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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May 09. 2023

37세, 여자. 더 이상 눈썹을 다듬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회사 다니며 입었던 갑옷 같았던 정장들을 처분한 지 3년이 지났다. 구두들도 이젠 우리 집에 없고, 한두 개 있던 가방도 다 누구 줘버리고 없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남편과 같이 쓰는 나이키 작은 배낭하나와 경조사용으로 남겨둔 검은 구두 한 켤레이다.


눈썹을 그냥 내버려 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시기는 3년 전 다니던 은행에 사표 쓸 때쯤 이었던 것 같다. 길게 기르던 머리를 남편이 삐뚤빼뚤 잘라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자연스럽게 '자연인'처럼 지내보자라고 생각한 게 계기가 됐던 것 같다. (한국 와서 몇 년 만에 매직하고 사람 되긴 했다.)


https://brunch.co.kr/@jennifer008/222


꾸밀 머리도 없고, 화장하고 나갈 회사도 없고, 차려입을 옷도 없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세수만 하거나 그나마 세수도 안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많았다.


오랫동안 몸에 베인 꾸미는 습관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신경 쓰는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해 주는 데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한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자라난 눈썹이 거슬렸고 옷장을 열었는데 입을 옷이 없다고 느낄 때는 쇼핑앱에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쁜 옷을 입고 뒷마당에 텃밭활동을 할 것도 아니고 걸어서 코앞인 아이 학교에 등원시킬 때 뽐낼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 옷장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몸에 편한 옷들 몇 가지로 일 년을 난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화상채팅으로 통화를 하는 시부모님은 우리를 회색 커플이라고 놀리신다. 매주 같은 또는 비슷한 회색 티셔츠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고 싶어서 극단적으로 소비를 자제했다. 이제 우린 월급이 없으니깐 먹는 거 외엔 돈을 쓰지 말아 보자라고 생각했다.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야 할 것들이 생각났다. 조금만 필요한 것 같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선 바로 '아! 이걸 사면 해결되겠는데?'라며 평상시 광고로 봤던 제품이 떠오른다거나, '지금 쓰는 이거 말고 다른 제품으로 바꿔보면 더 잘될 것 같은데?'라며 있는 물건으로 만족을 못하고 다른 걸 사고 싶어 진다거나 했다. 이럴 땐 무조건 좀 더 참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럼 자연스레 필요한 거 같다고 느끼는 감정은 점점 사라졌다.


그러다 요즘은 도저히 정말 입을 옷이 없다고 느껴질 때 하나씩 새 옷을 장만하고 있다. 엊그젠 코스트코 가서 2만 9천 원짜리 청바지를 하나 샀다. 한국 와서 8개월 만에 처음산 바지다. 지금생각해도 $30불도 안 하는 바지 하나를 사면서 이렇게 고민하는 내가 참 신기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니 이렇게 싼 바지가! 득템이네!'라며 고민 없이 집어 들었을 것이다.


처음엔 이 정도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이 또한 실험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어디까지 바뀔 수 있는지 해보자!'라고 힘들 때마다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벌써 3년이라 시간이 지나 있었다. 3년이 지나니 이젠 정말 웬만해선 심심한 마음을 쇼핑으로 채우는 일은 없다. 필요한 것만 사고, 집에 있는 물건은 또 사지 않으려 하고, 안 쓰는 물건은 틈틈이 버리거나 나눠준다. 우리 언니말이 너네가 하도 오래 쓴 것들이라 그냥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긴 했다..


눈썹을 다듬지 않는 대신, 운동하는 시간이 늘었다. 일주일에 수영 3일, 요가 2일 이렇게 나는 주 5일 운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절대 늘지 않을 거 같던 수영 실력도 늘어 어느새 초급반에서 중급반 꼴찌로 승격되기도 했다. 요가도 많이 늘어 이제 머리서기도 할 수 있다. 비록 다리를 멋있게 쭈-욱 펴진 못하지만 머리서기가 되긴 된다.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추려내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 매일 새로운 다짐이 필요한 일이지만 꾸준히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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