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북리뷰
애초에 그녀는 여행기는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취재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던 이십대 내내 그녀의 소원은 관찰하거나 기록하지 않고, 활자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상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보면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많은 네이버 지식인의 도움을 받았는지 차마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무지한 내 자신을 탓하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한줄 한줄 소중히 읽어 내려갔다. 그녀만의 풍부한 언어 표현 능력은 글 쓰는 것이 미흡한 내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여행 틈틈이 느낀 바를 정신분석과 관련지어 치밀하게 써내려간 에세이는 많은 부분 공감이 갔으며 자존감이 약한 내게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진리를 새삼 일깨워 주었다.
어릴적 트라우마로 인해 방어기제를 가지고 살아가거나
부모의 애정 결핍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이들 혹은 나르시즘에 빠져 자신을 최고로 생각한다거나 그와 반대로 자아 존중감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인정과 지지를 받아야지만 안심되는 이들이 한번쯤 읽어본다면 좋을 듯하다.
편애하는 밑줄
이십대 중반에 나의 이상형은 백과사전 같은 남자였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자신의 무식함을 매일 발견하던 시절의 기준이었다.
“5분 이상 화가 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다.”
화를 잘 낸다 함은 어떠한 분노도 5분 안에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중의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나 하나라”<정선 아라리>의 한 구절이다.
항상 자중자애하라.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건강한 사랑, 정당한 보상을 약속하는 사랑, 자기를 존중하는 사랑을 하라는 뜻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상대가 그것에 대해 보답하는지를 지켜보는 무서운 속성이 있다고 한다. 오른손이 한 일에 대해 왼손이 보답받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남성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구절을 읽은 일이 있다. 그것만큼 <인정>의 위력을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었다.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는 앞으로 걸어 나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며 엄마의 지지를 확인한다.
오래도록 <용기>란 두려움이나 저어하는 마음 없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어떤 일을 해나가는 힘을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롤로 메이의 <창조와 용기>라는 책을 읽다가 용기를 <절망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해둔 구절을 만났다.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그렇다면 내게도 용기가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두려움을 참으며 낯선 여행지를 걸어나갈 때, 좌절감을 안은 채 어떤 일을 해낼 때 온몸에 힘이 들어가도록 애쓰던 그 느낌이 바로 용기였구나 싶었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
인간 정신에 <정상>의 개념은 없으며,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뒤에 남은 사람은 ‘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대.
이걸 심리학에서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5단계>라는 용어로 부르는데 세상을 뜬 배우자나 떠난 연인에 대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분노의 감정이래.
그 다음에는 떠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환상 속에서 그를 잡고 있는 부정의 단계, 그 다음에는 그 상실감을 간신히 인정하고 텅 빈 듯한 현실과 타협하는 단계, 그 다음에는 자신의 슬픔을 애도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그 모든 사실을 수용하고 넘어서는 단계를 거친다고 하더라.
그녀의 글빨과 그녀만의 단어 선택 능력에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