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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6. 2020

마스다 미리

제니퍼 북리뷰


그냥 막연히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일상적이고 소소한 것들이 마스다 미리의 글감이 된다.

글이나 만화로 그러한 것들을 이처럼 탁월하게 표현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특별히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대표작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로 인해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언제부터했습니까" 라는 곤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귀여운 미리짱의 첫번째 산문집.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선물할 책을 고민하던 즈음에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지인이 추천해준 책이 마스다 미리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잔잔하고 소소함속에 위트가 있는 만화를 알게됐다. 이후, 미리네 집에 들렀다가 그녀의 만화책 5권들이 세트를 훑으면서 그녀의 팬이 되었는데 이번 산문도 참 좋았다. 커피언덕이라는 양평의 커피숍에 앉아, 행복한 오후를 이 책과 맛난 커피와, 엄마와 언니와 보냈다.  


이왕 커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양평에 추천할만한 커피숍이 세군데 있어서 커피이야기좀 하고 넘어가야 겠다. '커피언덕', '쿠마', 그리고 '리얼리스트'. 하나는 내가 발견했고 두군데는 로빈슨 추천인데 세군데 어디를 가도 만족스럽겠지만 특징은 다르니 참고하면 좋겠다. 편하게 친구랑 수다떨땐 리얼리스트, 조용히 책을 읽거나 죽여주는 음악을 듣고 싶을땐(오늘은 애바 캐시디, 김현식, 모짜르트 레퀴엠이 흘렀다. 음악과 커피가, 진짜 죽여준다. 더 좋은 표현을 찾기가..) 무조건 커피언덕, 단체로 회의를 하고싶을땐 쿠마.


마스다 미리 산문집을 읽으면서 제일 부러웠던 건 편집자와 밥먹는 일, 핫케이크 먹는 일, 회의하는 일이었다.

편집자와의 회의라. 나도 그런 걸 하게 될 날이 오겠지? ㅠㅠ


그리고 배운 것 하나.

한달에 두번 일정을 넣지 않는 날 정하는 것.

약속이 많은 나도 미리짱처럼 한달에 두번은 일정을 넣지 않는 날로 정하여 책도 좀 보고, 글도 좀 정리하고, 생각을 하는 시간으로 비워두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일찍이 김갑수(배우말고, 노짱 지지자로 종편에서 공격받고 있는 그 사랑스러운 중년남자)는 너무 많은 만남으로 감정을 소모하지말라고 했는데. 결국 찾아오는 인간들만 만나도 된다고. 즈음에 드는 고민은 찾아오는 인간들에 대한 부분이다. 찾아오는 인간들 만나다보면 결국... 너무 많은 만남으로 이어지고, 감정의 소모도 생기는데. 그저,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이 성가신 기분은 언제나 마스다가의 책장을 볼때마다 진정된다.

내가 연재하는 잡지가 순서대로 꽂혀 있는 그 책장. 몇번이나 보았는지 잡지는 너덜너덜하다. 이 사람들이 나의 최고의 팬인 것이다. 도쿄에 돌아가면 또 열심히 해야지.

그 아이는 아주 미인이었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아이돌처럼 귀여웠지만, 남자들이 들을 법한 록 음악을 좋아하는 그 부조화가 그녀의 매력이기도 했다.

나는 한자도 제대로 못쓰고....영어를 잘못 해석하기도 한 바보다. 그렇지만 "아기는 아직이야?" 하는 배려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삼십 대 여성' 이라는 말 옆에 있는 '이십대 여성'을 잃는 느낌. 그리고 그것은 '십 대 여자아이'였던 내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이미지다. 내 마음은 아직 십 대 사춘기 그대로인데, 나이만 멋대로 늘어난 것이다.

"한동안 못 본 사이 예뻐지셨네요?"

십 대, 이십 대 때는 이런 손발 오그라드는 빈말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가 듣고 흥분할 말로 이 이상의 것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굳이 들자면 증쇄(책)려나.....

반짇고리. 그것은 중 고등학교 시절 항상 내 책가방에 들어 있었다.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어쩌다 교복이 터져서 당황할 때를 노린 것이다, 꿰매주려고. 그러나 결국 나는 남학생의 터진 교복을 꿰매주지 못했다. 부탁도 하지 않는데 꿰매줄 수 없지 않은가.

한 푼 두 푼  용돈을 모아서 초콜릿 재료며 포장용품을 사다가 밤늦게까지 만드는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그러나 때는 늦었다. 십 대의 추억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 현실의 나는 수제 초콜릿을 전혀 기대받지 못할 나이가 돼버렸다. 뼛속까지 오한이 드는 밤 벚꽃놀이는 가고싶지 않아졌다. 여름휴가에 두근거리지 않게 된 건 한참됐다. 뒷정리를 생각하면 바비큐 같은 건 전혀 하고 싶지 않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지 않게 됐다.

좋아하는 사람의 교복 두번째 단추(일본에서는 남학생이 평소 좋아했던 여학생에게 졸업식때 교복 두번째 단추를 선물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시한다).

만약 내가 두번째 단추를 받았다면 분명 죽을때까지 간직할 것 같다. 하지만 받지 못한 두번째 단추. 생각해보니 나는 교복 단추 뒷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모른다. 아들은 커녕 자식도 없어서 앞으로도 남자 교복 단추의 구조는 계속 모르는 채일 것이다.

<빨간 머리 앤> 마지막에 앤과 길버트가 시간 가는 것도 잊고 선 채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의 시작을 예감하게 하는 상큼한 장면이다.


천부적이거나 태생적인 예의 그 찌질함. 얼굴이 귀엽게 생기지 않아 겪지 못했던 학창시절의 로맨스. 

결국 졸업식에 받지 못한 두번째 단추. 이렇게 돈도 없고 남편도 없이 마흔이 되고 나이가 들지만 유니클로가 있어서 안심이 된다는 여인.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랑의 에피소드 없이 지나버린 학창시절.....

이라면 나도 그녀 못지않은 서러움이 있다. 그녀에게 유니클로가 있다면 내겐 이니스프리가 있다. 

마스다 미리, 간바떼 구다사이!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건방진 여자아이'는 '무서운 아줌마'로 바뀌는 것 같다. '건방'은 내게서 떠나갔다.

실컷놀았다. 실컷 놀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다음날에 마사지 예약을 해둔 용의주도함. 당연하지, 이제 열일곱이 아닌걸. 열일곱살로는 돌아갈 수 없다. 어른으로 지내는 것도 즐거워서 별로 돌아가고싶지 않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될 말은 세상에 산더미처럼 있다. 술을 못 마시는 나도 한심하긴 하겠지만 식사란 그 사람이 자란 환경과 소중한 추억과도 관계 깊은 것이어서 배려해야한다고생각한다.

이름을 짓는 것은 즐거운 작업이다. 

자신이 하는 말을 상대가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는 그 두려움, 민망함, 미안함, 고마움, 기쁨, 과분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늙었다는 증거다. 다나베 세이코(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씨의 환승이 많은 여행 중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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