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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을 함께한 배우자가 요양원에 들어갔다

캐나다 이야기

by 안개꽃

70대 중반 남자 손님이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법적 효력이 있는 위임장이 들려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두 번째 결혼으로 만난 지금의 아내가 최근 치매에 걸려 요양 병원에 있다고 했다. 아내의 치매 병세가 순식간에 안 좋아져 버려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조급해 보였고 어쩌면 조금은 우울해 보였다. 16년을 함께한 배우자라고 했다.


결혼 생활 동안 세금 보고나 공과금 처리, 재산세 납부 외에도 서류 관련 일들은 모두 아내가 도맡아 했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의 현재 재정상황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요양원에 가기 훨씬 전부터 서류 관리에 구멍이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손님은 뒤늦게 배우자가 없는 빈자리를 여러므로 크게 느끼고 있었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기분이야”

이 손님은 내가 가져오라는 서류를 깜빡한 채 엉뚱한 서류를 들고 왔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다음 주에 시간 될 때 다시 가지고 오면 된다고 했다.


“도저히 못 찾겠어. 분명히 본 기억이 있는데 말이야.” 간단한 서류 찾기에 연이어 실패하자, 이 상황이 괜히 더 큰 절망감을 불러오는 듯했다. 나는 서류 찾기는 그만두고 같이 그쪽 금융 회사에 전화해서, 은퇴 적금 상황 등을 직접 알아보자고 했다.


사무실에서 같이 전화를 걸었다. 손님의 본인 확인 절차 질문이 끝나고, 은퇴 적금 관련 서류를 못 받은 것 같다고 문의하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부터는 종이 서류로 우편을 보내지 않기로 했어요. 웹사이트에 로긴 하시면 간단히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순간 손님의 얼굴이 환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받지도 않았던 서류를 찾지 못한다고 한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에이 그러니깐 못 찾으셨네요! 오늘 같이 전화해 보길 잘했어요! 내친김에 웹사이트도 지금 같이 등록해서 서류 다운로드해봐요!” 난 그 순간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해 주고 싶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다가 보면 다시 인생의 주도권을 쥔거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 후로 지난 몇 달에 걸쳐 여러 차례 미팅을 했다. 안부차 물어보는 “아내분은 요즘 어떠세요?”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우울한 대답만 듣기도 했다. 원래는 일주일에 삼일정도 아내를 방문했었는데, 점점 상태가 악화되니, 병원에서도 두 번만 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보호자가 괴로워하는 걸 보다 못한 요양원의 처방이었다.


이런 미팅을 하고 나면 집에 가서 생각이 많아진다. 나중에 내 배우자가 아프거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거나 할 때, 나는 과연 괜찮을까? 우리 집 재정상태는? 내 정신 건강은? 결국 지금 더 많이 사랑하고 표현하고 살 자로 마무리되는 생각이지만, 피 할 수 없는 정해진 미래이기도 하다. 적어도 40대는 아니길 그리고 50대도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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