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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Oct 16. 2023

퇴사 후 했던 여러가시 실험 중 하나, 커피 끊어보기

이 정도 돈을 모았으면 이제 얼추 경제적 자유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나는 일억이 넘는 학자금 대출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연봉이 늘어남에 따라 빚 갚는 속도에 더 집중했을 뿐, 소비하며 사는 생활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자동차는 항상 중고로 샀고, 비슷한 연봉의 친구들이 아우디, 벤츠, 비엠더블유를 탈 때 우린 남편이 학생 때 일한 돈으로 산 코롤라를 10년 타며 버텼다.


열심히 빚을 갚고, 돈을 모으고, 투자를 했다. 그리고 우린 서로 다른 은행에 다니고 있었지만, 퇴사 시기를 맞춰 같은 날 회사를 나왔다. 남편이 먼저 퇴사 결심을 했는데 취직하고 3년 만에 회사일로 우울증이 찾아와 65세까지 회사를 다니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회사를 빨리 나와야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아직 회사에 잘 다니고 있던 나를 설득했다. 어차피 우리는 돈 많이 벌어서 명품을 사거나 고가에 자동차를 사거나 엄청 큰 저택을 원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입이 발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회사를 나와 자유롭게 살아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시간이 많아지니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습관 적으로 해 오던 행동들도 돌아볼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둘이 벌다 둘 다 집에만 있으니 검소하다 자부하던 생활 습관들이 왠지 궁상맞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지금 소비를 참는 것이 검소해서 인지 실제로 생활비가 부족해서 인지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맞벌이를 할 땐 허리띠를 졸라매면 그만큼 아껴서 투자를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막상 회사 월급이 없이 비슷한 생활을 하려니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인 아이러니한 상황을 경험하게 됐다.


우린 그럴 때 일 수록, 회사를 다닐 땐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도전해 보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낮시간에 커피와 핸드폰 디톡스를 하는 행동이 그랬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그것들 없이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내 하루가 부드럽게 흘러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놓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게 되었고,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에 오는 연락도 받지 않았다. 시간이 많아지니 인터넷에서 헤매는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었는데 그런 자신을 자각할 때면 핸드폰을 내려놓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곤 했다. 새로운 읽을거리가 눈앞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심코 핸드폰을 집어드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에 반면 커피를 끊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첫날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왔다. 처음엔 왜 갑자기 머리가 이렇게 아프지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커피금단 현상이었다. 카페인에 중독되어 있는 정도가 이렇게 심했다니 새삼 놀라웠다. 그래도 버텨봤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라는 심정도 조금 있었다. 어차피 난 이제 가진 건 시간뿐이기 때문이다. 커피를 안 마시니 점점 머리도 아프고 기분도 다운되었다. 아이들에게 인내심도 줄어들었다. 평소보다 화를 자주 내는 나를 보며, 8살짜리 큰 아이가 한마디 했다.


“엄마 그냥 커피를 다시 마셔”


커피를 안 마시니 평소엔 참을만했던 아이들의 소리가 소음으로 들렸다. 싸우고, 화내고, 소리 지르고 때론 재밌게 노는 상황이지만 씨끄럽게만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였다. 내가 자꾸 화를 내고, 커피를 끊어서 그런 거라 핑계를 대니 딸아이가 한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커피 끊어보기 시도는 한 달도 못 가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뒤로도 한 번씩 커피를 끊어본다. 예를 들어 커피빈이 떨어졌을 때 바로 사지 않고 잠시 버텨 보는 거다.


퇴사 후 3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요즘, 끊었던 커피를 다시 마시듯, 잠시 쉬었던 경제 활동을 다시 하고 있다. 퇴사를 할 때는 실험 정신 마인드가 더 있었다. ‘일단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취직하면 돼!’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이 다시 취직해야 할 때 인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한국에서 남편과 영어 가르치기 아르바이트로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살고 있지만,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면 정말 정규직에 다시 취직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커피 끊어 보기는 우리 부부가 퇴사 후, 시도해 보았던 여러 가지 일들 중에 하나이다. 유튜브도 도전해 보았고, 남편은 그렇게 원하던 요가 강사도 되었고, 살던 도시, 그다음엔 살던 나라를 바꿔 보기도 했다. 여전히 회사 다니는 게 가장 쉬웠다고 생각되지만, 실패하더라도 재밌는 걸 하면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


* 이 글은 앞서 썼던 '우린 간헐적으로 커피를 끊는다'의 버젼2 입니다.


https://brunch.co.kr/@jennifer00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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