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8
책을 읽다보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무슨 내용인지 갈피도 안 잡히고,
대체 저 주인공처럼 보이는 화자라는 작자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다가,
갑자기 한 순간 안개가 걷히면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
그러한 몰입의 계기는 어떤 한문장 일 수도 있고, 책에 등장하는 음악일 수도 있다.
매개체는 다양하다.
나는 그 몰입이 시작되는 시점부터의 책을 읽는 행위의 즐거움을 알기에 사전 지식없이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
데미안에 몰입하기 시작한 순간 메모가 늘었다.
맥북을 샀다. 130만원. 생활비가 쪼들린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언가 빛나는 것을 만들어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이게 다 그 130만원, 때문에 생긴 강박이다.
통장에 겨우 20만원밖에 없는 것을 확인한 직후 아무래도 맥북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백하자면, ‘서재부심’있다. 아무리 좋은 책방을 다녀도 우리집 내 서재만한 곳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를 사람으로 만든 책, 내가 사랑한 책들이 여기 대부분 있으니까. 이사할 때마다, 방안의 가구를 재배치할때마다 얼마든지 애 먹어도 좋다. 너희들이 없으면 나도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니까.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빛을 나눠주며 사는게 목표다.
어느 토요일 아침, 누워서 데미안을 읽으며 서재를 바라보다가
폴은 왜 로제를 선택했을까.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주말도 함께 보낼 수 없이 바쁜척을 하면서 저녁 8시가 다 되어서 기분이 내키면 방심한 태도로 전화나 걸어오는 남자(로제)를 왜. 매일 6시면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조바심을 내며 자기를 기다려 줄 젊고도 매력적인 남자(시몽)대신 왜 로제를 선택했을까! 왜. 시몽은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폴은 마흔살. 15살 차이. 나는 왠지 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년 시몽에 비해 한없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마흔살의 여인 (폴). 나는 폴의 결정을 이해한다.
다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읽고나서
종편 김갑수 선생은 부인과 따로 산다. 별거나 이혼을 한 게 아니라 각자 독립된 공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다. 가능하다면 나도, 결혼해서 따로 살아야지. 회사를 쉬니까 우체국가는 일, 동사무소 가는 일이 즐겁다. 회사다닐땐 그런 일들이 생기면 짜증부터 났었는데 말이다. 확실히 여유로움이 한 인격체의 성장을 돕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쉬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좋은 드라마는 여전히 좋구나.
따뜻한 사람들이 만드는 드라마 이야기. 그중에서도 마음 씀씀이가 참 예뻤던 남주 정지오가 참 좋았다. 촬영감독을 위해 천하장사 소세지를 챙겨주고, 마음 다친 국장이 신경쓰여 밤늦은 시간 맥주 한캔 사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 배려들. 좋은 차 좋은 집을 바라는 주준영의 엄마 앞에서 소 열두마리 키우는 촌부의 아들임이 부끄러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히죽히죽 웃으며 그 시간을 버텼는데,
“우리 엄마 남자들 괜히 히죽히죽 거리는거 제일 싫어하는데” 라는 생각없는 주준영의 말에 무슨 대단한 사랑이라고 이런 초라한 마음 들게 하냐며 당장 때려치고 싶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그녀의 엄마 마음에 들고싶어 시청률 30% 넘는 드라마 만들어서 외주제작사에 스카웃받는 꿈을 꾸는 남자.
주준영을 사랑할수록 비루한 현실에 자꾸만 작아지고 자신없고 초라한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수도 없기에 다시금 용기내어보는 우리의 정지오.
엄마를 만나러 시골집에 간 지오가, 소똥을 치우고 등목을 한 후 아버지 잔소리를 피해 버스를 타고 엄마와 시골 장에 가는 장면에서는 울컥, 눈물이 났다. 나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데. 여기를 정리할 용기는 대체 언제쯤 생기는 걸까, 싶어서.
엘튼존이 물어본다. when are you gonna come 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