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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Nov 16. 2023

나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나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남편을 스무 살에 만났는데 그전에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남녀가 사귄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덜컥 고백을 받아들인 후, 생각했던 설렘이 느껴지지 않아 며칠 만에 상대방을 아프게 했던 ,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설레는 마음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지만 몇 달도 못 가 그 친구 어머님의 반대로 헤어졌던 경험, 마지막으로 한 살 위 오빠를 일 년간 만났지만 나보다 철없는 것 같은 모습에 실망하다 헤어졌던 경험이 있다. 사랑을 했다기보단 이성과 만나는 방법을 연습한 정도의 설렘과 설렘을 지나 타인과의 관계유지에서 오는 적당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다 결국 모두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하게 되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남편과의 연애는 처음부터 뭔가 달랐다.


마지막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새로운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 나는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났는데, 내가 생계형 아르바이트생이었다면, 남편은 순전히 체험형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남편은 용돈 벌이와 사회생활 경험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9월 대학 입학을 앞두고 마지막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고, 남편은 내가 가게 될 학교를 이미 다니는 중이었다. 부족한 영어 점수 때문에 남편과 동갑이었지만 나는 2년 늦게 입학할 예정이었다. 캐나다는 수능 없이 고등학교 내신으로만 대학을 가기 때문에 마지막 학기땐 영어 수업만 여유롭게 들으면서 아르바이트를 최대한 많이 하던 때였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편안한 마음으로 남편과의 연애를 시작했고 같은 대학을 다니게 될 거라는 유대감이 더해져 우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루종일 같은 식당에서 일하고 밤늦게 가게 문 닫으면 동네 노래방에서 남편의 노래를 듣거나 호숫가에서 산책을 했다. 그렇게 자정 넘어 헤어져도 집에 들어가면 또 새벽 두, 세시까지 전화 통화를 했다. 서로 궁금한 건 왜 그렇게 많은지 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왜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끝도 없이 올라오는지 매일 신기해하며 만났다. 결국 사귄 지 한 달 만에 남편이 부모님께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 아빠 이제부터 내가 진지하게 할 말이 있으니깐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 나 은경이랑 결혼하고 싶어.” 남편이 이 얘기를 꺼낼 때 우린 사귄 지 한 달 되었을 때였고, 나이는 만으로 스무 살 때였다. 한 달 내내 만나면서 서로 정서적인 코드가 참 잘 맞는다고 느꼈다. 사실 이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은 아마 평생 못 찾을 거라 확신했다.  그 당시 젊은 남자들이 할 법한 욕을 하는 법이 없었고, 보여주기 식 치장에 무리한 돈을 쓰는 일도 없었다. 술 담배도 좋아하지도 않았고, 밤늦게까지 놀아도 다음날 해야 하는 공부는 척척 알아서 하는 스타일에 무엇보다 나에게 참 자상했다. 선물을 하나 사줘도 이쁜 것보다는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고 사주려 했다. 물론 남편은 나보다 많이 계획적이고, 목표지향적이고, 예민한 성격으로 내가 상처받을때도 있었지만, 그런 문제로 헤어지고싶다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놀란 남편의 부모님은 너희들은 아직 너무 어리니 그런 생각하지 말고 우선 잘 만나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북적대는 아홉 식구 대가족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가 커서 가정을 꾸린다면 촐하게 살아보길 원했다. 그래서 내 이상형은 외동아들이었고, 고부갈등으로 고생한 엄마를 보며 시부모님 이상형까지 있었는데 (어쩌면 남편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생각할 정도였다.), 내 시부모님은 무조건 자상하고 며느리인 나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분들이길 원했다. 어느면으로 보나 우리 부모님의 상황과는 정 반대를 꿈꿨다.


살면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결혼에 대한 내 꿈은 정말 감사하게도 이뤄졌다. 평범한 이민 가정인 남편 집에 비해 우리집이 워낙 가진게 없어서 누가 봐도 기울어진 결혼이었지만 반대는커녕 요즘 이런 며느리 없다면서 결혼을 찬성하셨다. 우린 예물 예단 없이 공평하게 양쪽 부모님께 5백만 원씩 결혼 지원금을 달라고 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니 학자금 대출이 잔뜩이었지만, 결혼은 빨리 하고 싶었던 우리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공평하게 받은 결혼자금으로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양가 부모님 선물도 사드리고, 웨딩 촬영도 했다. 그리고 신혼집은 남편이 원래 살던 방으로 정했다. 우린 그곳에서 일 년 살았고, 일 년 후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15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엔 연애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싫었다.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스무 살에 남편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고 그걸 알아차리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나니 그다음에 오는 잔잔한 시련은 헤어질 결심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잘 알아가고 맞춰가는데 필요한 과정이라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첫사랑과 결혼한 비결은 운명적으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는 것과 이 사람이 평생 내가 함께 할 사람이라 알아보고 그 인연에 올인했던 결과라 생각한다.





(앞전에 쓴 '식당에서 같이 알바하다 결혼까지 했다'를 다시 퇴고한 글 입니다. 요즘 하고있는 정지우 작가와의 글쓰기 모임에서 한 합평을 바탕으로 다시 썼습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좀 더 나아진 것 같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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