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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는 태어났고, 사업은 정지상태

쑥쑥 크는 둘째와 달리 잠시 숨 돌리기 중인 비즈니스

by 안개꽃

2018.06.20 수요일

둘째 낳기 2주 전쯤인가. 남편과 나는 갑자기 크림치즈 비즈니스를 시작해 버렸다.

상상만 하던 일을 그냥 시작해 버렸다. 자세한 사업 계획서는 없었고, 무언가 진행시킬 시간은 지금부터 6주였다. 남편 육아휴직 기간인 6주. 둘째는 예정일보다 일주일 늦게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백일이 지났다.

약 3달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작년에 쓰다만 사업 이야기를 일 년도 더 지난 2019년 11월 30일에 열어봤다.


그 둘째는 이제 21개월이 되어 있다.

우리 크림치즈 사업은 그 뒤로 몇 달 더 열심히 하다, 남편은 육아휴직 6주 후 회사로 돌아가고, 나는 갓난아기와 씨름하며 차츰 처음 시작할 때의 에너지를 잃어갔다. 그러다, 이제 그만 접기로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시작은 순서 없이 닥치는 대로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처리해 나갔다. 마지막은 좀 더 순조롭고 나름 계획적이었던 거 같다.

끝난 사업 얘기를 너무 자세히 하려니 일 년 전에 신나서 쓰던 에너지는 안 난다. 벌써 까마득해진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대략 이런 일들이 있었다.


1. 레시피 정리: 어머님께 전수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남편과 여러 번에 시행착오 끝에 어머님 맛과 가장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레시피를 만들었다.

2. 로고 디자인 의뢰: 인터넷 프리랜서 사이트로 영국에 누군가에게 맡겼다. 이 부분에 가장 돈을 많이 들인 거 같다.

3. 내용물 담을 통 찾아 헤매기: 끝내 맘에 드는 건 없었다. 그래도 환경도 생각하고 싶었고 (그러자니 코스트가 더 올라갔다), 커스텀 주문은 비쌌다.

4. Ingredient label 만들기: 식품 라벨 만들기. 음식 상품을 사면 따라오는 칼로리/영양 분석 테이블이다. 전문 연구소에 의뢰하는데 비용이 꽤 비쌌다.

5. 로고 스티커 및 포스터 프린트 하기: 동네 프린트 가게 아저씨와 꽤 친해졌었다. 한동안 신생아 바구니를 들쳐 들고 그 가게를 들락 날락 했었는데, 못 만난 지 일 년이 넘었다. 우리 로고 디자인 가격을 듣고 엄청 바가지라며 안타까워하셨었다. 본인도 그런 거 완전 더 싸게 해 줄 수 있다면서.. 아쉬웠으나 어쩌겠는가 우린 서툴렀고 이미 돈도 반이상 냈는데..

6. 식료품 슈퍼마켓 뚫기: 다행히 인맥 찬스를 사용해 두 가게는 어렵지 않았다. 내가 예전에 케쉬어로 아르바이트했던 한국식품 두 군데. 사장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더 큰 외국 체인도 시도해 봤으나, 프로세스가 너무 느렸고, 어디 본사에 드라이아이스를 특별 주문으로 넣고 Fedex로 보내는데 상품 두 개 보내는데 200불 가까이 들었다. 그러고 그 후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7. 보험 가입하기: 음식이기 때문에 혹시나 사람들이 먹고 탈이라도 나면 안된다. 충분한 보험에 가입을 해뒀다.

8. Food handler 자격증 따기: 이건 꼭 있어야 했나 싶으나, 누가 하라고 하진 않았지만 나와 성훈이는 그래도 있어야 할거 같아서 했다. 합격 편지는 뜯어보지도 않았다. 상품은 commercial kitchen에서 (즉, 정부 health and safety 기관에서 검증받은) 곳에서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어머님 샌드위치 가게가 우리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다.

9. 시식 알바 구하기: 주말 동안 하루에 몇 시간씩 알바를 고용했다. 시식을 하면 상품이 확실히 더 잘 팔리지만, 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많은 아르바이트생분들이 현금으로 받길 원해서, 우리는 세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10. 상품을 가게에 배달하고 재고 파악해서 수거해 오기: 크림치즈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있고, 길지 않았다. 그래서 안 나간 상품을 날짜 확인 후 다시 챙겨 오는 것도 일이었다.


