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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6. 2020

인간의 굴레에서

제니퍼 북리뷰


6년전, 지금은 기자를 그만두셨지만 당시에 한경에서 스타트업 위주로 취재를 다니셨던 임원기 기자가 내게 자신의 인생 책 한권을 추천해줬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그로부터 지금까지 매순간은 아니지만,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산뜻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로부터 인생책을 추천받아놓고 읽지않은 찜찜함 담긴 미안함? 

그러다, 드디어 지난 6년간 해야지 하면서도 미뤄두고 마음만 무거웠던 그 숙제를 풀었다. 예상외로 재미있게!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주인공 필립은 열살때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 댁에서 자라게 된다. 배경은 런던. 

선천적으로 발을 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절름발이 필립은 행동하지 않는 믿음을 강요하는 가식적인 성직자 백부를 끔찍히도 싫어했다. 그러던 중 결정적으로, 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는 사건이 생긴다. 하나님께, 아무리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고 해도 절대로 자신의 절절한 소망(다리를 절지 않고 걷게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게 된 것.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 필립은 절름발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으며 괴로움과 외로움속에 방황하게 되고 결국 자퇴를 하게된다. 성직자를 키워내는 학교라고 해서 학생들의 됨됨이에 대해서 일말의 기대가 있었겠지만,  여느학교에 비해 더하며 더했지 아이들의 괴롭힘은 다를게 없었다. 

학교를 자퇴한 이후에도 필립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는데, 그들을 통해 필립은 고행과 가까운 삶에 대해 하나 둘 체득해나간다. 불구의 몸으로 태어난 이래 한번도 남들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불구가 아니더라도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필립은 그 모든 상처의 과정이 결국 인생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마치 죽기 전 그리스도가 했던 것처럼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대에게 되갚아주기보다, 그 모든걸 스스로 감내해나간다. 필립의 인생을 통해 그간 힘들다고 생각했던 자질구레하지만 수많은 사건들이 지나갔다. 필립 앞에서는 한낱 어리광처럼 느껴지는 에피소드들.

미워하는 마음 내려놓기 주어진 삶에 감사하기.

이 책이, 지금 이 순간 내게 준 가르침이다.



편애하는 밑줄

세상에서 굴욕보다 두려운 것이 없었지만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굴욕을 당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가운데도 희열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필립은 이삼 일 동안이나 기쁨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신앞에서만 회개하는 편한 방법으로 양심을 달래고 말았던 것이다.
불구의 발을 온전하게 만들어달라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기도한다. 산을 움직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느님이 하시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리라. 그 점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은, 뻔한 이유로해서, 선생이 못마땅했으면서도 선생 편을 들었다.
필립에겐 친구가 별로 없었다. 책 읽는 습관 때문에 홀로 될 수 밖에 없었다. 독서를 안하고는 배길 수 없게 되어 친구들과 한동안 어울리고 나면 곧 피곤해지고 조바심이 났다.
그는 학교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세상에 나가기까지는 참아야 하는 일종의 굴욕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필립은 솔직하고 고지식한 편이었다.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도 성직자의 입장장으로서는 열심히 설교할 수 있다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기만에 치가 떨렸다. 백부는 허약하고 이기적이 사람이었다.
교장은 손을 내밀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었더라도 필립은 마음을 바꿨을지 모른다. (중략) 공연히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후회가 되었다 (중략) 사람이란 고집대로 하고 나면 언제나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위대한 작가의 한 표징은 사람들에게마다 서로 다른 영감을 줄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클러트에 대해 가진 일반적인 인상은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본인도 이 일반적인 견해에는 공감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본인도 남들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모른체하여 불편하였지만 그 불편한 마음을 극복하고 나니 오히려 골치아픈 관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비평을 부탁하면서도 듣고 싶은 것은 칭찬뿐이야. 그뿐 아니고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그림이 좋든 나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필립은 실제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 행동이 따르지 않는 이론을 차츰 참을 수 없게 되었다.
필립이 이제 알게 된 것은, 누구든 자기에게 화가 나면 맨먼저 그의 불구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 거의 누구도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사실로써 필립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푼 벌면 한푼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상대방이 알아듣게 하려면 어떻게 물어야 하는가를 배웠다. 어떤 문제에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가, 어떤 질문을 던지면 진실을 말하게 되는가도 배웠다. 사람들은 같은 것에 대해서도 저마다 달리 반응하였다.
호의는 강요가 되기 쉽다.
그는 분명히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죽음이 영생에 이르는 문임을 믿으면서도 영생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돈이없으면 쩨쩨해지고 비열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성격도 삐뚤어지고 세상을 저속한 관점에서만 보게 된다.


레너드 업존은 ~ (중략)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말을 잘하려면 이 점을 가장 중요시해야하거니와-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상대방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지껄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중략) 업존은 필립에게 누구든 곁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하면서도 그 일이 가능하도록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가 겪은 불행이란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권태이든 격정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무늬를 더욱 풍부하게 하니까.
이 순간 필립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성자와 같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맹목적인 우연의 무력한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 필립은 그리피스의 배신을, 그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 밀드레드를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 그네들도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한가지 분별있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잘못은 참아내는일뿐이다. 그리스도가 죽어가면서 했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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