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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Oct 29. 2023

어디서 살고 싶은지 발견했다

“딱 한 군데만 더 들렀다가 가자.” 남편이 말했다. 이제 그만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하루 만에 익숙해진 렌터카를 몰고 남편이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론 전날 본 7개의 집들과 아침에 본 3개의 집들을 떠올려 보았다. 가격도 다양했고 집들의 위치와 모양도 다 달랐다. 어떤 집은 지은 지 25년 되어 가격이 가장 싸면서도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또 어떤 집은 이제 막 공사를 끝낸 세련 됐지만 비싼 새집이었다. 또 어느 집은 산 중턱에, 어느 집은 강 근처에, 그리고 어느 집은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내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는지를 떠올리며 각 집들의 장단점들을 정리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아이들을 시댁에 하룻밤 맡기고, 남편과 몇 달을 모니터로만 살펴보던 낯선 도시를 일박이일로 염탐하러 왔다. 이곳은 우리가 20년 살던 토론토에서 서쪽으로 5,000 km나 떨어진 곳이고, 비행기를 5시간이나 타고 와야 하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긴 하지만 우리가 정말 여기로 이사 올 수 있을지 판단하려면 직접 두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쪽으로의 이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코로나와 <<이웃집 토토로>> 때문이었다. 강제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는 중이었고, 재택근무를 하는 이상 인터넷만 된다면 집값이 싼 곳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우리가 이사를 꿈꾸는 비슷한 시기에 지브리 스튜디오 만화영화가 넷플릭스에 대거 올라왔다. 강제 집콕 중인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모여서 <<이웃집 토토로>>를 봤다. 그 영화엔 사츠키와 메이라는 어린 자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딱 그 당시 우리 딸들 같아 보였다. 아픈 엄마의 병원과 멀지 않은 시골로 이사 온 가족이 숲의 요정 토토로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이 이사 온 집은 거의 쓰러져 가는 시골집이었고 집 주변엔 커다란 나무가 있는 숲이 있었다. 구불구불 시골 논밭을 지나면 나오는 집이었다. 여름이면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고 비를 맞은 모든 식물들은 초록이 더욱 짙어지며 한 뼘 더 성장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도 계절을 만져볼 수 있고 날씨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사츠키와 메이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연에서 뛰어놀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도 시골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봐봐. 거의 다 온 거 같아.” 남편이 다시 말했다. “지금 가는 이곳을 보면 우리가 여기로 이사를 정말 올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일박이일의 짧은 추억으로 남겨두게 될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의 말에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난 20년간 살던 토론토에선 보지 못했던 종류의 커다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과 내가 손을 맞잡는데도 잡히지 않을 것 같은 기둥과 아파트 7층 높이는 더 되어 보이는 높이의 나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호수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였다. 작은 바다같이 큰 호숫가를 끼고 만든 도로였다. 창문을 내려 햇살에 반짝거리는 눈부신 호수를 바라보았다. 마법에 홀려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듯 호숫가 가장자리를 드라이브하며 만난 어느 공원에 차를 세웠다. 눈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광경을 바라보며 물 앞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버렸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 후, 사츠키와 메이 같은 두 딸에게도 이 호수를 소개해 줄 수 있게 되었다.



<Canada, BC 주에 있는 Cultus Lak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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