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한 그대에겐 잘못이 없다
기이한 경험을 했다.
한달전 회사동료에게 소개를 받아 헤어커트를 하러 갔다.
위치는 집근처. 커트비용은 6만원.
커트 잘하는 헤어맛집 찾는일에 매순간 진심이다.
보통 커트에 6만원이라는 비용을 치르지 않는다. 2만원에서 3만 5천원 사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엔 #인생커트 한번 만들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결과물에 대해서는 ‘대만족’은 아니었다.
헤어스타일은 요리보고 조리봐도 만족스럽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커트를 돋보이게 하기위해 볼륨매직+다운펌을 같이해서 26만원을 결제했다. 심지어 첫방문 할인을 받았는데도 그 가격. 커트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세밀하게, 정성껏. 머리를 자르는 동안 받은 서비스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샵을 나올땐 '커트비용 6만원에 대해 전전긍긍하지 않는 소득수준을 유지해야겠군'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달에도 와야지, 하면서.
기이한 일은 그뒤, 내게 생긴 변화다.
내가 갔던 B헤어샵은 잠실의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이파트 상가내에 입점한 곳으로 이제 막 오픈해서 손님들이 하나 둘 알음알음 찾아오는 곳이었다. 내 커트를 담당했던 원장은 국내유명 헤어숍에서 performance diretor 라는 타이틀로 헤어 디자이너들을 가르치는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다, 독립한 후, 여기 잠실에 자릴잡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물었다.
그는 이제 막 오픈한 자신의 헤어숍을 찾아온 신규고객의 유입출처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의 질문에는 '어느 아파트 살 정도로 재력이 있나요' 라는 의도가 1도 없었다. 그저 이 상가를 기준으로 세 이파트 중 <which apartment 에서 왔냐>를 묻는 질문이었을 거라고, 여전히 나는 생각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상대가 묻지 않아도 집에 숟가락 몇개가 있는지, 어떻게 하다 지금의 일을 하게됐고, 첫사랑은 언제였는데 어떻게 마무리가 됐는지, 형제자매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오늘 여기에 버스를 타고 왔는지 걸어왔는지 상대가 묻지 않아도 시시콜콜 수다를 늘어놓는 TMI 유형의 사람이다. 게다가 십지라퍼.
맞은편 빌라 살아요.
근데 여기로 이사온지는 얼마 안됐어요.
햇빛도 잘들고 통풍도 잘되는데 무엇보다 베란다가 오각형 구조로 되어 있는게 특이해서 마음에 들었거든요.
(어쩌고 저쩌고....)
평소의 나라면 이렇게 시시콜콜 답변하고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더 했을거다. 잠실 전세난, 요즘 빠져있는 배우, 영화, 책, 드라마 뭐 등등. 그런데
맞은편에 살아요...
라고만 대답했다.
나이 마흔에(이제는 마흔 하나구나!) 아직 빌라에 그것도 전세로 산다는게 창피했던건가?
그가 물어본 C 아파트 시세는 33평 기준 매매가가 20억, 전세가 9억이다.
나로써는 도저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집이다.
그때 미처 답하지 못한 그의 질문에 이제라도 답을 하자면, 나는 전세 투룸에 살고있다.
그마저도 3년전 원룸에서 이사나올때 언니에게 전세자금 대출조로 1억원을 빌려서 얻어진 집이다.
3년 동안 <1억원이라는 대출금>을 갚은 스스로가 용하고, 꽤 기특했으며 대견하다, 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대견한 마음에 초라함이 들어 앉았다.
왜 나는 본투비 부유하지 않았을까.
언제까지 아둥바둥 서울살이를 헤쳐나가야할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게 결코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그는 1시간 동안 정성스럽게 내 머리를 잘라주었고 무척이나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꽤, 만족스러웠다. 한달에 한번은 이 서비스를 누리고 살겠다, 다짐할만큼. 또 지인 모두를 소개하고 싶을만큼. 문제는 그냥 내 마음이었다.
나는 한번도 아파트 삶을 꿈꿔본적이 없었다.
