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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8. 2020

그리운 팀분들께

Letters to Juliet

Angela,


두살밖에 나이차이는 안나도 언제나 언니같은 차장님.

제가 강원도 쪽으로 곧 올라간다는 건 어찌 아셨을까요? 하하.

저는 분명히 전라북도에서 걸었는데 종착지는 경상남도 금계였어요.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가 모호한 그곳에서 점심대신 맥주 한캔하면서 차장님 메세지 봤어요.


맥주도 안 마시는 내가 Beer festival 한다니까 제니퍼 생각이 나더라.
아직 지리산자락에 있을까? 곧 강원도 쪽으로 올라가겠네.
혼자 몸으로 너무 산 속 깊이 다니지 말고, 어둑해지면 얼른 숙소 들어가.
by Angela

전라남도 장흥. 전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인지 몰랐어요.

서울에 비하면 모든것이 열악하겠지만 우리 큰이모부부가 있어서 그런지 제게는 세상 그 어느곳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큰이모부는 뇌 손상과 치매로 저를 못알아보지만, 다행히도 '예쁜치매'라 큰 어려움은 없어요.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추하고 서러운 일이 될 수 있지만 그건모두 젊음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다른건 아닐까 싶었어요. 우리 이모부는 치매 전에도 한결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분이었답니다.

장흥에서 경기도 양평까지 그 먼거리를 우리 다섯자매들 본다고, 입학할때마다 찾아오셨어요.

우리집 형편빤히 아는지라 보온도시락을 사가지고. 큰언니 대학입학금도 내주셨는데, 공치사 하나없으셨고요.

말이 원체 없으시기도 하지만 ㅎ

그저 막둥이 왔냐, 하실뿐. 하루에 한두마디 이상을 안하셨어요 ㅎㅎ 그런 우리 큰이모부라서 그런지, 치매로 절 못알아보고, 이제는 너무나 늙고 늙은 노인이 됐지만 한없이 사랑스럽고 애틋하더라고요.


저도 사는 동안 잘 살다가, 잘 늙고싶어요.


어젯밤엔, 묵고 있는 게하에 마침 여행객이 있어서 같이 한잔했어요. 27살 자전거 여행중인 해경을 꿈꾸는 청년, 애인과 이별하고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온 34살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요. 낮과 밤 모두 맥주로 시작하고 맥주로 끝내는 행복한 나날입니다.


차장님 서울에서 힐링될만한 사진 몇개 선물로 보내고 편지 정리합니다.



어리바리, 설레발, 천방지축, 불안하고 감정기복도 심한 니퍼를 걱정하고 이뻐해주셔서 감사해요.

2016년 해남 땅끝마을, 게스트하우스 '케이프'에서 니퍼드림




Kelly,


잠들기 직전에 부장님 선물과 메세지 받았어요. 감사해요.

그런데 부장님....제가 지리산 들러 장흥, 강진 찍고 지금은 해남인데요. 스타벅스를 아직 발견 못했어요.

기한이 따로 있는게 아니니까, 돌아댕기다 스벅 발견하면 잘 쓸께요!

내일 모레면 벌써, 추석 연휴네요.

연휴 잘 보내고 돌아오세요.

저 없는 사이 우리 썸머 특별관리도 부탁드리고요. 하하하!

제 빈자리 느끼지도 않겠지만요.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6년 땅끝마을에서 감사한 마음담아 니퍼드림




Anny,

아까 땅끝 탑에 있을 때 이사님 메세지 받았어요.

제 생일 기억하고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기 전에 유홍준 선생님의 '남도문화 답사기'한번 읽고 올걸하고 후회했어요.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ㅠ

일전에 로마갔을때도 같은 후회를 했었는데 사람 참 안변하죠? ㅎㅎ

여행하면서 진짜 저의 맹함에 답답해질 때가 많아요. 가까운 길을 돌아가기는 일쑤고,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게 비효율적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발길닿는대로, 목적지를 두면 스트레스 받으니까, 놀멍쉬멍 걷고 있어요. 외롭고, 고독하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하기도 좋고 막연히 늘 그리워했던 전라도지역을 여행하니 일단 좋기는 좋아요. 그중에서도 전남 강진에 귤동마을이란 곳에 다산초당이 있거든요.

나중에 가족끼리 오시면 한번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아서 간단히 사진 보내드리려고요.

니퍼가 보내는 주일밤 선물입니다.

다산기념관 관람비는 무려 2,000원이나 되는데 제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하하!

자 그럼 즐감하세요!!



