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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Feb 13. 2022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빛낸 <남주혁>

남주혁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남주혁을 좋아하는 것 같다.

넷플릭스로 보던 영화가 끝나자마자 예고편 광고에서 남주혁을 봤다.

그래서 1회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이 드라마 때문에 어쩔수 없이 또 그녀석을, 그해 여름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15년이나 지났는데.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희도 선수.


첫사랑의 결혼을 축하하는 백이진의 마음을, 나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백도커플이야기만큼 드라마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그만큼 서로를 빛나게 해준 존재를 '가졌던 적'이 있었다. 어젯밤 석촌호수를 걸으며 이 드라마 마지막회 결론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그런 말을했다.


그래도 그런 첫사랑을 가졌다는 기억에 행복하지 않아?





물론, 행복하다.

하지만,

백이도와 나이진처럼 멋진 이별을 하지 못해서 일까.


너에게 자격이 안 될 거 같아서 화가 났던 거다.
수많은 밤을 위로했던 우리의 이야기들.
그게 너라면 나는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가 그런식으로 헤어지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
해주고 싶은 얘기는 그런 게 아니었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할게 백이진.
너는....존재만으로도
날 위로하던 사람이었어
혼자 큰 나를
외롭던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이었어.
_마지막회, 나희도_




스물다섯 스물하나, 2회

IMF시기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게 된 후, 백이진의 가족은 뿔뿔히 흩어지낸다. 아버지가 종적을 감추자 채권자들은 단칸방에 숨어 지내는 이진을 찾아오게 된다. 채권자들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진은
 “아저씨들을 기억하며 사는동안 절대로 행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우연히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게 된 희도는 이진을 데리고 나와, 슬러시를 사주고, 수도꼭지를 틀어만든 분수쇼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가 만든 불행때문에 행복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건 너무 불행한거 아니냐’며
‘그래도 너는 그 아저씨들과 행복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킬 위인이니, 이렇게 앞으로 나랑 있을때만 가끔씩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자’고 제안한다.

불. 여. 시.
(김태리니까 봐준다;)

이런 제안을 하는 희도를, 앞으로 3회 4회 회를 거듭하는 동안 백이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거다.
기대된다. 그들의 여름이.

3,4회 건너뛰고 12회쯤부터 보고싶다.
이진이가 조금씩 행복해진 순간부터....편한 맘으로 보고 싶다. 언제쯤 이진이 편안해질 수 있을지….

자우림 노래가, 또 기가막히게 드라마를 받쳐준다.




편애하는 대사

나희도 독백: 사람들은 무언가 잃어가나보다.
그치만 나와는 상관없는 어른들의 일이다.
내가 가진 것들은 잃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꿈, 동경.

이진: 넌 왜 법이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줄 알아? 상상력이 부족하기때문이야. 너 여기서 무슨 일에 휘말리는 상상했어? 실제로 일어날 일이 네 상상의 범주 안에나 있을 거 같아? 전혀 아니야.
네 인생에 없어야 되는 일 없는게 훨씬 나은 일이 생겨.
나쁜 일을 저지를때 성인의 상상력과 미성년자의 상상력이 천지차이라서.
_스물다섯 스물하나 1회_


늘 그렇듯이 여름은 문제적 계절이다. <콜바넴>에서도 그랬고, <그해 우리는>에서도 그러했고, 27살 제니퍼의 여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제 마흔두살인데, 여름이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 그런 나이인데 모처럼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달리지도 않았는데 괜히 들떠서, 아리송한 밤을 마주하고 있다.

두번째 스무살이라고 우겨라도 보면서, 콩닥콩닥 설레는 무언가를 시작하고픈 그런 느낌이랄까.

다음회도 기대된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는 거 알아?
그 표정이 자꾸 날 상처받게 해.
_스물다섯 스물하나 2회

달려서인지 들떠서인지 아리송한 숨이 찼다
바람이 불어와 초록의 잎사귀들이 몸을 비볐다.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_2회 엔딩_


꿈을 지키려는 거.

