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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12. 2020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해도

제니퍼의 북리뷰 (도곡리 오자매)




6개의 단편이 주는 울림이 깊다.

첫번째 단편에 등장한 여고생들이 다른 단편에 각각의 화자가 되어 등장하고, 어느 여름날 같은 교실에서 있었던 평범한 일상이 다른 시선으로 기억된다. 두번째 실린 <초록 고양이>라는 건조한 문체의 단편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뚜렷한 이유없이 사고의 회로가 꼬인 '에미'와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화자(에미의 절친). 언젠가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안증에 시달렸던 언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됐던 까닭에서. 그때 언니는 아침이 오는게 무섭다고 했다. 어떻게 이 긴긴 하루를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때 나는 그런 낯선 언니가 무서웠다. 언니의 상태가 이렇게 지속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하루 하루를, 일상을 지내야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그 사건 또한 잘 지나가서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았다.

우리 5자매 곁을 찾아온 모든 일들이 그러했듯이.






편애하는 밑줄

초록 고양이


"나는 초록 고양이가 되고 싶어, 다시 태어나면"

보라색 눈의 초록 고양이, 라고 말하고 에미는 꿈 꾸듯 미소지었다.

"그 고양이는 외톨이로 태어나, 열대우림 어딘가에 살고, 죽을 때까지 다른 생물과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아."


이런 것은 아주 초기의 증상. 사고가 한없이 허물어진다. 그 때는 아무도 몰랐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땡 땡 종이 울리고 있었다. 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말은, 가공의 불안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것 같아 하기 싫었다. 무서웠던 것이다.


천국의 맛


우리에게 엄마란 돈과 안심을 모두 갖고 있는 친구다. 무슨 짓을 하고 놀아도 엄마와 함께면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는다.


"내일 시간있어?"

요시다는 늘 단도직입적이다.

"있는데"

그래서 내 대답도 그렇다.

"그럼 만나자."

요시다가 구사하는 말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그럼 만나자. 나는 싱글거리는 속내를 눈치 채지 못하게,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러지 뭐" 라고 대답했다.


때로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똑같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어다면 그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아주아주 슬픈 일이다.


사탕일기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수첩을 펼친다. 일기를 쓰는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계속된 습관이다.

유즈에게 파란 사탕 하나.

아야에게 은색 사탕 하나.

오니시 씨에게 은색 사탕 하나.

미부 씨에게 검정 사탕 하나.


파란 사탕은 가벼운 독. 가벼운 벌을 주기 위한 것이니까 아마도 미미한 두통과 구역질 정도.

검정 사탕은 독한 독. 죽음에 이르는 독이다. 지금까지 사탕일기를 쓰면서 몇 명이나 독살했는지 모른다.

한명을 몇번이나 죽인 적도 있다. 몇번이고 반복해서.

그러나 끝내 은색 사탕의 의미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 나쁜 것은 아니리라...

친구 '다이아' 생각이 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녀에게는 두개의 주머니가 있다. 감사 주머니와 벌을 주는 주머니? 암튼 누군가(A라고 하자)에게 고마울때마다 감사주머니에 그사람 이름을 적은 무언가를 넣고, 그 A가 실수하고 자신에게 섭섭한 일을 할때마다 감사주머니의 것을 빼서 벌주머니에 넣는...식이었는데 아마도 벌주머니에 뭐가 많이 쌓이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두번다시 보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그녀의 친구 리스트에서 제외될 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는 상황을 반복하는 외줄타기 인생이었다. 그 아이입장에서 봤을때 나란 아이는 착한일도 많이해서 감사할 게 많지만 그만큼 실수도 많이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직 우리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자주 못보는 만큼 내가 그녀석에게 하는 실수도 줄었으리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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