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엑셀파일 하나쯤 있잖아요?

by 책읽는 헤드헌터



내나이 마흔둘, 에 아직도 소개팅을 하게 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27살쯤엔 결혼할거라 생각했고, 더 나이들어서는 늦어도 서른일곱엔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겠지, 막연히 생각했으니까.


지난주, 일요일 저녁.

갑빠패밀리 (중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양평의 친한 친구들 닉넴이다) 중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매달 한번씩은 만나 멤버들의 생일을 챙기고 가족의 대소사에 참여하던 아주 가까운 사이였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혹은 이런저런 사정들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조금씩 멀어졌다. 사실 멀어졌다기보다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가 더 적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어느해는 아예 만나지 못하는 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언제 연락해도, 낯설지 않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시절을 이삼십년을 함께 지나온 나의 오랜 친구들.


“웬일이야. 갑자기 무슨 일 있어?”


"소개팅 할 생각있어?"

친구가 물었다.


"당연히 있지!"

물어보나마나.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평생 독거노인으로 살았을법한 우리 둘째언니를 구해준 장본인으로 우리집에선 고마운 친구로 통한다.


"니가 우리 집 문제적 여인을 구했었지.

근데 니가 정녕 나까지 구해낼려고 그러는거냐? 고맙다. 친구야.

근데 누군데? 대체 누굴 소개하려고?”


“일단 나 믿고 만나봐.”


"그래, 니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한번 만나보지 뭐. 근데, 나...남주혁 좋아하는데...”


"남주혁은 드라마로나, 봐"


"그..그래. 근데 나 며칠전에 H 꿈꿨다. 지금은 공무원이 되서 아이낳고 잘 산다며?

그애랑 결혼했다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이낳고 잘 살았을까? 너도 알다시피 걔가 워낙 좋은 애잖아. 꿈에 그애를 다시 만나면서 느끼는게 많았어

아직도 외모를 보는 철없는 나에게 뭣이 중헌지 모르겠냐며 외모보다 성품을 보라, 고 말해주는 것 같았달까…”


"소름끼쳐"


"맞아. 나도 살짝 그런 기분이 들었어. 어쨌거나 칭구야. 자주 연락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떠올려주며 누군가를 소개해주려는 니 마음이 감사해서라도 꼭 해볼께”


p.s 아직 이 소개팅은 성사되지않았다.


에필로그

2007년부터 쓰기 시작한 <소개팅 파일>을 열어봤다. 이런걸 엑셀로 기록해놓은 사람은 세상 천지 나하나일 것 같지만 - 그래서 유희열 음악도시에 소개팅엑셀파일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의미없다면 없을 수 있지만 의미있다면 있는 나의 소개팅 엑셀파일ㅋ


지나온 기록 하나하나가 새록새록하다. 아픈건 아픈대로 좋은 건 또 좋은대로. 사실 그 엑셀안에 있는 소개팅남들하곤 아픈 기억은 없었다. 지나가는 에피소드였으니까. 나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는 특정인들은 그 엑셀안에 없다.


역시나 이번 소개팅도 지나가는 헤프닝으로 끝이 나려나. 왠지 나의 인연은 소개팅으로 만나질 것 같지는 않다. 그건 너무 평범…


자만추가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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