계획은 틀렸어도 네 의지는 옳아.

난 맨날 잃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근데 넌 얻을 것에 대해서 생각하더라.

나도 이제 그렇게 해보고 싶어. 어 세게 망했어. 그게 우리 아빠야.

그래서 나는 부모님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됐거든?

근데 넌 도와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도움 청할 때가 있다는 건 네 나이 때만 누릴 수 있는 특혜니까 누려.

놓치면 아깝잖아.

_이진_


(희도가 2천원을 갚겠다고하자 이진이 오늘 도와준 걸로 돈 갚은 셈 치자고 하니 희도가 이진에게 한 말) 돈은 돈으로 갚은 거고 마음은 갚은 거야

(가장 좋아했던 두명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자 실망한 희도가 백이진에게 한말)
내가 펜싱을 왜 못하는지 지금 깨달았어. 펜싱에서 제일 중요한게 상대방과 거리 조절이거든?
지금 내가 그걸 못하네.
너무 많이 기대했다. 고유림한테든, 너한테든.

_3회_
(무슨 일이든 생각나는대로 밀어부치는 희도에게 코치가 한 말) 니는 펜싱이 칼싸움 같제? 아니, 펜싱은 수 싸움이다. 상대의 수를 예측하고 니 수를 다루느 ㄴ거.

희도: 난 26등이잖아, 현실적으로 내가 평가전에서 1등을 꿈꾸는게 말이 안돼
이진: 근데 넌 꿈꾸잖아.
희도: 그치 난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거든. 지고 실패하는데 익숙해서.
이진: 그걸 사람들은 정신력이라고 불러. 지는게 두렵지 않고 실패하는 걸 겁내지 않아하는 그 단단한 마음을 모두 갖고 싶어한다고

희도: 넌 왜 나를 응원해? 우리 엄마도 나를 응원하지 않는데
이진: 기대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자꾸 욕심이 나. 나도 잘해내고 싶은 욕심
희도: 나의 어디가?
이진: 모르겠어 그냥 네가 노력하면 나도 노력하고 싶어져 네가 해내면 나도 해내고 싶어져
너는 너 말고도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해 내 응원은 그런 너에게 보내는 찬사야.
그러니까 마음껏 가져

_4회_


나희도: 여기 있는 모든 선수들 중에서 내가 가장 열심히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내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오늘 국가대표가 된다.

_5회_
이진엄마: 너도 그런 사람 만나. 함께 있으면 같이 나아지는 사람. 그게 진짜 성공한 인생이야

_6회_


(백이진에게 심판의 오판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희도) 선수들은 모를 수가 없어. 동시에 불이 들어와도 누가 빨랐는지 모를 수가 없다고. 고유림보다 내가 빨랐어. 내가 느꼈어

"선수들은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다.
중계된 카메라로도 정확한 판독이 어렵다면 상식적으로 바로 앞에서 본 내가 제일 잘 보지 않았겠나. 응원하는 선수가 이기는 걸 보고싶다면 영화를 봐라. 스포츠는 그런 장르가 아니다."
스미스 심판은 결승전에서 자신의 판정은 공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관련된 억측과 논란을 감당해야 하는 건 어린 선수들이었습니다. 가장 기뻐야 할 순간은, 그렇게 상처로 남게 되었습니다. UBS 뉴스, 백이진이었습니다.”
백이진과의 인터뷰에서 결과가 오심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펜싱 심판 앨런 스미스, 백이진의 마무리 멘트

_7화_
멀어지는 기분. 너의 세계와 내 세계가 점점 분리되는 기분.
너는 저만치 앞서있고 나는, 어쩐지 한참 뒤쳐진 것 같다.
너의 실수들은 예전과 달리 무거운 것들이라
나는 가볍게 나서서 놀리지 못했고,
그 실수들은 어떤 면에선 인정받았다.
나의 실수는 이렇게나 나락이다.
이 감정은 명백히 너에 대한 질투다.
나희도 

