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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Aug 02. 2021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르시아 마르케스


코로나 시대니까, 콜레라 시대에는 어땠나 싶어 단순한 생각으로 이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콜레라, 라는 처음 경험해보는 대재앙 앞에 사람들의 인식이 궁금했는데 그런것은 커녕 단지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였다. 철두철미하게 사랑에<만> 입각해서 쓰여진 책!


콜레라의 증상과 사랑의 열병 증세가 같아서 상사병에 걸린 남주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콜레라인가 오해받았다는 문장과, 결국 노인이 된 후에야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 두 남녀가 세상의 시선없이 마음껏 신혼여행같은 사랑 여행을 만끽하고자 -그러니까 배에 짐과 사람을 싣는 걸로 인해 불필요하게 세간의 이목을 받는 것을 피하려고-콜레라 환자가 있다는 표시를 달아 자기들끼리만 <멈추지 않고 바다를 항해했다>라는 마지막 문장 정도에.....콜레라가 언급되는 정도랄까?


대략 줄거리는 그렇다.

첫사랑을 잊지 못한 한 남자가 자그마치 51년 동안, 한 여인의 사랑을 갈구한다는 내용.

그 여자를 얻지못한 대신, 모든 여자를-유부녀든, 미성년자든- 가리지 않고, 탐했던 그의 사랑이 ‘집착에 가까운 병’처럼 여겨져서 처음엔 몰입이 잘 안됐다. 첫사랑 여인이 미망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후, 수백통이 넘는 연서를 보내고,결국 그 첫사랑 여인(페르미나 다사)과 나이 일흔에 재결합 비슷한 걸 한다는 내용에 공감이 잘 안되는 거다. 첫키스를 나눈 순간이나 첫날밤에는 노환으로 인해 생긴 특유의 노인 냄새와 개구리처럼 축 처진 피부를 서로 감내해야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아.....이런 상황속에서도 '몸으로 나누는 대화'가 의미가 있나보다, 싶을 뿐 두 사람의 재회가 크게 감동적이진 않았다.

다만 이 책을 읽는동안 괴테의 베르테르 생각이 많이 났다.

첫사랑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 (아니 근데 이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 있어서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법한 우리의 베르테르가 만약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플로렌티노 아리사처럼 나이 일흔이 됐을지라도 다시 롯데를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롯데가 아니고 그냥 다른 새로운 사람을 사랑해볼 수는 없었을까?

일평생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반드시 첫사랑 그녀와 다시 만나겠다는 목표를 세운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인생이. 베르테르에 비해 더 낫다는 건 아니지만 베르테르의 죽음이 여전히 가슴 아픈 까닭에서 이러저러한 가정을 해보게 된다.

무릇 인생이란 순간의 선택에 따라 베르테르가 될수도, 플로렌티노 아리사나, 안나 까레리나가 될 수 있는 것. 이 평범한 진리를 오늘도 (글로) 배우게 된다.

때론 '가지 않아도 좋을 길'이 명명백백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럴땐 굳이 그 길을 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해 준,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다.



편애하는 밑줄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중에서

그무렵 그는 의사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기에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도 함께 영화관에 가곤 했다. 그러나 아내를 데려가는 법은 없었다. 그것은 한편으론 그녀가 어려운 영화 줄거리를 차근차근 쫓아갈 정도의 인내심이 없는 탓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가 그 누구에게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녀가 냄새 맡았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두사람이 사랑을 나누고 벌거벗은 채 누워있던 아이티의 고독한 해변에서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는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난 절대로 노인이 되지 않을거야"라고 말했었다. 즉 예순 살이 되면 목숨을 끊겠다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르비노 박사는 자기가 동물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온갖 종류의 과학적 우화나 철학적 핑계를 대며 이를 숨기곤했다. 그런 핑계들로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지만 아내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동물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을 가장 잔혹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비굴하게 구는 것이고, 고양이는 기회주의자에 배신자이며, 공작새는 죽음의 사신이고, 금강 앵무새는 성가신 장식품에 불과하며, 토끼는 탐욕을 조장하고, 원숭이는 음욕이란 열병을 전염시키며, 수탉은 그리스도를 세번이나 부정하게 만든 공범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수년간 페르미나 다사는 남편이 기쁘게 맞이하는 새벽을 씁쓸한 마음으로 견뎌냈다. 그녀가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찬 숙명적인 새로운 아침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잠의 마지막 끈을 움켜잡았던 반면, 남편은 각각의 새로운 날은 자신이 얻은 또다른 하루라고 생각하면서 방금 태어난 아이처럼 순진하게 아내를 깨우곤했다.


