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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Nov 13. 2023

봄이 나에게 왔다

캐나다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임신 과정 내내 받는 검사의 빈도수와 정확도에 있을 것 같다.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줄을 확인했다면 가까운 가정의한테 가서 산부인과 전문의를 배정받게 된다. 그렇게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날 때쯤 되면 임신 8-12주 사이가 되어 있다. 의사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아이를 낳을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게 되는데, 만나서 크게 검사하는 건 없다. 매번 소변검사와 산모의 몸무게를 측정하고, 의사는 손바닥만 한 심장박동수 측정 기계를 들고 들어와 태아의 심장 박동수를 확인하고 배가 커질수록 줄자로 배 크기의 사이즈를 가로와 세로로 측정한다. 한국에 사는 엄마가 그래서 태아는 얼마나 크냐고 물어보는데, 그런 건 모른다고 하니 엄청 황당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한국은 태아의 머리 크기나 키, 예상 몸무게까지 알려주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했다.


내가 살던 토론토에서는 임신 중 초음파 검사를 대략 3번 정도 받게 된다. 임신 초반에 하는 검사는 대략적인 출산 예정일을 확인하고, 두 번째 검사에서는 성별을 알게 되고, 마지막 검사에서는 출산 전 태아의 자세등을 체크한다. 그날도 차가운 초음파용 젤을 배 위에 바르고 캄캄한 방에 누워 초음파 전문가와 별말 없이 어색하게 검사를 받았다. 별말이 오가지 않는 공간에서도 모든 게 괜찮다는 힌트를 얻으려 열심히 검사자의 표정을 살피게 되는데, 그날따라 검사자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바쁘게 초음파 화면을 캡처하는 손길에 나도 모르게 계속 눈길이 갔다. 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고, 검사자는 검사 결과는 의사와 만나 들으라며 본인은 의사가 아니고 검사만 진행하는 사람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초조한 마음을 안고 지낸 며칠 후, 의사를 만나 임신 중반쯤 하는 두 번째 초음파 검사에서 아이 손가락에 탯줄이 감겨 있는 것 같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럴 경우 그런 현상을 발견한 것과는 별개로 의사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저 별일 없이 탯줄이 다시 풀어져 성장하는 태아의 몸에 영향을 끼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게 아닐 경우 탯줄이 너무 타이트하게 손가락을 감을 경우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들을수록 절망스럽기만 한 의사의 설명이었다. 의사는 거의 울기 직전인 나를 보며 그런 경우는 극소수로 드물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예전엔 기계가 정교하지 않아 몰랐을 얘기를 본인도 발견했기 때문에 말해줄 수밖에 없다면서 전해주기 힘든 소식을 전해야만 하는 본인의 입장도 전달했다.


그러면서 탯줄이야기와 더불어 심장 쪽에 밝은 빛이 관측되는데 보통은 별 문제가 없지만 매우 적은 확률로 다운증후군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태아 심장 쪽에 발견된…”이라며 시작한 문장 때문이었다. 남편은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선천성 심장 질환으로 여러 번의 수술 끝에 아이가 6살 때쯤에 마지막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다운증후군과 심장 이상은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만나 본 적 없는 남편의 여동생이 떠오르며 혹시나 우리 아이도 심장이 안 좋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자연스레 찾아왔다.


그렇게 임신 내내 3번이면 되는 초음파를 큰 종합병원에 가서 어린이 심장 전문의까지 만나가며 매달 진행하게 되었다. 그 사이 탯줄은 다행히 자연스레 정리되어 아이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종합병원 의사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면서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막달까지 꾸준히 초음파 검사는 받으러 오라고 했다. 


그때의 열 달은 엄마로서 뱃속에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동시에 아이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운명에게 모든 것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내려놓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잘 먹고 잘 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가려지지 않는 초조함과 별일 없을 거라며 애써 덤덤하려 노력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우리 봄이를 3월 초 어느 봄날에 만났다. 예정일 보다 8일이나 늦게 태어나 주어 겨울의 끝자락이 아닌 봄의 시작을 알릴 때쯤 초록 새싹들과 함께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와 주었다. 이제 6살인 봄은 뛰어노는 걸 좋아하고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머리 하나정도 클 정도로 쑥쑥 자라고 있다. 정말이지 우리 봄이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도 감사하고,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걸 매일 느끼고 있다. 자연스레 임신하고 또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 나의 몸을 회복하는 과정이 아무리 당연해 보일지라도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배운 시절이었다. 



태어난 지 45일쯤 된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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