나는 널 질투한 게 아니었다.
너에게 자격이 안 될 것 같아서, 화가 났던 거다.
“인절미, 아니 백이진”
수많은 밤을 위로했던 우리의 이야기들.
그게 너라면 나는 자격이 충분하다.
“나, 널 가져야겠어!”
- PC 통신 친구 인절미백이진으로 오해한 나희도
_8화_
“나는 요즘 너 때문에 진짜 미치도록 복잡해! 나 너 질투해. 아니! 나 너 좋아해. 근데 너한테 열등감도 느껴. 넌 이게 무슨 소리 같아? 모르겠지. 나도 하나도 모르겠어. 근데 그 와중에 고백이라고 한 게 너를 가져야겠다니. 돌았나봐. 진짜 죽고 싶어. 머리가 뒤집어질 것처럼 하얗다고! 나는.. 난 확실한 게 좋은데 모든 게 불투명 해. 너만 생각하면. 그래서 요즘.. 너가 진짜 싫어. ··· 왜 웃어? 나는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왜 웃는데!”
“그래. 열심히 고민해라~ 난 고민 끝났어. 해 본 적도 없지만.”
- 백이진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는 나희도


“넌 항상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끄는 재주가 있네. (그게 무슨 말이야?) 너라서 달려갔어. (오늘?) 아니. 아시안 게임 때. 심판 인터뷰 따러 공항까지. 생각해 봤는데, 네가 아니었으면 안 갔을 것 같아. 근데 네가 아니었어도 갔어야 했어. 기자니까. 넌 결국, 기자로서 내가 옳은 일을 하게 했어. 넌 항상 날 옳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이끌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우리 관계의 정의야. 이름은, 무지개. ···맞다, 넌 무지개 아니라고 했잖아. 너 아직 대답 안 했어. 무지개 아니고 뭔지.”
“···사랑. 사랑이야.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
- 나희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백이진
_9화_


“실패가 아니라 그냥 시련이에요, 아빠. 남들보다 너무 행복했던 대가요. 누렸던 행복에 비해 이 정도 시련은 시시해요.”
- 아빠와 통화하는 이진

“이 여름은 공짜야! 우리가 사자!”
“여름을 사자고?”
“응! 우리가 이 여름의 주인이 되는 거야. 그럼 적어도 이 여름은, 우리 거잖아.”
_나희도_

“나 왜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지?”
“영원할 건가 보다.”
“...영원하자.”
- 바닷가에서 대화하는 나희도백이진
_10화_



이진: 할수있다, 는 말이 오히려 힘에 부칠때가 있습니다. 못해도 되고 실패해도 괜찮은 세상을 우리는 아직 배운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봅시다. 최선은 다해봅시다. 다만 바랍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은 이미 우리의 편이기를
_희도가 졸라서 방송실에서 예전 대본을 읽는 이진_

“불꽃놀이나 봐. 인생은 길고, 불꽃놀이는 짧으니까.”
- 나희도를 돌려 세우는 백이진

_11회_


이진: 야 넌 진짜 왜 이렇게 겁이 없냐? 어? 그것도 술취한 훌리건들 상대로
희도: 내가 진짜 싫어 하는말이 있는데 그거를 딱 하잖아 뭐? 내가해도 그거보단 잘하겠다? 와. 그럼 왜 안했어? 하셨어야지 어? 아이 그렇게 잘할거 같으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지!
늦지 않았다고, 시작이 반이다! 좀 제발 좀하고 말해라 좀. 아유 진짜!
하여튼 입만 살아가지고
지금 제일 잘하고 싶은거는 선수 본인이라고!

