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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2. 2024

행운이 필요한 이때, 집 앞에서 만난 오로라

우리 부부는 2021년 3월에 동반 퇴사를 했다. 그 뒤로 3년 반 정도 되는 시간을 회사라는 테두리 없이 살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첫 1년 반은 새로 이사 온 비씨주 (캐나다)에서 360도 산에 둘러싸인 풍경을 보며 지내느라 바빴고, 지난 2년 동안은 22년 전에 떠나온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살이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생활을 마무리하고 캐나다로 돌아오며, 남편과 나는 다시 회사생활을 해 보기로 결정했다. 월급 없이 살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해 퇴사를 했는데, 사실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할 줄 몰라 지루해서 힘든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자유로웠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해 보고 (민화 배우기, 수영 배우기, 요가 가르치기, 영어 가르치기, 유투버에 도전하기, 인스타 하기, 영어로 요리책 e-book으로 출간하기, 글쓰기 수업 듣기, 공저로 첫 책 출간하기, 아이 둘 데리고 한국 가서 살아보기, 제주도 가서 삼주 살아보기 등), 건강하게 집밥 해 먹고, 운동하고, 최대한 돈을 안 쓰면서 살았다.


그러다 우리가 캐나다로 돌아가서 다시 풀타임 직업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솔직히 ‘돈’ 때문이었다. 써도 써도 다 못쓰는 매직 돈 항아리가 나에게 있었다면 다시 직장에 가지 않고도 아마 인생은 즐겁다며 잘 지냈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심심해서 어떻게 집에만 있어?”라는 질문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캐나다 도착해서 지금까지 남편과 나는 이력서 (Resume)와 자기소개서 (Cover Letter)를 만들어 매일 새로 뜨는 일자리에 신청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최대한 많이 이력서를 넣는 건데, 이 작업이 사실 여간 번거롭고 힘든 일이 아니다. 새로 올라온 공고 내용에 맞춰 이력서를 매번 수정해야 하고 자기소개서도 조금씩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ChatGPT가 없었더라면 이 작업을 어떻게 수작업으로 했을지 정신이 아찔해진다.


ChatGPT의 도움으로 (우린 비밀리에 고용한 개인 비서라고 부른다), 최근 우리 남편이 나보다 먼저 재취업에 성공했다. 4년 전과 비슷한 연봉과 비슷한 직책으로 다시 돌아갔다. 축하하지만 아직 계속 여기저기 인터뷰 중인 나는 마음이 초조하다. 나에게도 좋은 직장운이 따라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엊그제 집 근처 하늘에서 오로라를 만났다. 왠지 오로라도 봤으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며칠 전, 캐나다 전역에 오로라가 보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sns 소식을 접하고, 관련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1-10중 확률이 9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오로라 보기 좋다는 스팟 세 군데를 찾았고, 그중 한 곳을 골라 나갔다.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가 보통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인다 하여, 우린 밤 10시에 출발했다. 바깥 온도는 대략 16도 정도였다. 오로라는 어디 추운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종종 내가 사는 곳에서도 볼 수 있으니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지난 5월에 아직 우리가 한국에 있었을 때도 한번 오로라가 떴었는데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20분 정도 운전해서 도착한 곳엔 다른 차들이 5-6대 정도 이미 주차되어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10만 명 사는 도시에 오로라 보러 온 사람들이 겨우 그것밖에 없었다는 것도 놀랍다. 우리도 한쪽에 주차를 하고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오로라는 안 보이고 까만 하늘에 엄청 밝은 보름달과 반짝이는 별들만 볼 수 있었다. 이제 포기하고 돌아가자라는 말을 하며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한 컷 찍은 밤하늘에서 오로라를 발견했다. 그냥 돌아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그렇게 밤 11시 넘어부터 다양한 모양과 밝기와 색의 오로라를 만났다. 언젠가 옐로 나이프에 가서 오로라를 보고 오자는 얘기를 여러 번 했었는데, 집 앞에서 이렇게 갑자기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비롭게 움직이는 초록빛을 보고 있으니, 한동안 긴장하며 지냈던 마음은 더 이상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신비롭다', ‘아름답다', ‘이런 걸 보다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있을까'라는 기분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그리고 두렵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수록 처음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익숙해지고 괜찮아지고 어쩔 땐 처음보다 점점 더 발전하고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도전하며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예전에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결과가 어땠는지를 계속 떠올려 보려 노력한다. 결국엔 다 잘 되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곤 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될거라고 믿어주면 된다.



2024년 9월 17일 밤에 찍은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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