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는 국가는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 국익을 보호하려고 전쟁도 불사하는 사람들.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로 여전히, 조금 더 폭폭해지는 삶. 자본주의 노예들. 우리는 우리를 돕기 위해 국가, 기업, 돈 등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까지 희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돈 때문에 자살하는 일가족, 기업의 횡포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가장들...
군주와 국가를 위했던 노자의 사유와 달리, 개체의 소통을 꿈꿨던 장자.
미래의 역사에 대한 유발하라리의 주장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장자가 떠올렸다.
편애하는 밑줄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다.
조세당국이나 교육부서 같은 복잡한 관료조직을 상대해본 사람이라면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서식에 적힌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
관료들은 권력을 축적하면서 실수에 무뎌진다.
인간 네트워크의 역사를 검토할 때는 이따금 멈춰서 실제하는 실체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어떤 실체가 실제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아주 간단하다. "고통을 느낄수 있는가?" 질문해보면 된다. 유로화가 가치를 잃어도 유로화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은행이 파산해도 은행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한 나라가 전쟁에서 패배해도 그 나라가 실제로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 고통은 단지 은유이다. 반면 병사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면 그는 실제로 고통을 느낀다. 굶주린 농부는 먹을 것이 전혀 없을때 고통을 느낀다. 갓 태어난 송아지와 떼어놓으면 어미소는 고통을 느낀다. 이런 경우 고통은 실제이다.
물론 허구에 대한 믿음도 고통을 초래할 것이다. 예컨대 국가적 신화나 종교적 신화에 대한 믿음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그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과 신체의 일부는 물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전쟁의 원인은 허구이지만 고통은 백퍼센트 실제한다. 우리가 허구와 실제를 구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허구는 나쁜 것이 아니다. 허구는 꼭 필요하다. 돈, 국가, 기업같은 허구적 실체에 대한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가 없다면 복잡한 인간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똑같은 허구적 규칙들을 모두가 믿지 않으면 축구 경기를 할 수 없고 허구 없이는 시장과 법원의 이점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야기가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단지 허구임을 잊을 때 우리는 실제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되며, 그때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또는 '국익을 보호하려고' 전쟁을 시작한다. 기업, 돈, 국가는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라고 그것들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을 희생하는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무척 멋진 생각이지만, 집세도 못내는 사람들에게는 녹아내리는 만년설보다 자신들의 마이너스 통장이 훨씬 큰 걱정거리이다.
기술은 흔히 종교적 비전의 범위와 한계를 정한다. 신기술은 오래된 신을 죽이고 새로운 신을 탄생시킨다. 농업세계의 신이 수렵채집인들의 정령과 달랐던 이유,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이 꿈꾸는 천국이 농부들의 천국과 다른 이유, 21세기의 혁명적 기술이 중세 교의들을 소생시키기보다 유례없는 종교운동을 낳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공지는이 대부분의 인지과제에서 인간을 능가하면 직업시장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노기술과 재생의학이 80세를 새로운 50세로 만들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 가족, 연금기금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명공학이 맞춤아기를 탄생시키고 빈부격차를 유례없는 수준으로 벌릴 때 인간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코란 또는 샤리아 법, 성경이나 공자의 논어에서는 이러 질문들 중 어느 한가지에 대한 답도 찾지 못할 것이다. 중세의 중동이나 고대 중국에는 컴퓨터, 유전학, 나노기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두개 자극기 연구 관련/ 너무 무서워서 시도조차 못하도록 해서 나를 실패하게 만드는 마음속의 악동같은 괴물들을 떼어낸 나는 누구였지? 그리고 그 목소리들은 어디서 온 거지? 그 목소리들의 일부는 사회적 편견들의 반복이고, 일부는 개인적 역사의 메아리이며, 일부는 유전적 유산의 발현이다. 이 모두가 합쳐져서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샐리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뇌에 대한 자극을 통해) 내면의 독백들을 고쳐쓸 수 있고 심지어 그 독백들을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구글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네가 태어난 날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네 이메일을 모두읽었고 네 통화를 모두 기록했고 네가 좋아하는 영화들 네 유전자 정보 네 심장기록도 모두 갖고 있어. 네가 데이트한 정확한 날짜도 보관하고 있으니 존이나 폴과 만날 때마다 네 심작박동, 혈압, 혈당수치를 초 단위로 기록한 그래프를 원한다면 보여줄 수 있어. 필요하다면 네가 그들과 가진 모든 성관계의 정확한 순위도 제공할 수 있어. 그리고 당연히 나는 너를 아는 것만큼 그들도 잘 알아. 이모든 정보, 내 뛰어난 알고리즘 수많은 관계에 대한 수십년에 걸친 통계자료를 토대로, 나는 너에게 존을 선택하라고 권해, 장기적으로 그와 함께할 때 더 만족스러울 확률이 87퍼센트야. "나는 너를 잘 아는데 너는 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을거야 존보다 폴이 훨씬 더 잘생겼지. 너는 외모를 중시하니까. 내가 '폴'이라고 말해주기를 내심 바랐을거야. 물론 외모는 중요하지,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야. 수만년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진화한 네 생화학적 알고리즘은 배우자감을 전반적으로 평가할때 외모에 두는 비중이 35퍼센트야, 하지만 최신 연구와 통계를 바탕으로 하는 내 알고리즘은 외모가 사랑하는 관계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14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해, 그러니 폴의 외모를 고려한다해도 네가 존과 함께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 이런 충실한 상담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분할할 수 없는 존재이며 각 개인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무엇이 인생의 의미인지 결정할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개념뿐이다. 인간은 더이상 이야기하는 자아가 꾸며내는 이야기들의 지시를 따르는 자율적 실체들이 아니라 거대한 전 지구적 네트워크의 필수불가결한 일부가 될 것이다.
** 신의 세계 다음은 인본주의 (자유주의 인본주의, 사회주의 인본주의, 진보주의 인본주의)
인본주의 이후는 기술인본주의, 신흥 기술종교 (데이터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