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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Dec 02. 2023

한참 늦었지만,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학교 잘 다녀왔니?” 매일 듣던 그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날은 5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빼곡히 앉아 시험을 보는 날이었는데, 시험이 진행될수록 난 초초함에 화장실이 가고 싶은 지경이었다. 전날 분명히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정답이 헷갈렸다. 옆을 슬쩍 보니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의 답이 보일락 말락 했다. 조금만 더 손을 움직여 주면 보일 것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옆 책상을 슬쩍 거리다 선생님께 걸리고 말았다.

학교 잘 다녀왔냐는 엄마의 질문에 실제 있었던 일과 일어났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은 내 속마음을 섞어가며 말해버렸다. “엄마 오늘 시험을 보는데 내가 옆친구 거 보지도 않았는데 (못했는데) 선생님한테 혼났어. 억울했어"라고, 내뱉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말들을 해 버렸다. 그때 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내 기억 속에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학교 공부를 어떻게 따라가고 있는지 신경 쓸 여력이 있는 학부모가 아니었다. 그냥 잘 다녀왔다고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대답할 걸, 억울하다는 나의 말은 피곤한 엄마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기 충분했다.

초등학교 입학식도 못 왔던 엄마가 다음날 바로 학교로 달려오셨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선생님과 나 그리고 엄마가 텅 빈 교실에 모였다. 엄마는 먼저 선생님께 따졌다. 어떻게 우리 애가 안 했다는데 그렇게 단정 지어서 아이를 혼내실 수가 있으시냐면서 흥분했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내가 어떻게 컨닝하다 걸렸는지 설명하지 않으셨고, 내 앞에서 차분하게 바로 사과를 하셨다. 마음이 복잡해져 왔다.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정말 잘못해서 혼난 게 맞는데..’ 이제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엄마와 선생님 사이에서 괴로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실대로 엄마에게 말하고 혼날 자신도, 선생님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할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괴로운 것도 하루 이틀뿐이었고, 어린 나는 금방 모든 걸 잊고 지냈다.

그때 먹고 사느라 바빴던 엄마는 평상시 나의 학교 생활은 잘 챙기지 못하는 학부모였지만, 억울하다는 나의 한마디에 혹시라도 내가 거짓말을 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선생님이 실수하신 거라 단정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엄마는 나의 억울함을 본인의 억울함으로 받아들였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와 나를 분리시킬 줄 알았다면 “네가 컨닝을 정말로 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혼내셨다면, 선생님께서 잘 못 보셨을 수도 있어.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거든. 하지 않은 일로 혼났으니 속상했겠지만 네가 선생님을 용서해 주면 어떨까?”라고 말했을 것 같다. 그랬다면 다음날 흥분한 채로 바로 학교로 달려가진 않았을 것 같다.

아이를 뱃속에 가졌을 때부터 좋은 부모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남편과 참 많은 대화를 했다. 난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엄마가 되길 원했다. 아이의 모든 것을 내가 경험하는 것 같은 엄마가 아니라 옆에서 기다려주고 지지해 주는 엄마가 되길 원했다. 부모가 되고 보니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거짓말을 종종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성장과정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돌아보면 내가 엄마를 선생님을 몰아붙이는 진상 학부모가 되라고 부추겼다고 생각되어 죄송하고, 엄마에게나 선생님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배신한 것 같아 죄송하고, 마지막으로 특별히 선생님이 느끼셨을 감정에 죄송한 마음이 한없이 든다. 더욱이나 이제 나에겐 그 당시 엄마와 같이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있다. 학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를 돌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으로 알게 됐다. 책으로 읽어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하루도 통잠을 잘 수 없었던 내 몸이 알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하루종일 많은 아이들을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10년 전과 같을 수 없었다. 30년 전, 3학년 때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없으니, 그때의 죄송한 마음을 담아 지금 내 아이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산다. 우리 딸아이가 이렇게 밝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건 선생님들의 사랑 덕분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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