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 응급실에 다녀왔다.

by 안개꽃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열흘의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휴가를 다녀오니, 200개가 넘는 이메일과 휴가 도중 시작한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인해 흔들리는 주식시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바늘로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왼쪽 뒷머리 위에서 오는 통증이었다. 그날 밤은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아침에 일어나서 애드빌 진통제를 한 알을 먹고 나서야 아픈 것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시작한 뇌 통증은 사흘간 지속되었고, 통증이 왼쪽 뒤 머리 안에서 조금 아래로 그다음 왼쪽 귀 가까이 내려왔다. 매니저에게 말하니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난리였다. 나는 패밀리 닥터도 없고, 병원이라고 하면 응급실에 가는 건데, 캐나다에서 응급실에 가려면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하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캐나다 병원 시스템은, 아프면 동네 병원에 먼저 가고, 거기서 만난 의사 판단에 더 정밀 검사가 필요할 거 같으면, 여러 가지 테스트를 오더해 주고, 결과는 다시 동네 병원에 가서 듣게 된다. 만약 검사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전문의와 연결해주는데 보통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급할 땐 그냥 응급실에 가게 된다. 큰 병원 가면 필요한 경우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고 전문의를 통해 바로 필요한 치료를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응급실은 도착 후 기본 5시간 기다림은 정상 범위 시간이다. 먹을 거 마실 거 심심하지 않게 볼 거 등을 챙겨 가야 하고 집에는 누가 있을 것인지 또한 아이들이 집에서 먹을 것도 챙겨 놓고 가야 한다. 그러나 응급실에 막상 가려니 간다고 뇌 CT 촬영을 바로 해줄지도 확신이 없기 때문에 굳이 가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통증은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통증이었고, 무엇보다 진통제를 먹지 않고서는 통증이 너무 커서 견디기 힘들 정도이다 보니, 매니저의 닦달을 못 이기는 척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는 큰 병원이 하나 있고 그곳에도 물론 응급실이 있지만 거긴 가지 않기로 했다. 작년에 작은애가 스키 타고 다리가 부러졌을 때, 집에서 기계체조하다 손목에 금이 갔을 때 둘 다 그곳에 갔다가 받은 처치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좀 더 큰 도시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갔다. 토요일 아침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증상을 설명해 주니 바로 머리 CT 촬영도 해 주었다. 의사를 만나 결과를 듣고 그 병원을 나오기까지 총 두 시간 반 정도 걸렸으니 아무래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머리 CT 촬영을 하고 환자 실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안 좋은 상상을 하게 됐다. 만약 내가 정말 어디 아픈 거면 어쩌지? 몇 년 전에 작성한 유언장을 좀 고치고 싶었는데, 당장 그것부터 고치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한 일도 좀 쉬고 집에서 요양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설마 죽을병은 아니겠지 싶다가도 혹시 내가 죽으면 남편 혼자서도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에 든든하기도 했다. 한 30분쯤 상상하다 보니 의사가 들어왔다. 젊은 여자 의사였다. 다행히 뇌출혈도 아니고 뇌졸중도 아니라고 했다.


물론 가벼운 뇌졸중은 바로 CT 스캔하지 않는 이상 몇 시간 후면 촬영으로 알아내가 쉽지 않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의사들이 질문했던 ‘말 어눌함, 한쪽 팔다리 힘 빠짐, 안면 마비, 심한 어지럼증’ 증상이 없어서 그냥 어쩌다 생긴 두통인 것 같고 며칠 후면 자연스레 괜찮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래도 왼쪽 팔에 진통제 주사 두방을 맞고 집에 돌아왔다.


두통은 정확히 이틀 후 사라졌다. 나는 일을 쉬지도 유언장을 아직 고치지도 않았다. 지난달에 며칠간 있었던 두통에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지나왔지만, 캐나다에서 어디 아플 때 속시원히 진단을 빨리 받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지금은 아픈 곳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오랜만에 캐나다 병원 시스템을 지대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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