작년 세금 신고 때 매출을 정산해 보니 다행히 손해는 없었다. (성훈이와 내 시간 투자 값은 계산에 넣지 못했다. 그럼 마이너스 일지도..)

1월부터 한 8월까지 했던 것 같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1. 하면 된다. 정말 이 간단한 주문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시작하니 동력이 생겨서 일이 굴어가게 되는 걸 경험했다. 이 일 다음에 저 일을 해야겠구나,, 그다음에 이일을 해야겠네. 큰 그림에서 작은 그림으로 옮겨오며 사업가들은 이렇게 다 시작을 했겠지..?라고 생각했다.

2. 시작도 과감했듯이 끝도 그랬다. 더 잘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조금 더 노력하면,, 거래처를 몇 군데 더 뚫으면,,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 어쩌면 다니는 회사가 있고, 육아휴직 후 돌아갈 회사가 있어서 끝맺음이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시들시들해 버린 마음을 다잡아가면서 끌고 나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 접었다.

3.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또 일 년 지나고 보니 그때 맺었던 인연 중 아직도 이어지는 관계는 사실 거의 없지만, 그때 배운 게 있다. 필요하니 평상시 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이 된다는 것이다. 뭐 하나 그냥 되는 게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리서치해서 알아내야 하고, 골라내야 하고, 결정해야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정보를 구하고, 부탁을 하고, 홍보도 해야 했다. 그 과정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회사에서 한정적인 인맥으로 살다가 작게나마 내가 만들어낸 사업을 하자니, 이런 게 사람 사는 건가 싶기도 했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고.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이런 경험도 하게 되었다.

4. 돈을 다시 보게 됐다. 우린 둘 다 은행을 다닌다. 성훈이는 본사 쪽에 나는 손님을 직접 만나는 일이다. 물건에 가치가 메겨지고, 재료를 사서 가격을 메기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돈을 지불한다. 없던 돈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깨달은 게 있다. 이런 스케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백날 열심히 크림치즈 만들고 시식행사 열심히 해서 우리 상품에 열성 고객을 만들면 뭐하나, 상품 하나당 남는 돈이 너무 적었다. 이 계산을 안 해보고 시작한 건 아니다. 성훈이는 직업이 데이터 분석가이다. 엑셀을 사용해 크림치즈를 만드는 재료당 비용, 한 개의 상품이 나오는데 얼마의 코스트가 들어가는지, 하나를 팔면 이윤이 얼마인지, 우리가 원하는 판매개수는 몇 개인지, 언제쯤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을지 등 다양한 분석을 미리 해봤다.

그런데 상품 팔리는 속도가 처음 예상보다 너무 느렸다. 그리고 새로운 유통시장을 계척 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스케일을 업 시켜서 지금의 사업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곧 다시 적어보려고 한다. 이 무모한 크림치즈 사업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일도 시작하지 못했을 거 같다.

5. 부모님의 그늘에서 자유로워 지기. 이 크림치즈 사업 전에 꽤 많은 사업 아이디어들이 시도도 못해보고 사라졌다. 한편으론 우리의 용기부족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부모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일까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거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에 서로 또 한 번 맞춰나가는 계기가 됐다. 부모님은 너네가 알아서 이 세상을 헤쳐나가라.. 하는 정말 책에만 나오는 대사를 몸소 실천해 주셨다. 엄청 걱정하셨지만 뜯어말리는 대신 지지하고 도와주셨다. (레시피 자체가 어머님 거니, 어머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부모님 기대에 대한 걱정보다, 우리가 원하는 걸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른 거 같다.


아래 사진들은 작년에 우리가 열심히 일했던 흔적이다. 다시 하라 그럼 왠지 못할 거 같다. 돌아보니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었는지, 저때와 지금 일 년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지,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전문 디자인이 나오긴 전 모습


1575257596928.jpg 시식코너에서 열심히 홍보 중인 남편


1575257604185.jpg 크래커에 우리 크림치즈를 발라 시식용으로 사용했다


1575257607966.jpg 냉장고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상품들


1575257612531.jpg 이 용기는 이뻤으나 배달하면서 간혹 망가지기도 했고, 제작을 간소화하기 위해 금방 없앴다.


1575257618135.jpg 새로 나온 디자인. 로고와 함께 우리 용기를 포장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됐다.


1575257624787.jpg 장시간 냉장고에 있으면 종기가 약간 쭈글 해 지는 단점이 있었다. 방수 기능이 가미된 포장지는 비싸고, 대량주문해야 하니 우선 이걸로 버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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