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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Nov 30. 2021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씨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나역시 안희정 지지자로 (물론, 과거형이다) 세간의 억측과 다를 것 없이 그녀의 미투를 곡해했다.




1. 제3의 여자의 등장으로 질투가 나서 홧김에 미투를 했다. 


2. 타 정당 사주를 받아 유력 대권주자를 음해하기 위해 계획된 정치적 행위다. 


3. 한번도 아니고 네번의 성폭력을 당했다는게 말이 되나? 


4. 기삿거리가 되는 주제로 출판을 제안한 출판사와 결탁해서 또한번의 화제성을 위해 불편한 책을 냈다. 




이 사건 혹은 김지은에 대한 나의 4가지 편견이 모두 오해였고 또한 잘못된 팬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한다. 김지은의 상황과 처해진 현실은 1도 모르고 ‘나라면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텐데’ 식의 말도 안되는 잣대로 이 사건을 바라봤다. 애초부터 ‘나라면..’ 이라는 가정의 여지가 필요없는 <내가 아닌 타인의 성폭력 사건> 이었는데 그동안 보여진 어느 정치인의 <이미지>에 가려 나또한 진실이 묻혀지길 바라는 쪽에 서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27살 무렵, 네이버 블로그에 100일간 <스물일곱살의 치유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내려간 적이 있다. 그 누구도 대신 이겨내줄 수 없는 내가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기록하면서 그때 나는 글쓰기의 힘을 느꼈었다. 글을 쓰면서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편집자에게 부탁해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업무 외 시간에 한달을 꼬박 책 편집작업을 같이 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 책을 출판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 나 스스로 그 글을 쓰고, 글을 편집하는 과정속에서 꽤 위로를 받았다. 아니 근데 그녀는 왜 때문에 바쁜 일과중에 짬을 내서 그것도 무료로, 나의 책작업을 도와줬을까? 글을 쓰는 행위가 치유를 돕는다, 는 주장을 내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려던 거였는데...글을 쓰다보니 아주 오랜만에 내일은 그녀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다. 내 성정상 그때도 차고 넘치게 감사함을 표현했겠지만, 십년이 더 지난 지금 돌아봐도 너무나 감사한 일인 것 같아서 내일은 꼭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고 생각했다. 연락이 끊어진 지도 꽤 오래 됐는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의 저자 *수 클리볼드도,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론 파워스도, <조국의 시간>을 집필한 조국도, 그리고  <김지은입니다>의 저자 김지은도 그러니까.........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뭐라도 쓰지 않고서는 그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조국은 그의 책 서문에서 '가족의 피로 써내려가는 심정'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니까 그 과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끔찍한 총기사건의 가해자 어머니 수 클리볼드도, 아들을 조현병으로 잃은 론 파워스도, 피해 생존자 김지은도, 언론의 탄압속에서 가족 전부가 폐허가 된 조국도....그들 각각의 치유록을 통해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간다면 좋겠다. 



* 수 클리볼드는 사망자 13명과 24명의 부상자를 낸 미국 콜럼바인 총격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다. 
* 론 파워스 조현병으로 아들을 잃었다. 




 밑줄

(JTBC) 방송을 마치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범죄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나는 갈곳을 잃었다. (중략) 보호시설에 들어갔지만 옷도 속옷도 없었다.


10개월짜리 단기 행정 인턴에서 시작해 기간제 근로자, 연구직을 거쳐 계약직 공무원이 되었다. 계약 연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일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6년을 버텼고 학교도 어렵게 졸업했다. 나는 금융채무자이자, 병환있는 가족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자, 성과로 평가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안희정 측 변호인이 나를 가리켜 말한 '고학력 엘리트 여성'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친 결과일 뿐이었다. 내또래의 많은 이가 나와 비슷하게 제각기 노력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왜 네번이나 당해?" 나는 이것을 안희정에게 묻고 싶다. 

(중략) 사람들은 또 나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당하면서까지 일에 목을 맸느냐?" 내게 남은 것을 일밖에 없었다. 이전에 사람으로 인해 겪은 아픔은 내 인생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사람이 전부 였던 내게서 많은 걸 앗아갔고 그 일은 내게 '인생종결'의 느낌이었다. 이혼이라는 것이 내게는 그랬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된 삶속에서 내가 의지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건 일이 전부였다. 그것까지 놓아버린다면 나는 정말로 죽을것 같았다. (중략) 안희정을 24시간 수행하며 나는 수시로 경찰 고위 간부의 전화를 지사에게 연결해주었다.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을 만나고 있는 지사를 수행하고 있었고,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있는 지사를 청와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사에게는 일상인 그런 대화와 만남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그가 가진 권력을 항상 다시 실감했다. 나는 그와 싸울 수 없음을, 내가 겪은 것을 어느곳에도 상의할 수조차 없음을 알았다. 내가 신고한다면 그 신고를 받게 될 사람들은 안희정과 관계를 갖고 있는 이의 부하 직원들일 것임을 알았다. 성폭행이 있었던 당시 즉각 수사 기관에 말했더라도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두번의 피해는 해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도 내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안희정을 수행하면서 보아온 세계는 권력의 상층부에서 나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간단히 무시되고 억압될 수 있음을 내내 일깨웠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자의 범행이었기에 두려웠다. 안희정은 성폭행을 한 후에 매번 즉시 사과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죄했다. 미련하지만 그말을 믿었다. 믿고 싶었다. 믿어야 했따. 매번의 범죄를 애써 독립된 것으로 여겼고 매번 그것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 

월급을 받아 학자금을 갚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다른 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그만둬서는 안됐다. 이 거대권력 안에서 어떻게라도 눈밖에 나면 나는 어떤 일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미투를 언급하며 네번째 범행을 내게 가할때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 아닌 또다른 처음일 수 있음을 깨달았따. 그의 사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느때보다도 선명히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다, 다음 범죄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저 나를 범행에 이용하고 묶어두기 위한 목줄 같은 것이었다.



에필로그

2019년 2월 안희정은 2심 판결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았고, 같은해 9월 9일, 3심을 통해 유죄가 최종확정 되었다. 

김지은 사건과 함께해준 증인, 변호인단, 활동가들, 153개가 넘는 단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피해 생존자를 향한 <피해자답지 않음> 운운하는 우리의 편견과 지라시 등 2차 가해가 더이상은 없어야겠다. 이제서야 읽어서 (진실과 너무 늦게 마주해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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