희도: 부담감도 경험이야. 유림이랑 나는 경험치를 잃는거지, 선수는 시합을 뛰어야해. 이기든 지든 시합을 뛰고나야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래야 계속할 수 있고. 근데 성장하라 기회를 잃은거지 지금은. 그리고 시합을 안뛰는 선수가 선수로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

(승완이 체벌교사를 경찰에 신고하지만, 체벌교사와 학교는 오히려 승완의 태도를 문제삼아 승완에게게 수치스러운 사과를 요구하자, 이에 굴복하기 싫어 자퇴하려는 승완과 엄마의 대화)
승완이 어머니: 휘어지는 법도 알아야해 승완아. 부러지는 법만으론 세상 못살아.
승완: 알아 근데 아직 그게 잘안돼

_12회_



나희도. 너랑 나는 그러면 안 돼. 결국 널 실망시킬 거야, 어떤 식으로든. 근데 나, 흔들려. 흔들리고 싶어.”
- 나희도문지웅에게 전화를 건 백이진

백이진. 너는 요즘 누구 생각을 제일 많이 해?”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데?”
“나는 누구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지 알아? 너 아니야. 나야. 내 생각을 제일 많이 해.
누구를 좋아하는 일은, 나에 대해서 알게 되는 일이더라. 왜 왔냐고? 그렇지, 왜 왔을까?
자존심도 없나 봐. 너무 찌질하지? 나는 내가 이런 애인 줄 몰랐어.
이게 나라니 너무 찌질하고, 열 받아. ...너는 이런 내가 이해가 돼?
이해가 돼서, 사랑하는 거야?”
“난 널 이해하지 않아.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넌 좋겠다, 나희도.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너도 해. 못 하게 한 적 없어.”
“...내일 시합 잘 해.”
- 백이진의 집앞에서 기다린 나희도의 대화

“나 울잖아, 백이진. 뭐든 상관없어. 무지개든, 이런 사랑이든 저런 사랑이든. 나 못 잃겠어. 잃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한 발자국도 멀어지지 말라고.”
- 남겨진 나희도 

“그래, 이런 사랑도 해 보자, 나희도. 너랑 할 수 있는 건, 다 해볼 거야. 그러니까 각오해.”
- 대문을 박차고 나와 우는 나희도에게 키스하는 백이진
_13화_


“미안해, 희도야. 그동안 메일을 안 읽었던 건…”
“알아. 말 안 해도. 내가 겪었던 걸 너도 겪었겠지.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그거 우리만 아는 거잖아.”
“나 오늘 행복했어.”
“나도.”
- 마드리드 대회를 끝내고 울며 포옹하는 나희도고유림

백이진은 나한테 또 미안하겠구나.
난 이제 네가 그만 미안했으면 좋겠다.
난 여전히 너를 응원한다.
근데 그럴수록 멀어진다.
- 홀로 새해를 맞는 나희도의 나레이션

_15화_


이 드라마 결론을 두고 최악의 결말이라는 기사가 떴다. 2521의 수많은 덕후들이 13회에서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희도 선수>라는 백이진 대사에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2521 결론을 지지한다.

나도 물론 백이진 앵커의 저 대사에 심장이 쪼그라들지 않은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민채가 백김민채라느니, 고유림 아이를 키우고 있는거라느니, 개연성을 뛰어넘는 판타지 가까운 설정을 추종할만큼 판단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나는, 첫사랑이 반드시 결혼으로 이어졌어야 해피엔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백이진이 김민채 아빠라야 백도커플의 사랑이 의미가 있다고 ‘결혼한 커플들이’ 주장한다면 ‘첫사랑을 지키지 못한’ ‘싱글로서’ 달리 할말은 없으나, 그렇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첫사랑이 너무 초라해지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당시 우리 사랑도 영원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해 여름의 기억만은 <영원>하다는 점이다.

말도안되는 확률로 만나서, 사랑을 시작하고, 그 사랑을 간직했던 2007년 여름.



2521은 첫사랑과 성장에 대한 드라마였고 좋은 이별을 하고싶게 만든 드라마이기도 했다.

(어쩌다보니 길어졌지만) 김민채아빠가 백이진이 아니어도 충분히 좋은 드라마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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