"비누 없이 목욕한게 일주일쯤 된 것 같군" 사실 일주일이나 지난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아내에게 보다 많은 죄책감을 심어 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흘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이 들통났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결국 그것은 그녀가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평소처럼 그녀는 공격하면서 자신을 방어했다. 그녀는 미친듯이 소리 질렀다.


후베날 우리비노 박사는 자신을 천부적 평화주의자이자 조국의 안녕을 위해 자유당과보수당의 결정적인 화합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곤 했다. 그러나 그가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행동들은 너무나 제멋대로라 어떤 정당에서도 그를 자기 당원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유당원들은 그를 동굴 속의 보수당원이라고 생각했으며, 보수당원들은 그가 거의 프리메이슨에 가까운데, 프리메이슨들은 교황청을 위해 봉사하는 비밀성직자라면서 거부했다. 보다 덜 잔인한 혹평가들은 그를 나라가 끊었는 내전 속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시 축제의 기쁨에만 도취된 귀족이라고 생각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페르미나 다사에게 고백한) 첫 편지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면서 그는 설사를 하고 푸른색의 물질을 토하는등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방향감각을 잃고 갑자기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상태가 상사병이 아니라 콜레라의 끔찍한 증세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중략)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어머니인 트란시토 아리사는) 그에게 허약한 상태를 즐기라고 기운을 북돋워 주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이 기회를 실컷 이용하도록 해. 넌 젊으니 가능한 한 모든 고통을 겪어보는게 좋아. 이런일이 평생 지속되는 건 아니거든"


편애하는 밑줄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중에서

"난 그여자가 누군지 알 권리가 있어요"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으며 단지 자세한 것을 확인해주는 일만 남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동안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는 그녀가 마음속으로 한 가닥 바라고 있던 것을 그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죽을때까지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자기를 모독하는 일이라며 화를내고 타인의 명예를 짓밟아버리는 빌어먹을 사회에 소리를 질러대고 그의 부정을 가리키는 결정적인 증거 앞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진정한 남자로 행동할 것을 바랐다.


그는 편지가 어떤 색깔의 잉크로 쓰여졌는지조차 모른채 반년 동안 매일 도착한 편지들에 대한 궁금증을 이겨낼 수 있는 여자는 없을테지만 그럴 사람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녀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보낸 순간부터 후회하기 시작했던 자기의 모욕적인 편지에 걸맞은 답장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점잖은 인사말과 첫 단락의 주제를 읽고는 세상에서 무언가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그 편지를 태워버리기 전에 침착하게 읽어보기 위해 침실 문을 걸어 잠근 뒤 숨도 쉬지 않고 세번이나 읽었다. 그것은 인생과 사랑, 늙음과 죽음에 관한 명상이었다. 마치 밤새들처럼 수없이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갔지만, 잡으려고 하면 깃털만 흩날리며 도망치던 생각들이 바로 거기에 정확하고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전에는 남편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토론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살아 있지 않으니 그에게 그 생각들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젊은 시절의 뜨거운 편지나 평생 보였던 음울한 행동에 상응하지 않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미지의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그녀에게 등장했던 것이다. 그것은 에스콜라스티카 고모의 의견대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의 글이었고 이런 생각은 첫번째 편재를 받았을때처럼 그녀를 다시 놀라게 했다. 어쨌거나 그 유식한 늙은이의 편지가 장례르 치른 날 밤처럼 무례한 행동을 되풀이하려는 시ㅗㄷ가 아니라 과거를 지우려는 아주 고귀한 방식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어느날 절망의 절정에서 그녀는 이렇게 소리친 적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모르겠어요" 그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은 채 특유의 몸짓으로 안경을 벗고는, 어린애 같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눈물로 그녀를 적시면서 " 훌륭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안정이오"라는 말로 그의 참을 수 없는 지혜의 무게를 그녀에게 느끼게 했다. 과부의 고독을 처음 느끼던 시절, 그녀는 그말이 당시에 생각했던 것처럼 치졸한 위협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수많은 행복한 시간을 안겨준 천연 자석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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