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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인데 둘째가 태어난다고요?

캐나다 이야기

by 안개꽃

내가 사는 곳은 밴쿠버에서 한 시간 반정도 차 막히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도 걸리는 곳이다. 얼마 전 내가 사는 도시에서 다섯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운전해 왔다는 커플을 만났다. 부부는 25살이었고, 첫째는 두 살 반, 둘째는 내년에 태어난다고 했다.


정말 젊은 부부였다. 남자는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이제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앞으로의 투자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우선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남자는 만 5천 불 정도 (약 천 오백 만원), 여자는 증조할아버지 할머니에게 19살 때 물려받은 재산이 약 3만 불 정도 된다고 했다. 현재는 월세를 살고 있는데, 몇 년 안에 집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도 여자 쪽 조부모님이 다운페이먼트를 많이 도와주실 예정이라고 했다. 첫째 딸을 위해 교육적금을 열고 싶어 했고, 둘째가 태어나면 둘째 몫으로도 교육적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빚을 물어봤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 외에 빚이 있는지 물어봤다. 남자가 일 시작 전에 트레이닝받는 기간 동안 수입이 없어, 신용 카드로 생활비를 썼는데 그게 부부가 합쳐 만 6천 불 정도 된다고 했다.


여기까지 듣고 나의 생각을 말해줬다. 투자를 잘하고 월급을 아무리 모아도, 신용카드 이자값에 비할바가 못된다고 했다. 보통 19%-20%의 이자를 내야 하는데 모아둔 금액에서 빨리 신용카드 빚부터 청산하고, 저축과 투자 계획을 세우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뮤추얼 펀드를 팔아서 카드빚을 갚으라고 하니, 그런 생각은 못했다고,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다. 바로 만불을 팔아 카드 빚을 갚기로 했다. 나는 만 6천 불의 빚이 크긴 하지만 금방 할 수 있다고 보탰다. 참고로 우리 부부는 25살 때 결혼할 때 학자금 빚만 둘이 합쳐서 13만 5천 불이었다고.. 10년 걸려서 갚긴 했지만, 거기에 비하면 금방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남자가 내년에 벌 수입이 한국 돈으로 1억 가까이 된다. 기본 연봉은 8만 5천 불 정도고, 오버타임을 많이 하고 있어서 10만 불 가까이 될 거라고 했다. 25살에 연봉 1억을 벌 수 있다니, 캐나다도 취업 시장이 좋지 않은데 좋은 직업을 잘 찾은 것 같다.


첫째 딸을 위한 교육적금을 개설하고, 만불을 찾아 카드빚을 갚기로 하고, 우리는 8월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 또 이 동네에 나올 일이 있다고 했다. 한 달 생활비 규모를 같이 정산해 보고, 남은 액수를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워 나가는 일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혼자 하기 은근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 일을 시작하고 초반 몇 년 까지도,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내가 돈을 너무 쉽게 버는 거 아닌가 하는 이상한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다. 내가 40대가 되고, 중간에 일도 몇 년 쉬고 오니, 한 가정의 가게 규모를 돌아보고 실천 계획을 세우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고 계획을 세워 나가는 일이, 10년 전에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얼마나 상대방에게 중요한 일인지도 더 잘 알게 됐다. 그걸 알겠기에 그 무게감을 느끼기에 이젠 내가 돈을 쉽게 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8월에 이 커플을 다시 만나면 그들이 정말 잘 되길 바라는 나의 진심을 담아, 도와줄 생각이다.


최근 빅토리아 섬 여행가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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