부동산학과를 졸업한 뒤, 개발호재있는 땅들을 골라 부동산 기사를 썼지만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주식에도 관심이 1도 없었다. 주변에는 자기자본금 3천만원으로 3-4억 아파트 갭투자를 하는 지인도 있었지만 그런건 남에게 일어난 운 좋은 일이다, 생각했다. 투기와 투자 모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회사 그만두면 전세금 가지고 양평에서 작은 집한채 짓고 마당에서 개. 알파카. 닭. 고양이. 새. 코끼리....키울 수 있는건 다 키우고 닥터두리틀처럼 살아야지,
이정도 가졌으면 됐지 더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 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두개있는 것들은 무조건 남들에게 나눠주곤했다. 두개는 왠지 너무 많은 느낌이다.
오자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라면서 새옷보다 언니들 옷을 주로 물려입었고 한번도 내방을 가져본적없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부터는 원룸이라고는 해도 내방이 생겼고, 내 토스터기, 내 밥솥, 내침대, 내책장, 내오디오가 내 공간에 있어서 갑자기 졸부가 된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그런 나를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받은 그 질문 하나로 내 삶을 이루는 근간이 전부 다 초라하게 느껴졌다. 인스타그램을 업로드할때도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드넓은 거실컷을 올렸던데 지금 내 사진은 거실이 너무 좁아보이진 않을까...이건 어떨까 저건 어때보일까, 끝이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한동안 인스타 업로드를 하지 않았다.
이사를 가야하나.
어차피 지을집, 빨리 집을 지을까?
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오늘, 이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다시 감사함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 사랑하는 아디안텀, 뱅갈 고무나무, 꽃기린, 율마, 호야, 럭키, 사랑초, 오색마삭이줄 애들에게 물을 주고,
좋은 영화 한편-그렇게 우린 춤을 추었다-을 보고
좋아하는 책 -월든-의 도입부를 다시 읽고
좋아하는 드라마 한편-런온-을 보고
좋아하는 팟캐스트-주진우 라이브- 를 듣고
좋아하는 장난감-블베큐파- (의)로 블베일기를 쓰고
시사잡지-시사인-을 읽고
내 몸을 위해 해줘야만 하는 운동-스쿼트 백번-을 하고
재택이라도 목욕재개하고 내일을 시작하고자 늦은밤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나오니
따뜻하고 편안하고 안락하면서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작고 비루해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내겐 세상 어느곳보다 여기가 안락하구나.
외려 너무 많은걸 가진건 아닐까?
내가 필요로 하는 파랑새는 내집에, 내게 있었는데.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이미 다 내게 있었는데, 그걸 잠깐 놓쳤다.
한달여간 나를 괴롭게 한 고민은 오늘로써 끝. 완전히 해결됐다.
(물론, 다시 언제든 어떤 계기로 초라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걸 (외모빼고) 사랑했던 나를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마음이 들게 한 그 사람.
단언컨대 그대 잘못은 아니었다.
어느 아파트 사냐고?
나는 아파트에 살지않아.
내 꿈은 산들바람 머무는 마당이 있고, 목련나무가 마련해주는 그늘이 있고, 아빠 산소가 멀리 내다보이는,
시골 우리집 근처에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집을 한채 짓는거야.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꽃과 나무와 동물과 햇빛을 즐기다 갈 수 있는 그런 곳.
마당을 비추는 햇볕의 따뜻함 속에서 화창한 하루나 여름날을 아낌없이 쓸수 있는 곳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가슴뛰게 하는 음악을, 이웃의 눈치를 보지않으며, 가장 큰 출력으로 실컷 들으면서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나는 그런 집에서 살꺼야.
아파트시대에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각자 스스로 답을 찾았음 좋겠다. 행복은 아파트에만 있는게 아니니까!
행복의 첫째 비결,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가.
둘째 비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누가뭐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된다.
셋째 비결, 집과 채소밭을 가꾸는 것.
넷째 비결, 행복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쓸모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니까 관계속에서 한몫을 하는 것,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다섯번째 비결,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렸다. 시니컬하기보다 고맙게 생각하기.
여섯째,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나눌때 행복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써머리한 법정스님 <내가 사랑한 책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