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영화리뷰
씨네 21 기사에서 에단호크와 링클레이터가 주고받은 글을 봤다.
에단호크는 '친구란 당신이 선택한 가족'이라는 말로 링클레이터를 소개했고, 링클레이터는 '당신의 친구는 결국 당신 세계관의 연장'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지음, 절친이 곧 가족이 되어버리는 그(감독, 링클렝터)의 배우 활용법이 영화관을 넘어 세계관으로 확장된 것이다. 라는 부연 설명도 함께 있었다. 뭐냐 대체, 이 멋진 사람들.....
다음은 극중 에단 호크가 아들에게 쓴 편지 전문, 몇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될 수 있다면 이런 아빠가 되어야지. 생각하면서.
메이슨에게
네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오로지 아버지만이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보로 삼을 만한 무언가를 말이다.
그리고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구나. 미리 사과하마.
네게 선물할 물건은 ‘비틀즈의 블랙 앨범’이란다.
내가 살면서 진정 자랑스러웠던 일은 나 혹은 누군가가 혼자 이뤄낸 일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이뤄냈던 일이란다. 에너지가 충돌할 때 예기치 못하게 생기는 마법 같은 창의력, 그런 것들이야말로 정말 뿌듯한 일이지. 이 앨범은 비틀즈 해체 이후 존과 폴, 조지, 링고가 발표한 솔로곡들 중 베스트만 엄선한 거야. 널 위해 내가 비틀즈를 재결합시킨 셈이지. 비틀즈 멤버들의 솔로곡을 따로따로 너무 많이 듣다 보면 뭔가가 이상해. 존의 곡을 계속 들으면 너무 자신에게 함몰되는 듯한 기분이 들고, 폴의 곡은 사람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만들지. 얼빠진 인간처럼 말야.
조지의 곡은 너무 영적이야. 사람은 누구나 영적인 면이 있지만 그런 노래를 6분 이상 듣는 건 솔직히 고역이잖니. 링고는 재미 있고 쿨하지만 노래를 못해. 물론 70년대엔 존보다 히트곡을 많이 내긴 했지만, 솔직히 그의 노래들을 볼륨을 높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게 되진 않아. 그런데 그들 모두의 곡을 섞어서 그 선율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각 곡들이 서로를 보완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그리고 비로소 ‘비틀즈’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는 거지.
일단 그냥 CD 전체를 쭉 들어보렴.
내가 이 앨범을 만든 이유는 아마도, 존이 총격으로 살해됐던 게 40살 때였고 내가 이제 막 그 나이가 됐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존이 전곡을 작곡한 후기 작품 중 링고를 위해 지은 곡 ‘LIFE BEGINS AT 40: 인생은 마흔에 시작되네’는 차마 수록하지 못했다. 그 잔인한 아이러니가 아직도 가슴 아프거든.)
이 곡들을 들으면 왠지 존과 폴의 우정이 그렇게 처참하게 끝났단 사실이 너무 슬프게 느껴져. (어쩌면 네 엄마와의 이혼으로 인한 아물지 않는 상처 때문일 수도 있지.)
그래 알아, 알아. 그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거. 하지만, 대체 왜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 걸까? 왜 우린 사소한 일로 헤어지는 걸까? 비틀즈는 왜 그랬을까? 왜 재능이 때로는 위협이 되고,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게 결점으로 느껴질까? 왜 우리는 서로 부대끼고 마찰하면서 다듬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할까?
어디선가 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화를 들은 기억이 나는구나. 존은 어렸을 때 굉장한 문제아였다고 하더라. 주머니엔 잭나이프를 넣어 다니고, 입엔 담배를 꼬나물고 늘 섹스 생각만 했지. 평소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 존과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할 무렵에 갑자기 돌아가셨어.
분노에 찬 존은 술에 취한 채 밴드 멤버의 얼굴을 때리고 장례식장을 뛰쳐나갔지. 당시 존보다 몇 살 어렸던 14살의 폴(아직 여자에게 관심도 없는 찌질한 어린애였지만 기타를 꽤 잘 쳐서 멤버가 됐었지.)이 존을 따라 나가며 이렇게 소리쳤대.
‘존, 너 왜 그렇게 못되게 굴어?’
존은 대답했지. ‘울 엄마가 죽었어, 옘병!’
폴은 말했어. ‘넌 우리 엄마에 대해선 물어본 적도 없지.’
‘네 엄마가 뭐?’
‘…우리 엄마도 죽었어.’
그들은 변두리의 길거리 한복판에서 끌어안았어. 존은 아마 이랬겠지. ‘우리 옘병할 로큰롤 밴드나 하자.’ 이 이야기를 듣고, 그간 음악을 듣고 살면서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한 의문이 풀렸어. 비틀즈는 고작 10년을 함께 활동했고, 멤버들 모두 그렇게 젊었었는데 어떻게 ‘HELP’ ‘FOOL ON THE HILL’ ‘ELEANOR RIGBY’ ‘YESTERDAY’ ‘A DAY IN THE LIFE’와 같은 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여성팬들이 호텔 방밖에 진을 치고, 샴페인을 질리도록 마실 수 있는 25살의 스타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예술적인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었을까?
