러 오셨을 때도 점심 한 끼 먹고 언제 집에 가냐는 할머니 때문에 금방 집으로 돌아가시도 했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엄마 아빠를 한분씩 모시고 여행을 다니기로 계획을 세웠다. 첫 주자로 우리가 엄마를 모시고 순천과 여수에 놀러 가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전하는데 엄마 목소리가 벌써 신났다. 정말이냐고,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따로 모시고 여행을 다니겠다는 아이디어를 매우 반가워하셨다. 


할머니를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이 모시고 다닐 수도 없고 하니 생각해 낸 방법이다. 여행에 같이 못 간 사람은 '독박육아'같은 '독박돌봄'을 해야 하지만 다음 여행 차례를 생각하면 좀 더 즐겁게 혼자 할머니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이 한국 와서 우리 아빠가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진심으로 다정하게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도 받고 어떤 배움도 느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결혼을 생각할 때 여러므로 아빠 같은 남자는 안된다는 기준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빠같이 너무 효자도 안되고, 며느리에게 자상하지 않은 시부모님도 안되고, 아내를 일 순위로 챙기지 않는 남편도 안되고, 어떤 일을 할 때 아내와 충분히 상의하지 않는 것도 안되고 등등 


다행히 적당한 효자 (우리 시부모님이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자상한 시부모님, 모든 것을 자세히 상의하고, 무엇보다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남편을 만났다. 참 다행이다. 하나밖에 없었던 내 남편상 샘플에서 (아 할아버지도 있었네) 명확한 기준을 세워준 아빠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들어와 엄마 아빠가 치매 걸리신 할머니와 사는 모습을 보니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그려지도 한다. 외동아들인 남편도 우리 아빠가 다정하게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훗날 자신도 부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 저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눈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몇 년 전에 남편과 함께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의 책이 떠오른다. 미국 보스턴에 사는 외과의사인 저자는 노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의학은 사람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직 건강할 때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기계연명을 해야 할 때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얼마나 할 것인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집에 있으면서 간병인을 들일건지, 요양 병원에 입원을 할 것인지 등등을 미리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족들과도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대화를 충분히 해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우리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면 난 그렇게 못 할 것 같지만, 할머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면 더없이 축복받은 상황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치매 걸린 게 무슨 축복이라고 그런 생각을..이라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르지만, 치매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병이다. 그런데 모든 치매 환자가 우리 할머니 같은 효자와 착한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할머니 나이가 되면 본인이 가진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내가 아플 때 정성껏 돌봐줄 자식 하나쯤 있고, 끼니 되면 집밥을 맛있게 차려줄 가족이 있고 하는 게 정말 축복받은 인생의 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할머니는 가진 재산 하나 없고 평생 고생하셨지만 어느 부자 노인의 마지막 보다 더 축복받은 인생의 끝자락에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우리 아빠는 힘닿는 한 할머니를 집에서 편하게 모실 것 같으니 말이다. 


어젯밤 엄마와 통화하는데 씻기 싫다는 할머니를 반 강제로 힘들게 씻겨 드렸다고 60 중반에 엄마도 매우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엄마가 아플 때 너네들도 이렇게 엄마 씻겨줄 거냐고 물어왔다. 또 그러면서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아니야 늙어서 자식한테 짐이 되면 안 되지. 내가 건강해야 할 텐데..' 하신다. 엄마가 직접 고생하고 있으니 이 고생을 자식들에게 어찌 시키나.. 걱정이 앞서나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상상은 부모님의 마지막 5-10년을 내가 아이들 낳고 5-10살까지 키울 때처럼,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정신적으론 행복한 뭐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거다. 내가 낳았으니 책임지고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 것처럼,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니 또 사랑으로 돌봐 드려야 하는 그런 책임감 말이다. 그러면서도 남편에게 너무 우리 부모님처럼 모든 걸 직접 하려고 하지 말고, 간병인의 도움도 받아 가면서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했다. 


그때가 되었을 때 나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주어진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해 본다. 


작년 추석 때 전을 맛있게 부쳐내던 할머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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