수원 화성을 누가 설계했느냐고 썸머랑 남자친구가 논쟁을 했다고하는데, 수원화성도 정약용 선생님이 아버지 상중에 정조의 부름받아 설계했습니다. 천문학, 설계, 수리학 등에도 능했다고해요.


두번째 이미지는 강진으로 유배와서 공부하는 모습. 유배에는 4가지 유형이 있는데 정약용 형 정약전은 절도안치로 결국 먹을 것 없어서 죽었고요. 먹을 것 없다는 형의 편지 받고 당시 많았던 들개를 잡아 보신탕 끓이는 법도 다산이 편지에 적어 보내주곤 했대요. 다산은 현은 돌아다닐 수 있는 현리안치라서 그나마 강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나중에 기록을 보면 "강진 사람들이 나를 문등병 환자보듯 하더라"라고 써놨더라고요. 관에서 누구든 정약용과 이야기하면 잡아가고 고초를 당한터라 처음 몇년간은 아무도 그와 말도 섞으려 하지 않았대요~ 어떤 위대한 주막집 주모 빼고는! 술이나 먹고 죽어야지 하던 순간에 그 주막집 주모가 마굿간 등지에서 자는 다산에게 우리집와서 애들이나 좀 가르쳐달라고 말을 걸면서 이렇게 묻더래요. "왜 여자를 천하게 여깁니까" 명색이 실학을 공부하던 정약용은 그 질문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해요. 그 주모 말이 종자는 한번 뿌리면 그만이고, 그걸 품는 것은 밭인데 라고 말하니 그래도 종자가 있어야 밭도 의미가 있는것이라고 다산은 화답했대요. 어쨌거나 어느 학자에게서도 듣지못한 주모의 의로운 이야기를 듣고 죽으려는 마음을 접고 다시 정신차리고 의롭게 살겠다는 뜻으로 주모집에서 살때 그 집을 사의재라고 했대요. 사모언동, 생각과 외모와 말과 행동 네가지를 바꾸고 옳게 생각하겠다는 뜻으로.


정약용이 이곳 강진에서는 4번 거처를 옮김 (사의재.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의 집 그리고 윤씨네 다산초당)

정약용 생가는 남양주에 있거든요. 거기서는 열수 정약용이라고, 그의 호를 쓴대요 다산은 그의 호가 아니라 그저 강진의 차가 많이 나는 산(다산)에 윤씨네 초당이 있었는데(다산초당) 그곳에 정약용이 기거하면서 다산초당이 된거라고 하고요.



해마다 소동파는 봄이 가는 것을 서러워했다고, 그때 스캔들이라는 영화에서 보고 소동파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동파육도 소동파가 즐겨먹어서 동파육이 됐다는데, 그 소동파도 남쪽 바다에 귀양을 갔다는 것도 여기서 처음 알았어요~

정민교수가 쓴 <삶을 바꾼만남>이라는 책을 통해서 정약용과 그의 애제자 황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읽기는 했는데 돌아가면 그와 관련된 책들을 더 찾아봐야겠어요. 흥미로운 사람이에요, 이분 참.

하피첩에 써서보낸 자식에게 한말, 근검!

다산의 지식경영법은 결국 정리-공부-메모하기


이상 다산문학기념관 소개였습니다.

돌아가면 하피첩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꼭 들려드릴께요.

추석 잘 보내세요.

2016년 해남땅끝마을에서 니퍼드림.




Dear, 팀장님


회사에는 당연히 별일 없을 것 같고, 팀장님도 별일 없으시죠? 사부님도 다시 일 하시고요?

오늘은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어요. 차마 험하다는 지리산은 바로 못가고 둘레길을 걸었는데 14km, 5시간 걸렸어요. 둘레길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시작한건데, 산행이나 다름 없더라고요.

정상을 향해 세로로 가는게 아니라 가로로 둘러가는 둘레길 걸으면서 사는것도 너무 목표지향적으로 말고, 주변 챙겨가며 에둘러 가도 괜찮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걷다보니 어느새 목적지까지 왔더라고요.

그나저나, 이 편지를 언제 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밤엔 드려야하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수요일엔 못갈 것 같아요.

무리하면 갈수는 있는데 서울로 갔다가 다시 내려오기가 여의치 않아서요. 여기까지 버스로 세시간 반, 다시 시내에서 한시간 반을 더 들어왔는데, 이 많은 짐을 들고 서울로 다시 가기가 힘들 것 같아요.

사장님이랑 이사님 저녁식사에 가능하면 가고싶었는데, 죄송해요.


