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아침에 석촌호수 한바퀴를 뛴 것을 제외하면 한발자국도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학창시절에도 이렇게 엉덩이 무겁게 공부한 적이 없는데. 오늘 거의 11시간을 일했다.
유퀴즈에서 서울대학생이 나온걸 본적이 있는데 그때 큰자기 아기자기가 <대체 어디까지 어떻게까지 열심히 공부해봤는지>에 대해 물었었다. 그녀의 대답은 '12시간내내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며칠내내 공부를 했다' 였는데, 그녀에 비하면 나는 10번도 넘게 엉덩이를 떼긴 했지만 학교다닐때도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력을 발휘한적이 없었기에, 스스로가 조금 대견했다.
남들이 볼때 더 열심히 하는 척 하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산만하기 이를데 없는 내가, 이 더운 날에, 하루종일 땀 흘리며, 딴짓을 거의 안하고 회사에 있을때보다 오히려 더 집중해서 일하고 있다니! 남들이 보나 안보나 내가 하고 싶을땐 하는 부류의 인간인건가...남들이 보나 안보나 안하고 싶을땐 정말 죽어라 안하는 그런...인간, 하하하.
아침에 운동을 안했더라면 오늘 하지 않은 운동을 '해야지, 해야지'하면서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는 않고 고스란히 그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을텐데ㅡ 또 오늘 한발자국도 안 나간것에 대해 몸에게 조금 미안했을텐데
오늘은 아침 운동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였다. 갑자기 장기하의 <별일없이 산다>라는 노래가사랑, 하완 작가의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너무 즐겁다는 내용의 일러스트가 생각났다. 별일없는 하루가,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싶으면서. 맞다. 날씨가 더운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더운 여름날 더 덥게 지나는 걸 좋아해서 일부러 에어컨도 안 켜고, 선풍기도 안 쓰면서 가끔 부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는 정도로 여름을 보내는 변태틱한 성향이 있는데 (물론 애인이 있을땐 안그렇다.최대한 뽀송뽀송한 상태로 있는 걸 좋아한다......다만 지금은 애인이 없는 관계로;;) 유일한 걱정거리가 있다면 모기와의 전쟁이다. 모기장을 살 정도로 모기에게 많이 물어뜯기는 편인데, 이번 여름도 벌써 다리에 크고 작은 상처가 많이 생겼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작년에 쓰던 모기향이 딱 하나 남아있던 게 생각나서, 불을 붙여 뱅갈나무에 걸쳐두고 왔다. 라이터가 집에 있는 것에도 어찌나 감사한지! 가스레인지도 없는 마당에 (이사오면서 아예 가스연결을 하지 않고 인덕션만 설치했다) 라이터가 없었더라면 난감했을텐데 별게 다 감사한 밤이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쓰다보면 언젠가는 말도 안되는 에세이라도 나올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글쓰기 알람을 맞춰놓았는데 어겼다. 원래는 어제 발행했어야 했는데...어제는 열심히 <콜레라 시대의 사랑1>을 읽는데 정신이 빠져있었다.
지금 시간 밤 9시 47분.
코로나 시대에도 야근이 잦다며 택시안에서 연락 준 후보자와 통화를 나누고,
10시 넘어서 이력서를 보내준다는 후보자와 통화를 앞두고 있고,
자정이 되어도 좋으니 오늘 안으로 꼭 이력서를 보내달라며 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고객사 사장님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지는 시간이다.
내일배움카드로 공부중인 직업상담사 강의도 들어야 하고, 어제 다 마무리짓지 못한 콜레라시대의 사랑도 읽어야하고, 얼이형 노래도 들어야 하는데 오늘도 나의 시간은 참으로 부족하다.
24시간이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별일없이 살고 있음이 즐거운, 어느 평범한 화요일의 기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