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 신치에 대하여

자만추와 생파사이 (어느날 남성역에서)

by 책읽는 헤드헌터



신치는 **우란분절에 매년 그의 영혼을 위한 등을 올렸다고 했다.

그가 떠난지 8년이 지난 시점에,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정말? 매년?
왜, 넌 등을 올리는 건데?

산차: 모르겠어. 난 이상하게 살이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안쓰럽더라.
그분 외에도 다른 영혼을 위해서도 등을 올리고 있어.


신치를 처음 만난 건 2011년 겨울, 교대의 어느 허름한 사무실에서였다.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 그녀는 영업 담당자로, 나는 홍보 팀장으로 합류하기로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도 철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철이 없어서 그 모든게 가능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재고 따질거 없이 처음부터 신치가 마음에 들었다. 낮은 어조로 조곤조곤 말하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그러면서도 남의 의견을 깎아내리지도 않는 아이. 무엇보다 쥐뿔도 없으면서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가 좋았다. 나는 그녀를 알아봤다.

그러니까 그애나 나나 아무것도 없는+스타트업에서+교통비조로 십만원을 월급으로 받으면서도 용케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부류의, 순진무구한 열혈청춘이었던 거다.


Part I.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안쓰러워서 등을 올린다는 아이, 신치


그때 내가 그 회사에 조인한건 순전히 <그사람> 때문이었다. 똘똘이 스머프 같은 안경을 쓰고, 예의 그 개구쟁이 웃음으로 주변 사람 모두를 무장해제시키곤했던, 백팩을 맨 청년사업가. 신치또한 그를 보고 합류했을거다.


당시 우리는 소수의 인원이 일당백으로 모든걸 감당해야했다. 영업 4명, 사업운영 총괄 1명, 개발자 1명, 홍보 1명 그리고 대표님까지 고작 7명이었는데 영업은 신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표님의 가족이었다. 가족이 엮여서 불편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표님 가족이 멤버로 있어서 딱히 불만이 크지도 않았다. 지면을 할애해서 쓰기는 그렇지만 그들 모두 나를 좋아했다. 신치는 자신이 맡은 지역인 홍대를 누비며 우리 서비스에 가입할 업체를 확보했다. 나는 나대고 기자와 블로거들을 만나 ‘돈없는 스타트업신분’이라고 읍소하면서 원하는 것들(홍보기사)을 하나하나 관철시키고 있었다. 아침 8시부터 새벽 서너시까지 동분서주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어디서 그런 열정과 체력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출근하는것 자체가 즐거웠기에 가능했을거다.


하지만, 인생의 일이 그러하듯 그렇게 모두가 열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투자를 받지 못했다.

투자를 받지 못한 스타트업의 미래가 그렇듯이 우리 서비스는 점차 점차 경쟁업체에 밀려나면서 결국 서비스를 종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당연히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의 곁에서 마무리를 도왔다. 중간에 그만두려고 했으나, 마무리까지 같이 하자는 그의 요청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이후 신치는 자발적 비정규직의 삶으로

나는 지금하고 있는 일인 헤드헌터로

우리 모두의 원동력이었던 한 대표님은 우리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외국계 컨설팅기업에 컨설턴트로 조인하게 됐다.


청운의 꿈을 안고 스타트업을 시작했으나

현실은 꿈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생이란게 결코 녹록지 않다는것을

하루하루 입술 바짝바짝 말라가며 몸소 체험했던 1년여의 시간을 보냈던 그.


새로 합류한 조직에서는 그가 부담도 자금걱정도 내려놓고 조금은 편하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물론 얼마간의 경제적 손해를 보긴 했지만,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이라 생각했기에, 그의 아내와 그를 꼭 닮은 아이들 둘과

금세 안정을 찾아갈거라 믿었었다.


지나고 보니 그건 나의 바람이었고 착각이었다.


아주 좋은 조건을 제안받고 새로운 회사에 출근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 다음주 였을까.

갑작스런 그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회사 서비스를 종료한 후 몇년만에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장례식에 모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신치 외에는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흐른 8년이라는 시간.


