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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Oct 21. 2023

식당에서 같이 알바하다 결혼까지 했다

남편과 나는 식당에서 알바하며 만났다. 그 당시 나는 작은 한인 동네에 소문난 알바의 여왕이었다. 학기땐 일주일에 3-4일 정도 일했고, 방학땐 4-5일 정도 일하며 지냈다. 알바의 종류도 다양했다. 미용실 보조, 정수기 판매원, 화장품 판매원, 식품점 캐쉬어, 문구점 캐쉬어, 시식 도우미, 베이비시터, 식당 서빙, 마지막으로 대학교 안내데스크 알바까지 종류와 기간도 참 다양했다. 


5남매 중 둘째인 나는 어른이나 고등학생이나 상관없이 최저시급을 주는 캐나다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열심히 일하면 엄마, 아빠와 똑같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식구가 많은 우리 집에서 용돈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나와 언니가 알바를 해서 부모님께 생활비에 보태라고 드리던 시절이었다. 내가 생계형 알바생이었다면, 남편은 순전히 체험형 알바생이었다. 외동아들인 남편은 돈을 꼭 벌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사회경험도 할 겸 본인 용돈번다 생각하고 일을 하게 된 경우였다. 


그렇게 남편이 내가 먼저 일하고 있던 식당으로 오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20살이었다. 그해 나는 또래보다 2년 늦게 대학을 입학할 예정이었고, 동갑인 남편은 내가 가게 될 학교에 이미 2학년을 마친 상태였다. 우린 같은 식당에서 또래들과 함께 일을 하며 일이 끝난 후 자연스레 근처 노래방을 가거나 호숫가로 드라이브를 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 남편은 눈에 띄게 노래를 참 잘 불렀다. 자연스레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식당알바 두 달 만에 우린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다. 우린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연애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긴 했지만, 공부를 핑계로 자정이 넘어서 까지 함께 있는 날이 많아졌다. 


식당 알바는 대학을 들어가며 두세 달 만에 그만두었고, 우리의 연애는 식당에서 학교 도서관으로 옮겨갔다. 우린 대학생활 5년 내내 함께 붙어 다녔다. 아침에 눈뜨면 통화하고 학교에 같이 가고, 점심, 저녁을 함께 먹고,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고, 서로의 친구들을 함께 만났다. 


지금은 그때의 5년이 전부 뚜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갔던 첫 1박 2일 여행이라던지, 추운 겨울에 남편 부모님 차에 히터 켜놓고 사랑을 속삭이다 배터리가 방전되었던 추억들은 기억난다. 외롭고 힘들 뻔했던 나의 이민생활 초반에 남편을 만나건 '나에게 찾아온 엄청난 행운이었다'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우리 가족이 자주 보는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하는 사랑의 노래가 내 심정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당신과 사랑에 빠진 건 분명 어릴 적에 나도 모르게 착한 일을 해서 일거야'라는 가사가 딱 내 마음이다. 


20살에 만나 25살에 결혼을 했고, 이제 40살이 멀지 않았으니 인생의 거의 절반을 남편과 함께 했다. 우린 인생에 많은걸 함께 보았고 경험했다. 대학교 1학년 신입 때 첫 시험을 낙제하고 절망했던 기억, 졸업 후 결혼 날짜는 잡혔는데 취직이 되지 않아 마음 졸였던 시간들,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하고 함께 싸웠던 기억, 우리의 사랑스러운 두 딸아이들, 그리고 같은 날 퇴사했던 순간들 까지 남편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시간들이다. 


남편을 떠올리면 20살에 우리부터 지금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함께 고민하고 내렸던 수많은 선택들도 함께 생각난다. 이 사람과 찐한 사랑을 몸과 마음 바쳐해 보겠다는 선택, 대학 졸업하자마자 학자금 빚은 산더미였지만 25살에 바로 결혼하겠다는 선택, 토론토에 있는 회사를 퇴사하고 비행기 5시간 걸리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캐나다 서쪽 끝으로 이사 가겠다는 선택, 그리고 또 한 번 지구 반대편에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한국학교에 보내겠다는 선택을 할 땐 인생에 매번 둘도 없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이었지만 함께여서 두려움을 이겨내며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모든 선택들엔 그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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