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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6. 2020

박민규

제니퍼의 북리뷰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그러니까 2003년쯤으로 기억한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등장은, 1998년 강준만 아저씨게 팬레터 답장을 받은 것과, 2002년 환희(그가 진짜 플라이투더스카이의 환희인지아닌지의 진위여부는 차치하고라도)를 만난 것을 포함해 내 일생일대 가장 잊을수 없는 세 가지 사건이었다!


그동안 내게 누군가 인생책을 꼽아달라면 언제나 주저없이 류의 <sixty nine> 을 추천했는데, 삼미 슈퍼스타즈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박민규는 쇼킹, 그자체였다.


처음 널 봤을때...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어땠는데?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뭐가?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볼?
투 스트라이크 포 볼! 그러니 진루해!
-진루라니?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쉬고, 자고, 뒹굴로, 놀란 말이지.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 이었어.


이 책을 처음으로 내게 추천해주고, 선물까지 해준 건 다름아닌 엄석대였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다. 다자키 쓰크류의 친구들이 다자키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우리 모두에게 연락을 끊었다.


‘삼진 아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다’는 말에, 스물세살 당시에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엄석대에겐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잘도 이따위 일을  개월째 하고 있으니 말이다.월급이라고는   하겠고, 그저 왔다갔다 차비 정도를 받고 있다.일은 거의 날밤을 새는 수준, 개월의 연수기간이 끝나야 그중  명이 정식 사원으로 발탁된다.그럼 나머지는?글쎄다.이곳의 인사부장은 "좋은 경험으로 여기세요"라고 말했지만 떨어지기만 해봐라 

그때 그의 글이 더 반가웠던 것은, 아마 나도 박봉을 받으며 출근하는 사회초년생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카스테라

크하핫. 정말 기발하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친구

바나나맨의 이야기라니 -_-;;



핑퐁

향후 십년간 다시는 오지 않을거라고 직장인들 사이에서 떠들썩했던 2006년의 추석 연휴 9박 10일!

그 길고도 긴 연휴 동안 딸랑소설 한권을 읽었다. 핑퐁은 여느 박민규의 소설처럼 빠르게 읽히고, 웃기고, 기발하다. 이 세계가 현재 1738345792629921 : 1738345792629920의 아슬아슬한 듀스 포인트에 놓여 있다는 발상은 정말 경이롭다.


항문에 넣는 치질약을 먹고 구토를 하는 것, 과연 그가 아니면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삼미슈퍼스타즈 이후에 이렇다할 작품이 없었는데-카스테라, 지구영웅전설, 그외 단편 등 많은 집필 작업을 했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삼미 이후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그의 전작이 너무나 훌륭했던 탓에 웬만해서는 호들갑 떨지 않고 의연해졌다고나 할까. 하지만 <핑퐁>을 통해 역시, 박민규로군!이란 생각이 절로 들어 기뻤고 너무 기뻐 좋아하지도 않는 핑퐁을 배워봐야겠군이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소설속 주인공은 존재감이 극히 미약한 못과 모아이.

이제 겨우 열다섯살인 그들의 일과란 대부분 무의미하기짝이없는것들인데- '치수'라는 절대적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하루에 한 번 두들겨 맞는 것이 그나마 일과라면 중요한 일과다.늘상 괴롭힘 당하면서도 치수의 우정어린(?)말-이를테면 밥은 먹었냐 따위의 입바른 소리에 금세 눈물이 핑. 하고 도는 우리의 주인공 못, 과 나와 같은 고통(글쎄, 그게 뭘지는 소설을 읽어보고 확인하시길!)을 겪고 있는-그래서 왠지 더 안쓰럽고 가엽고 정이가는 우리의 모아이. 그들은 우연히 벌판에 놓인 탁구대를 발견하고 탁구를 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탁구를 통해 어쩌다가 인류를 언인스톨하느냐 인스톨하느냐는 결정권을 갖게 된다. 다수에, 혹은 다수인척 살아가는 사람들에 묻혀 존재감없이 살아가는 못과 모아이의 지루하던 삶속에 찾아온 일생일대의 승부!

과연 못과 모아이는 인류를 대표하는-그러니까 새와 쥐와의 7전 4승의 시합에서 인류를 구해낼 수 있을까, 결국 3:0으로 새와 쥐에게 뒤지는 상황에서 못과 모아이는 새와 쥐의 죽음으로 어부지리로 시합에서 승리를 한다.


