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PD와 작가들에게 경의를!

#유익한프로

by 책읽는 헤드헌터


이번주 팀점심 후 팀원들이 꼬꼬무 이야기를 했다.

꼬꼬무?

"부장님이 엄청 좋아할 프로그램인데.
이번주는 씨랜드 참사 내용이라 저는... 못볼 거 같아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일명 꼬꼬무.
파일럿 에피소드와 지난 시즌 1, 2편은 아직 다 못봤지만 시즌 3의 첫방송이 하필 관심있던 <형제복지원 사건>이었던터라 4편 정도 요약본을 몰아 보게 되었다.그리고,
보고나니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프로를 기획하고 만들어주고 쓴 PD와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1982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뤘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사건.

1975년 내무부훈령 제410호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것이 이 복지원의 설립배경이었다.대한민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창피한 사람을 제거할 요량으로 발상부터 인권침해적인 복지원이 설립된 것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됐다.

그리고 2012년 국회앞에 한남자가 섰다. 그가 바로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 한종선씨. 당시 37살의 나이였지만, 형제복지원에 불법감금됐던 9살 아이 심정으로 국회에 섰노라고 그는 그날을 회고했다. 전규찬과의 공저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의 책을 통해 형제복지원에서의 실상을 글과 그림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수용자들의 중노동은 물론 수용자들에 대한 구타와 감금 그리고 성폭행까지 자행됐으며, 12년 동안 500명이 넘는 인원이 사망한 참혹한 사실들이. 박정희 시절 설립돼, 전두환 시절까지 이어졌던 이 끔찍한 시설과 이 시설을 운영하는 원장에 대한 당시 대통령의 견해가 (하기 캡쳐 이미지 참조) 처참하기 이를데없다. 박원장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 덕분에 형제복지원에서 그 끔찍한 일(불법감금, 폭행, 성폭행, 살인)이 자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원장은 3년, 징역형을 살다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징역형을 살고 나와서는, 다시 또다른 복지원을 운영하며 잘 살다가 2016년 사망했다.

Cap 2021-12-07 21-09-22-502.jpg 내가 그의 죽음앞에 애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악인열전 - 피도 눈물도 없이

일명, 엄인숙 보험살인사건 (엄여인 보험살인사건)

76년생 빼어난외모를 가진 엄여인은 2년간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실명이 사망과 동등한 보험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첫번째 남편과 두번째 남편을 죽게 하고, 친 어머니, 친오빠 두눈을 멀게한다. 이모든 극악무도한 짓의 목적은 마약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으나 이내 거짓말이 드러났고 결국, 모두 그녀 자신의 사치와 향락을 위한 것임이 밝혀졌다. 현재 16년간 복역중이라고 한다.

Cap 2021-12-07 21-42-27-236.png


#사라진선장의 행방은?! 침몰된 그날의 진실!!

서해훼리호 침몰참사,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양참사 중 하나.

그날 어선이 구한 사람만 70명. 낚시배 종국호가 구한 사람이 44명. 당시 그냥 돌아가자는 낚시꾼들에게 이종훈 선장은 설득했다. "바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들이 그런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해보라. 나를 믿고 구하러 가자"라고.

그렇다면 서해훼리호는 왜 침몰했을까?

수많은 설마들이 모여서 대형참사를 만들어냈다.

정원이 221명인데, 141명 초과했고

화물중량도 6톤을 초과했다. 다들 이걸로 배가 침몰하겠냐고 했던 설마,들이었다.

20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2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는 사고들.

사고의 원인도 똑같다. 역사를 배우는 건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왜 우리는 이러한 설마를 계속 겪는걸까.

2021-12-07 22.16.07.jpg 만약에 20년 후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1991 모가디슈

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나라,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이탈리아의 식민지였던 소말리아)

소말리아 한국대사관 직원인 남편을 찾아 모가디슈로 날아간 아내, 김두남씨.

하필이면 그때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이 시작됐다. 군부 독재자에 맞선 반군(아이디드)과 정부군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반군과 정부군에 무장강도까지 더해져 상황은 아비규환.

당시 소말리아에 있던 대한민국 대사관 직원 및 교민은 다 합쳐서 7명. 하루 빨리 소말리아를 탈출해야하는

이들의 운명을 책임지게 된 강신성 대사(소말리아 초대대사)의 임무는, 하루아침에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모두를 무사히 탈출시키는 것. 그러나 모든 통신은 두절상태. 공항제외.

그런 상황에서 이억만리 전쟁터에서 남과 북이 만나게 된다. 북한 대사 일행은 14명 정도.

듣자하니 무장강도에게 다 털린 상황이라고.

생사를 오가는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진 남과 북의 만남.

갈 곳 없는 신세가 된 북한대사관 사람들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었던 강 대사는 고민끝에

“그러면 우리집으로 갑시다."라고 말한다. 이분 참, 멋짐폭발이다.

무장 경비가 6명이니까 당분간 안전하다고, 함께 공동 탈출할 방법을 모색해보자며. 그렇게 북한사람들이 한국인 관저에 머물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구조기를 보내줄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에에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합의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정부군과 반군의 최대 격전지인 대통령궁을 지나야만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 그때 누군가 나선다. '그 위험한 곳엔 한사람만 다녀오자고. 내가 가겠다'고. 보나마나 강대사의 대사(;;)였다. 다행히 무사하게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한 강대사는 도움을 읍소하는데. 또다시 하필이면!!!! 본국(이탈리아)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금은 적십자 구조기 뿐인데 정원이 7-8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한국인만 탈출하라는 이탈리아 대사관 말에 강대사는 '그럴수는 없다, 나를 믿고 우리집에 온 사람이다, 제발 우리 모두 다 같이 나가게 해달라' 고 매달린다. 진심이 통한걸까. 마침내 어려운 교섭 끝에 군 수송기 한대를 더 지원받게 되고, 그렇게 남과 북 교민들 모두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물론 차로 대사관까지 이동하는 동안 북한인 한명이 총상을 입기도 했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한 그들에게 이념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꼭 한번 다시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강대사관의 마지막 인터뷰에 이밤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통일에 대해, 아주 아주 가끔씩 거행되는 남과 북 이벤트(정상회담은 다소 과하고 이를테면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했던 탁구대회같은 것들....말이다)에 이산가족 상봉을 티비로 본적이 있는 나는, 목이 메일만큼 눈물이 나는건 아닐지라도 가슴이 저릿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게 사실이다.

이후 세대들은 그런 마음같은건 알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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