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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Nov 28. 2023

내 인생에 다신 없을 열흘

새벽 네시, 기상 시간을 알리는 차분한 종소리에 눈을 떴다. 도시와 한참 떨어진 산속 깊은 어느 명상원에서의 첫새벽이었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하늘에 별이 많이 보였다. 사방이 온통 까맣고 조용한데 그 사이로 소리 없이 분주하게 첫새벽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들렸다. 여기서 난 열흘을 지내볼 참이었다.


이곳은 <사피엔스> 책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언급했던 위빳사나 명상원이다. 평소 명상을 하던 남편이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고 위빳사나에 대해 알게 된 후, 우리가 살고 있던 캐나다에도 같은 명상원이 있다는 걸 확인하자 바로 지원했다.


사실 처음엔 명상에 점점 빠져드는 남편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십몇 년을 함께 지내 오면서 우린 ‘척하면 척!’으로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금 상황에 남편이라면 무슨 을 할지 알아맞힐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했는데, 점점 남편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편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어질수록, 왠지 사랑하는 사람이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슬퍼져 갔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명상을 끝낸 남편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열흘 명상에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을 땐 눈물이 왈칵 고이기도 했다.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정말 이러다가 산속으로 영영 들어가서 수행자가 된다고 하면 나는 어쩌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남편이 내가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았지만, 명상을 하면 할수록 차분해지고 온화해지는 남편을 보며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결국 우린 각자 다른 세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고, 각자가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남편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남편은 열흘 명상에 두 번이나 다녀오게 되었고, 이 프로그램이 명상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나도 한번 다녀오면 좋겠다고 은근히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열흘이나 명상을 할 수 있을까, 열흘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는 침묵을 견딜 수 있을까, 사실 두려움이 컸다. 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도 걱정이었고, 아직 어린아이 둘을 남편에게만 맡겨두고 다녀오는 것도 불안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새벽 명상은 옵션이고, 오전, 오후, 저녁 명상을 한 시간씩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이라고 했다. 그곳엔 핸드폰도 책이나 필기도구도 가져갈 수 없으니, 과연 내가 자유롭다 느낄 수 있을지 걱정이긴 했다.


내가 모르는 경험을 하고 있는 남편과의 관계가 내심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불안도 잠재우고 남편이 파고드는 명상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볼 겸, 열흘간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남편이 열흘 명상에 다녀온 이야기를 할 때, 아니면 명상 그 자체에 대해 설명할 때 ‘척하면 척!’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나도 열흘 명상 프로그램에 신청하게 되었고, 남편이 설명한 하루 최소 세 시간만 명상하면 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음을 바로 첫날 경험하게 되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네시, 낯선 종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에 가서 간단한 세수와 양치를 하고 강당으로 갔다. 그렇게 첫날의 새벽 명상이 시작되었다. 새벽 명상 한 시간 후, 식당에 모여 아침 식사를 했고, 오전 명상 한 시간 후, 선택 명상 한 시간이 바로 이어졌는데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탓에 점심도 먹기 전 벌써 남편이 말한 세 시간 명상을 마친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점심 먹고 또 세 시간 저녁 먹고 또 두 시간 이렇게 명상하니 첫날부터 하루 8시간을 앉아 있었다. 첫날부터 8시간 명상이라니 속은 것 같아 허탈했지만, 열흘의 시간을 채우면 나에게 어떤 내적 변화가 일어날 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떠나오기 전엔 내가 열흘을 잘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평상시 달리기 연습 한번 안 해본 사람이 마라톤을 신청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정말, 사랑하니깐 용기 내어 도전해 본 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의 명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의 열흘이 나를 명상하는 사람으로 탈바꿈시켜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명상 이야기를 좋아하고, 명상을 오래 하는 남편을 보며 우리의 관계를 불안해하진 않는다.


그걸로 나의 열흘간의 수행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https://korea.dhamma.org/ko/reference/%EC%B0%B8%EA%B0%80-%EA%B7%9C%EC%9C%A8/

전 세계에 240개의 센터가 있고, 캐나다에 5개, 한국에 1개 (전라북도 진안군)가 있습니다.

참가비는 무료이고 마지막 날에 자율적인 기부금으로 센터가 운영됩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 있을까 봐 정보 남겨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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