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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r 01. 2021

<허재>로 말할 것 같으면

그리고 허웅 & 허훈



이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5자매 불화의 씨앗이었고, 미저리 언니가 밥상을 엎게 만든 장본인이요, 스알못 제니퍼 마음을 처음으로 뺏어간 스포츠맨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아홉살 인생에 처음으로 만난 농구대통령.


당시, 로빈슨과 여우(1번과 3 언니) 현대팬이었다.

로빈슨은 이충희를, 여우는 '코트위의 여우'라 불리던 이원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척점에는 기아팬이었던 미저리와 뚱아 (2번, 4번언니)가 있었다. 나를 제외한 언니들은 2:2로 편을 나눠 농구경기를 보곤했는데 때로는 응원이 과열되어 자매간의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기아가 지거나 허재가 5반칙 퇴장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영락없이 미저리 언니가 밥상을 엎으며 분풀이를하던 나날이었다. 분풀이 상대는 당연히 현대팬 로빈슨과 여우였지만 애꿎은 나까지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도 많았다.


이 모든게 현대가 기아를 인수하기 전의 일이다. 그땐 미처 알 수 없었던.


5자매 캐스팅보트였던 나는 남몰래 허재를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를 응원하고 싶지는 않았던 게, 성질머리 고약한 미저리와 같은 팀을 먹고 싶지 않을 뿐더러 승승장구하며 기세등등한 기아에 비해 왠지 상대적으로 열세(했다고 느껴졌던) 현대팀 응원을 돕고 싶었다. 현대도 슛도사 이충희 덕에 결코 약체가 아니었지만 그땐 왠지 허동택 트리오때문에라도 기아가 절대 강자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나는 허재와 함께 허동택 트리오를 (속으로만) 연모했다.

허동택-세사람 모두 특출나게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밤마다 꿈에 번걸아가며 그 오빠들이 나오곤했다. 물론, 사춘기 소녀의 사랑은 그뒤로 여러번 움직였지만 신기하게도 돌고돌아 다시 허재와 허재 아들들을 좋아하게 됐다. 나원참.


(중학교시절엔 우지원, 김훈, 에 빠져 독수리5형제가 속한 연대팬이 되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그토록 싫어했던 고대-신기성의 팬이 되어 TG삼보를 응원하기 위해 원주엘 자주 갔었다)


뭐 그렇게 직장에 치여 삶에 치여

차츰차츰 농구와 멀어지던 즈음,

2013년 어느날 강동희 승부조작사건이 터졌다.

대체 왜 그랬는지, 팬으로서 속상했지만 내막이 더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프로농구연맹에서 영구제명되었던 그는 다행이랄지, 지금은 스포츠맨들의 전도사가 되어 승부조작의 위험성에 대한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그의 아들들도 농구선수를 꿈꾼다는데, 아버지의 과오가 부디 큰 벽이 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어느날.

바야흐로 2016년 국회의원 선거 즈음. 허재에게 대거 실망하는 사건이 생겼었다.

때아닌 국회의원 지지유세에 나의 영웅이 등장한 것. 아니 왜, 여기서 농구대통령이 나오는거지? 한참을 생각했다. 개인적으론 음주사건에 휘말려 스포츠 뉴스에서 그를 봤을때보다, 나경원 유세 현장에 참여한 그의 동영상을 봤을 때 더 충격적이었다. 그의 지울수없는 흑역사가 있다면, 이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는, 그런 자리에서 나의 전설이 등장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잠깐, 총알탄 사나이, 이야기

TG삼보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면 바로 신기성이다. 허재가 전성기 시절을 지나 원주나래로 이적했을무렵에 만들어진 희귀하고 소중한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프로에서 신기성의 주니어 시절을 만나볼 수 있다. 노랗고 빨갛게 머리를 염색했던 시절인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꼴보기 싫더니,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몇년 뒤 나는 그의 빠순이가 되어버렸다.

이토록 한치앞도 알수없는 나의 애정전선이란...