그건 그들이 고통 속에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은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토록 젊은 나이에, 그걸 알았던 거야. 내 블랙 앨범엔 이 청년들이 어른들의 삶에 대해 쓴 것들이 담겨있단다. 결혼, 부모가 된다는 것, 영적인 갈증, 물질적인 성공의 허무함……. 이런 것들이 ‘STARTING OVER’ ‘MAYBE I’M AMAZED’ ‘BEAUTIFUL BOY’ ‘THE NO NO SONG’ ‘GOD’과 같은 곡들 속에 담겨있지. 이 곡들을 들어보면 그래. 그들은 여전히 잘 알고 있었어.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말야.
나도 그게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영원히 함께 아름다운 곡을 썼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만약 영원히 시들지 않는 장미가 좋은 거라면, 장미는 돌로 만들어져야겠지. 그럼 우린 이 문제를 어떻게 우아하고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가 나처럼 로맨틱하다면 아마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을 거다. 그 둘 사이엔 치유의 말이 존재했다는 걸. 모든 면에서 그런 정황들이 보이잖니.
최근에 폴이 SNL(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했을 때 존의 거의 모든 곡을 연주했어. 그것도 아주 즐거운 모습으로……. 폴 매카트니의 ‘HERE TODAY’(주: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에게 헌정하기 위해 만든 곡)를 들어보길.
‘TWO OF US’ (그 두 사람이 함께 쓴 마지막 곡)를 듣고 가슴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옛날, 똑같이 엄마를 잃고 길 한복판에서 부둥켜 안았던 두 사내아이가 ‘우리 둘은 이 앞에 놓인 길보다 훨씬 긴 추억을 갖고 있네‘라는 가사를 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든 헤어짐이 그렇듯, 그들이 헤어지게 된 이유는 미스테리야. 누구는 제자 격인 폴이 스승인 존을 능가하게 되면서 관계의 균형이 깨진 거라고 하고, 누구는 폴이 야비하게 다른 멤버 세 명 몰래 판권을 샀다고도 하고, 또 누구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주: 비틀즈의 프로듀서)이 빠지자, 자아가 강한 그들 사이에 중재 역할을 할 사람이 없어서 팀이 깨졌다고도 하지. 하지만 그 이유를 누가 알겠니?
며칠 전 네 누나에게 ‘HEY JUDE’를 들려줬더니 몇 번이고 계속해서 듣더구나. 그리고 존의 이혼 후 폴이 존의 아들을 위해 쓴 곡이라고 했더니 더 열심히 듣더라. 언젠가 조지는 말했지. ‘HEY JUDE’가 비틀즈 종말의 시초였다고……. 당시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막 죽었고 존과 폴은 애플 레이블을 이끌 책임을 지게 됐어. ‘HEY JUDE’와 ‘REVOLUTION’을 싱글로 발표했을 때 브라이언이 살아있었으면 어느 곡을 A면에, 어느 곡을 B면에 수록할 지 알아서 정했겠지만 이젠 이 둘이 결정을 해야 했지.
존은 정치적인 의미를 담은 ‘REVOLUTION’ 으로 어덜트 밴드의 입지를 굳혀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폴은 어디까지나 비틀즈가 팝 밴드니까 ‘HEY JUDE’를 밀어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 곡이 대히트를 칠 게 분명하니까 정치적인 노래는 B면에 싣자고 주장했지. 그들은 투표를 했고 ‘HEY JUDE’가 3대1로 이겼어. 조지에 의하면 그때 존은 폴이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느꼈대. 화난 내색은 안 했지만 그때부터 존은 위축되기 시작했어. 이제 비틀즈는 더 이상 그의 밴드가 아니었던 거야.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는 내가 언젠가 들은 또 다른 일화에 있어. ‘HEY JUDE/REVOLUTION’ 싱글이 막 발매 됐을 당시, 비틀즈 멤버들은 롤링 스톤즈의 음반 발표 파티에 자신들의 싱글곡을 가져가자는 짓궂은 아이디어를 냈어. 믹 재거의 말에 의하면 롤링 스톤즈의 새 앨범 A면을 듣고 난 뒤, 비틀즈 멤버들은 자신들의 싱글에 대해 입을 열었고,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그 곡을 듣기 위해 몰려 들었대. 그리곤 비틀즈 곡만 계속 앞뒤로 틀었다는 거야. 롤링 스톤즈의 BEGGARS BANQUET 앨범 B면은 틀지도 못했대. 이 일화를 들으면 존이 사실은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존에게 폴과 다시 공연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더니 존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더구나. ‘중요한 건 어떤 음악을 함께 하느냐죠. 중요한 건 음악이에요. 우린 음악적으로 잘 맞아요. 폴에게 좋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있고, 날 필요로 한다면 저도 관심이 있겠죠.’
멋지지 않니? 여기서의 교훈은 이게 아닐까 싶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사랑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영원할 수도 있다는 거.
네 엄마와 난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메이슨, 넌 우리의 음악이란다.
‘결국, 사랑은 준 만큼 받는 거죠.’ (주: 비틀즈의 마지막 곡인 ‘THE END’ 가사)
사랑한다, 생일 축하해.
아빠가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 OST도 너무 너무 좋다.
이 모든 일들을 진두지휘한 링클레이터와 그의 친구로 동행해준 배우들께 경의를 표한다.
12년의 노력과 재미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모든 Single Parent (Parents), Step mom (father), 아직 성숙하지 않은 18세 이전의 Boy and Girls에게 나 나름은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 아니..추천이라도.
Jennif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