문득문득 그가 많이 그립고 원망스러웠다.

살아 있었더라면…

유달리 술을 좋아했던 그와 술한잔 기울이면서 그땐 그랬지하며 지치지도 않고 너무도 익숙한 에피소드를 반복하면 그 시절을 추억했을텐데.

내 이야기에 누구보다 귀 기울여주고, 힘들다 말하면, 그가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예의 그 사람좋은 미소를 담아 유머를 담은 위로를 건네주었을텐데.


무모했지만 즐거웠고 꽤 열정적이었던 그 시기를 추억하면 늘 그가 먼저 떠오른다. 그의 기일에 맞춰1년에 한번씩 신치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그나마 그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올해 5월, 갑자기 신치가 찾아왔다.


코엑스에 일이 있어 들렀다며 사무실에 들른 신치는 그를 위해 매년 등을 올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다음주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집으로 놀라오라고, 초대를 하는거다. 한번도 가본적도 없는 신치의 집. 한번도 축하해준 적 없는 신치의 생일.



Part II. 10년만에 걔 생일을 알았다.


니 생일이라고?


그러니까 알고지낸지 10년만에 걔 생일을 처음 알았다. 지인 생일은 꼭 챙기는 편인 내가, 신치 생일을 십년이나 모른체 지나갔다는게 신기했지만 아마도 그건 그녀 자체가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타입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초대를 받았으니, 케익이라도 하나 사가야할 것 같아 밀가루를 싫어하는 신치를 배려해서 최대한 치즈가 많이 들어간 뉴욕치즈 케익 하나를 사서 그앨 보러갔다.


남성역은 생전 처음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늑한 동네라 별로 낯설지 않았고 깨끗히 정비되어 있는 골목골목이 마음에 들어서 잠깐사이 ‘이 동네로 이사와도 꽤 정겹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처음 가보았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건 그곳에 신치가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다시, 사당동 신치의 집에서 그녈 만났다. 손님맞을 준비를 아무것도 해놓지 않고, 내가 도착한 다음에야 비로소 바닥에 널려있던 빨래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아이. 너무나 신치다운 행동들 ㅎㅎ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음식은 맛있었다.

조명도 없고ㅡ 음악도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아주 오랜만에 신치의 요즘 생활에 대해 들었고, 몇년전부터 업데이트 되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몸에 해로운 것들은 멀리하고, 명상은 물론, 요가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매주 들르는 절과 가까운 곳에 땅을 샀는데,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그곳 부여에 집을 짓고 뿌리를 내릴꺼라고도 했다. 최근에 법명, 이란 것도 받았다고 했다. 법명은 그 사람 성정을 그대로 담아 스님이 이름을 지어주는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모두에게 덕을 베푼다는 뜻의 이름을 받았다고 했다. 불자는 아니지만 나의 성정을 담아놓은 내 이름은 어떻게 지어질지 몹시 궁금해졌다.


기독교인인데 법명 받아도 되니?


그나저나ㅡ 나도, 양평으로 갈 생각이야. 나중에 카메론 디아즈랑 케이트 윈슬릿나왔던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처럼 집을 바꿔서 시즌을 지내보는 건 어때?


내 제안에 신치는 언제나처럼 흔쾌히 좋은 생각이라며, 그러마, 해주었다. 비록 그의 파트너는 양평보다 부여가 훨씬좋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둘만이라도 바꾸면 되니까 ㅋㅋ


그런데 정작, 오늘 신치를 만나면 묻고 싶었던 걸 묻지는 못했다.

왜 십년간 꾸준히 나를 찾아와주었는지,

왜 내게 늘 인연을 소개해주려고 하는지

그리고

삶의 방향이 같은 파트너와 싸울 때,

가끔은 끝도 생각하는지,

끝을 생각했을때 어떻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관계에 대한 고민끝에 얻은 그녀의 생각들.


조만간 다시 시간을 내야겠다. 아직도 듣고 싶은 이야기들, 묻고 싶은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 우란분절: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 우란분재(盂蘭盆齋)는 흔히 백중이라 부르는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 행사이다. 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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