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선운사에서

by 책읽는 헤드헌터

모두가 잠든 군산의 아파트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꺼내 아이폰과 연결했다.


1. 별두개 맛집 <연기식당>에서 저녁으로 풍천장어를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반반 입맞에 맞게 생강과 마늘 고추 넣어 깻잎에 실컷 싸 먹었고

2. 집에 오는 내내 배부르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성당에서 미리 사둔 야채빵과 슈크림빵 두개+ 꿀꽈배기 과자+ 바나나킥 한봉지+ 귤 서너개를 클리어하고

3. <역도요정 김복주>를 보다가 잠이 든 내 친구


, 의 숨소리가 묘하게 안도감을 주는 밤이다. 이런날, 이런 기분으로 서울집에 혼자 남겨졌다면 어땠을까?


헤드헌터로서 나의 주된 일은 미들맨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전 고객사와 후보자의 needs를 맞추는 과정에서 몇가지 ‘커뮤니케이션 이슈’가 생겼다. 아직도 그 이슈는 on-going 중이며 그 이슈 한가운데에서 나는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감정- '을'이 가진 위치의 한계- 때문에 괴롭다.


이 고객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한달간의 과정을 가만히 복기해본다.


보통 이슈가 벌어지면 그 이슈 안에서 나는 내가 연단되어야 할 부분과 '메세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누군가를 원망한들 소용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바 원인제공자를 발본색원해서 비난하기보다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하는지 집중하는 게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blame 할 대상을 찾아 책임을 전가하는 건 제일 쉬운 일이지만 마음이 편치않을 것이다.


되도록 심플하게, 때로는 건조하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해결점을 찾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 지점이 보이지가 않는거다.


웬만한 케이스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아내는 편인데 애석하게도 지난주 금요일 고객사와 생긴 커뮤니케이션 이슈에 대해서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게 맞는지에 대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컨설팅이나 협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대와 일을 해본적이 없는 나는, 지금의 이 케이스가 너무나 당황스럽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안다. 친구와 친구 부모님과 함께 들른 선운사를 걷는 동안 지금 중요한게 결코 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애써 지우려고 했다.


선운사에서 기대했던 그녀석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뱃속에는 장어를/ 마음에는 위안을 담아왔다


선운사에서 파는 불교 지혜서에 그런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모든 걸 그대로 맞으라고. 인생에는 행복과 함께 고통도 다가오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아! 그때 그 캘린더를 사왔어야한건데.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는데, 정확히 생각이 안난다. 언젠가 다시 선운사를 가게 되면 꼭 사와야지)


어차피 지나갈 일이라면 하늘의 저 구름처럼 내 마음에 잠시 머물다 이내 지나가버리길.

이 일로 더 고통스러운, 더 난처한 일이없기를.


#선운사 #불교지혜서 #부처님말씀 키워드 검색해봐도 선운사 그 캘린더 글을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지금의 내 맘을 가장 잘 위로해줄 글귀는 이근대 시인의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는 시. 마음에 담아둔 어떤 감정으로 괴로운 이가 나 말고도 또 있다면 부디 그에게도 이 시가 위안이 되었음 좋겠다.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놔두라

바람도 담아두면 나를 흔들 때가 있고

햇살도 담아두면 마음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있다.

아무리 영롱한 이슬도 마음에 담아두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예쁜 사랑도 지나가고 나면 상처가 되니 그냥 흘러가게 놔두라.

마음에 가두지 마라

출렁이는 것은 반짝이면서 흐르게 놔두라.

물도 가두면 넘칠 때가 있고 빗물도 가두면 소리내어 넘칠 때가 있다.

아무리 즐거운 노래도 혼자서 부르면 눈물이 되고

아무리 향기로운 꽃밭도 시들고 나면 아픔이 되니 출렁이면서 피게 놔두라.

이근대 시인의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때문입니다.
고후 4:17-18





<<이정도면 낙심할꺼야, 넘어질꺼야, 절망할꺼야 싶겠지만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져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보이지 않는 <믿음>때문입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이 그 모든 것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인터넷 예배를 통해, 한번 더 확실히 깨달았다. 고난 속에서도 내가 일어나고 회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은혜와, 사람들 때문이란 걸.






에필로그

친구: 내일 고창 선운사 가자. 오는 길에 장어도 먹고.
나: 좋아
친구: 그 친구 집이 고창이랬나?
나: (단박에 알아듣는다) 맞아. 그래서 복분자주를 싸다줬었지. 집에 갔다 오면.
친구: 내일 선운사에서 마주치면 대박이겠다.
나: .................


혹시 모를 그 '혹시'에 추억에 잠긴다. 우리의 사랑은 어쩌다 끝이났을까 싶다가, 추억이라도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서른 초반까지만해도 나 없이 행복하지 말았음 했는데 시간이 이쯤 흐르고 마흔이 지나가려고 하다보니(내년이면 마흔하나다....;;) 그냥저냥 별탈없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맘이 들기도 한다. 녀석을 생각하면 여전히 모순된 감정이 반복된다.




연기식당. 소금구이 양념구이 둘다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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