이런 나를 두고 조카는 <이렇게까지 전방위적으로 덕질하는 사람은 처음본다>고도 말했지만 이런 면모는 확실히 엄마로부터 모계유전된것 같다. 나훈아, 남진을 거쳐 임영웅에 푹 빠져 지내는 열정적인 엄말보면 지난 내 모습이 이해가 되는 거다.


무튼, 전창진감독이 이끌던 TG삼보 시절, 나는 신기성의 모든 자료를 스크랩하며 그의 경기를 직관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무려 원주까지!!!! 대체 어떤 매력이 있었을까. 그에게는? ㅎㅎ

그는 이상민처럼 지략에 능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공격력이 뛰어난 타입의 포인트 가드였다.  총알탄 사나이라는 별명 그대로 스피디한 공격에 능한 선수다. 다만, 은퇴 후 해설을 시작하면서  '이것이 제가 원하는 농구입니다'라는 밑도끝도 없는 해설때문에 빈축을 사며 농구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어떤 플레이인지에 대한 일언반구 설명없이 이거시를 남발한 탓에 신거시, 킹거시, 이거시스트 등의 별명을 얻게된 것. 오늘 몇 거시냐 라는 말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다시 허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가끔 예능에서 그가 3점슛을 쏘는 장면을 보는데, 빗나가는 걸 목격할때마다 가슴이 쓰려온다.

아들 허웅과의 슛대결에서는 3점슛 10회 도전에 겨우 1번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럴때마다 속이 상하는 거다. 농구대통령으로 코트를 누비던 지략가 허재도 세월앞에 속수무책인가 싶고. 뭉찬, 뭉쏜을 통해 이제서야 허재를 알게 된 어린 친구들은 그가 왜 농구대통령이었는지 상상도 못할거다. 그들에게 제발 한번씩만 90년대 기아경기를 풀타임으로 봐달라고 말해주고 싶다. 전성기 시절 허재 경기력에 대해서는 나무위키를 백번 읽는것보다 그 시절 하이라이트 경기 한번 보는게 나으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일단 읽지말고 보라, 고 강하게 권해주고 싶다.





화려했던 선수시절(플레잉 코치 시절 포함)을 뒤로 하고 은퇴하는 그를 보면서 어찌나 울었는지.

이게 블낙이야? 라며 심판에게 어필하던 유명한 짤은 지도자로서 농구인생 2막을 시작했던 허재의 극히 일부분, 단면일 뿐이다. 중국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온 장면도 마찬가지고.



한때 국가대표 농구팀 수장을 맡았을 때 아들 둘다 국대로 뽑았다고 #국대논란 같은것도 빚었었는데 다른 농구선수들 입장에선 특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KBL 보다보면 납득이 안가는 것도 아니다. 둘다 잘하긴 잘 한다.


이제는 예능으로 돌아와 다시 우리 앞에 선 농구대통령


타고난 승부욕과 승부근성으로 피가나고 손가락이 부러져도 투혼을 발휘했던 선수시절과

속끓일 일+ 욕먹을 일이 많았던 감독시절을 지나 이제는 예능으로 돌아와 다시 우리 앞에 선 전직 농구대통령 허재를 보고 있노라면, 오래된 팬으로서 마음이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

경기력에 대한 평가나 감독전략에 대한 비판, 경기 승패로부터 오는 모든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연인 코재를 보는 지금이 그저 좋은 까닭에서다.

요즘엔 우리 허재옹 두아들 웅이 훈이 덕분에 진짜 오랜만에 KBL 중계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어디 응원하냐고?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히 원주DB다. 여자가 갑빠가 있지! 한번 원주면 영원한 원주다. 참고로 원주에 아무 연고도 있지 않다. 무튼, 그렇게 다시 십몇년 만에 원주DB 응원을 시작했는데 10개팀 중 9위를 달리고 있더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아니다 싶지만 하위팀이라고 해서 팀을 떠날 수는 없잖은가! 모름지기 야구는 두산, 농구는 원주니까.

9위팀이 플레이 오프 갈 수 있을까? 웅아. 너만 믿는다.




에필로그 결국 원주DB는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 못했다.

21-22 시즌을 기대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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