그나저나 그의 단편이나 소설 속 제목들은 하나같이 흥미롭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습니까?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갑을고시원 체류기

아, 하세요 펠리컨


더블

좋은 소설가는, 그의 글로 하여금 독자들이 조금씩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의, 비교적 쉬운 문체로 뻔한 사랑이야기를 하는 소설과 박민규의 소설이 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에 있다. 공감이 가는 문장 하나 둘에 아래 위로고개를 주억거리며 밑줄을 그어내려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박민규의 책은 첫문장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내재된 답답한 찌꺼기를 속 시원히 내뱉는다. 모든 페이지를 씹어 삼켜 그 문장력이 내것이 되고 그렇게하여 그처럼 삶의 통찰력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삶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의 끝을 보여준(주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그의 신작소설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8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어쩌면 그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대두된 아름다움의 가치와 상대적으로 그로 인해 불평등을 받아야 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배경은 이제 막 하나 둘 백화점이 들어서고,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 엘리베이터 걸의 올라갑니다, 내려갑니다 구호가 유행하던 일본에서 엘리베이터 걸 문화가 들어오던 시절. 백화점 지하주차장 아르바이트생 '나' 그리고 백화점 사무직에서 근무하다 못생긴 외모탓에 온갖 잡무를 담당해야 했던 '그녀' 그리고 '못생긴 그녀'와 '나'의 사랑을 이어주며 때로는 메시아같은 존재 '요한'을 둘러싸고 세 사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니까 못생긴 그녀의 못생긴 정도는 대체 저런 얼굴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다니, 용기가 가상하군.
정도였고 그런 타인의 시선 속에서 십수년을 살아 온 그녀는 그래서 어쩐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고 고개는 언제나 푹 수그린 채로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다른 이들의 호의나 배려에 언제나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로 거리감을 두던 그녀(그래서 요한에 의해 붙여진 별명이 아니에우스다)는, 여직원들의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남형인 화자로부터 난생처음 <호감>이란 것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못생긴 그녀는 '나'의 호감을 두려워한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녀석은 진심(眞心)이야.

자칫 가벼워보일 수 있는 류의 줄거리지만, 그 주제에 접근하는 박민규의 방식은 시종일관 진지하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가질 수 있었던 특권과ㅡ 그렇지 못해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여자들의 인권.
하지만 이 <아름다움>이 못생긴 그녀와, 예쁘지 않아 버림받았던 '나' 어머니에게만 독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하더라도 결국 더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자신의 남자를 빼앗겨야했던 요한의 어머니에게도 <아름다움>은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결말은 세가지 다른 버전으로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나로 말하자면 첫번째 엔딩이 가장 마음에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도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유명대사) 송주 오빠의 말처럼  사랑은 어쨌거나 사랑하는 사람 둘이 만나야 '결실을 맺는 것'이니 말이다. writer's cut을 더욱 마음에 들어 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두고 친절히도 각기 다른 결말을 두었으니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박민규>라는 이름 석자가 가진 브랜드 파워는, 언제나 이렇듯 속수무책으로 막강하다. 적어도 내게는 오랫동안 그럴 것 같다. 멋지다 박민규, 희열님의 그 마사루만큼이나. 반복하여 읽을 수록 더 맛깔난다는 건 나만 알고 있어야지..ㅎㅎ  



# 눈의 파편 같은 샐러드를 입에 머금은 채 스무 살의 남자는
AM 라디오와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아무리 채널을 돌리고 고정해도 여자라는 이름의 전파를 잡을 수 없다.

# 젊음은 결국 단파 라디오와 같은 것임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란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 그런 일을 당하고 어느 누가 예전처럼 살 수 있겠어. 그래도 죽지는 마. 그것만 빼곤 나 다 괜찮아.

# 이 포크를 봐. 앞에 세 개의 창이 있어. 하나는 동정이고 하나는 호의, 나머지 하나는 연민이야.
지금 너의 마음은 포크의 손잡이를 쥔 손과 같은 거지. 봐, 이렇게 찔렀을 때 그래서 모호해지는 거야.
과연 어떤 창이 맨 먼저 대상을 파고 들었는지... (중략) 알아? 적어도 세 개의 창 중에서 하나는 사랑이어야 해.

#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중략)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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