다시 연락드릴께요.팀장님.

죄송한 니퍼드림 (2016)



                  


Linda,


린다. 잘 있지요? 여행하면서는 보통 9-10시 사이에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는데 오늘은, 자정이 넘도록 눈을 뜨고 있네요. 왜냐면, 울 이사님께 편지 하나 띄우고 자려고요, 자정이면 맞이하는 울 이사님 생일에 딱 맞춰서!

제가 두고 온 편지는 받으셨지요?

당일에 드리려고 부지런히 미리 편지 써놓고 갔는데, '빨강머리 앤'이랑 '걱정인형' 그것도 잘 받으셨지요?

소박하지만 니퍼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니 예쁘게 간직해주세요.


생일 다시금 축하해요.

팀원들이랑 다같이 이미 음력생일에 맛난거 드셨다는 정보(;)는 익히 들었습니다.

함께하지 못함이 애석했답니다.


곧, 이렇게 뛰어가서 인사드릴께요!


앤을 통해서 기분 좋은 에너지 얻으셨음 하고요.

곧, 저렇게 앤처럼 뛰어가서 인사드릴께요. 손 붙들고 맥주 한잔 나누어요 ㅎㅎ


오늘 하루 행복하게 지내시고요.

돌아가면 둘만의 파티 한번 해요.

올해도 우리 더 많이 사랑하며 지내요.

2016년 니퍼드림




강타민,


제주도 잘 다녀와서 회사에 복귀했지?

나는 집떠나온지 엿새째다. 내일이면 일주일이 되네.

회사 별일없지? 전화했을때 목소리 들으니 밝아보이던데, 새로 온 인턴도 잘 챙겨줘요. 낯설텐데.

오늘 나는 전남 장흥 정남진 편백나무숲에서 억불산 정상까지 다녀왔어. 수지도 와본적 있나?

내려오다 손주랑 올라오는 광주 사는 어머님 만났는데, 혼자 여행온거냐며 멋있다고 악수해주고 응원해주더라. 또다른 어머니랑도 산에서 만나 인사했는데, 읍내까지 차 태워주셔서 편하게 읍내로 나왔어.

산에 다니는 어머니들은 마음씨가 다 좋으시네~



올해 일흔여섯된 우리 큰이모 고무신이 뜯어졌길래 신영복 교수 책에서 보고 배운대로 (아마도 담론이었을거야) 이모 고무신을 달력에 대고 그렸다는거 아니냐. 대단하지?

다음주엔 광주에서 이틀 머물 생각인데 혹시 특별히 추천할만한 곳이 있음 알려줘요.


집으로 가는 길에 삼거리에서

맥주안주로 닭강정하나 사서, 이모 집으로 간다.

하루에 한번 맥주를 꼭꼭 마시는 우리 막내이모랑 한잔 할란다.

또 연락할께. 니퍼드림




애슐리


여기는 남원이야.

남원 추어탕을 보니 자꾸만 서울에 두고 온 니 생각이 난다.

여기서 한번 더 진짜 남원추어탕을 사줄 수 있다면...좋겠지만, 추석 전까지는 바쁘다고 들었으니 추석지나고 제주도에서 보는 걸로 하자. 내가 제주에 있는 동안 놀러 오겠다는 수많은 이들 중에서 아직 확정된 일정을 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거든? 맘은 원이로되 추석밑에 일정이 다들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너도, 일정이 안되면 어쩔 수 없으니 부담갖지 말고, 생각해보고 연락줘요.


어젯밤에 말야. 너무 배고파서 잠이 여러번깼는데 우리 집이 아니니까 뭘 찾아 먹을수도 없고 넘 괴롭더라.

그러다 문득 여행길에 애기들 보면 주려고 사탕이며 초콜릿을 넣어둔 지갑이 생각나더라. 작은 미니미 자유시간을 꺼내서 아주 맛있게 먹고, 사탕하나 더 먹고 나서야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ㅋ


어젯밤 그 난리 (배고픔을 견디는 것)를 겪고, 오늘 혼자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남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결국 그걸로 내가 득을 보게되는구나. 때때로 손해보는 것 같고 억울한 일 있어도 그동안 살던대로 남 도와가면서, 베풀면서 살다보면 그게 결국은 날 위한거구나, 하는 그런 생각말야. ㅎㅎ


더 사랑하고, 더 나누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이쪽으로 올 수 있는지 일정 체크해보고

마음 정해지면 알려줘

제주도에서 슐리를 며칠이라도 보길 희망하는 

니퍼언니 드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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