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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08. 2022

비오는 밤, 친구둘이 찾아왔다.

(부제 인간성을 잃어가는 즈음에 나를 찾아온 철학자)



5월은 꽃집을 하는 친구가 일년중 가장 바쁜 달이다.  

평소 꽃집에 갈일이 없는 사람들도 1년에 한번씩 꽃집에 들러야 하는 날이 5월에 유독 많으니 자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스승의날, 성년의 날, 부부의날까지. 꽃집언니들에게 5월은 (매출이 올라) 행복하기도 하고 (잠도 줄이고 밥도 못먹어 가며 일해야해서)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그 바쁜 시기에 도와주지 못해 내내 미안하던 터였는데, 친구 M이 주말에만 단기 알바를 도와주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혼자하면 일이지만 친구랑 같이하면 노는것 같다는 꽃집언니 J 에게 친구일이라면 자기일처럼 도와주는 M은 찰떡궁합이다. 

그 찰떡궁합 두마리가 우리집 내 침대에서 둘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다.


3시간 전, 꽃집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 할일을 미루고 드라마를 보다가 어느새 어둑어둑해주자 정신차리고 강신주 책을 집어들어 읽던 중이었다.


"친구야 저녁먹었어?"


응 이미 먹었어. 

혹은  

디톡스 중이라 저녁 안먹고 단백질 마실꺼야, 라고 말해야하는데

친구의 질문에 담긴 컨텍스트를 모르는게 아닌지라, 


"퇴근할 때 됐어? 고생했다.

리밍 시켜둘께. 몇시 출발할껀지 전화나주셔"


라고 답을 해버린거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 두놈의 밝은 목소리.


"우리가 리밍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대?"


어떻게 알긴.

J랑은 10년,  M이랑은 21년째다.

취향 모르는게 이상하지.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내시간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타입이다.

밖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그주 주말은 집에서 꼭 쉬어줘야 하는 패턴을 가진 스타일.

그래서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이 친구 두마리는,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애들이다. 정기회비를 내서 여행도가고, 맛있는 것도 자주 먹고(너무 자주 먹어 탈이다;). 쇼핑도 하고. 서로의 대소사를 나누는 관계랄까. 아직 셋다 애인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가능한 모임이기는 하다. 

한때 <갑빠 패밀리>라는 초중고 같은 학교를 나온 여자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시집가면서 자주 보지도 못하고 유야무야 흐지부지됐다. 다들 고향이 같아서(양평) 오다가다 볼 수는 있지만 완전체 그대로 만나기는 도통 힘들어졌다. 애가 생기면 자기 스케줄이 자기 스케줄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무튼, 오늘밤 나를 찾아올 친구 둘을 위해 '내가' 먹고싶은 메뉴를 정성껏 골랐다.


유린기

고추잡채

그리고...짬뽕!

나라면 짬뽕은 무조건 짬뽕밥을 시켰겠지만 친구둘은 면lover니까 짬뽕면으로 주문완료.


친구둘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서 음식이 도착했다.

잠실에서 중식 시킬 곳 찾는다면 무조건 이곳 추천이다. #리밍.

서비스로 오는 군만두랑, 유린기를 포함한 요리맛집인데 개인적으로 매운수제비짬뽕? 그것도 참 좋아라한다.

(근데 배민이나 쿠팡이츠 사용하지말고 무조건 전화하기! 어플사용하면 짜장면이 불어서 도착한다.)





이 맛있는 것들을

애석하게도 나는 한톨도 먹지 못했다.

매달 한번씩 3일동안 유사나 뉴트리밀 (단백질 쉐이크) 식이조절을 하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그 마지막날이었다. 참아왔던 금요일과 토요일이 있기에 차마 무너질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유린기는 왜그렇게 더 자태도 곱고 향도 좋은지.


두사람은 굳이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종일 서서 장사하다보니 허리가 너무 아프다더니 의자보다, 바닥에 털썩 앉는게 더 편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오늘 많은 손님이 다녀갔다는 이야기, 카네이션 모두를 완판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면서

두분은 순식간에 유린기와 고추잡채와 꽃방과 짬뽕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M이 먼저 양해를 구하고 내 침대로 가서 누웠고

J도 따라들어가 눕더니 저상태로 뻗어버렸다.

 

오늘 열일하고 와서 그러는게 아니라 평소에도 쟤네들은 늘 그렇다.

몇마디 좀 더 나누고 싶어도, 둘다 누우면 바로 잔다.


나 보고 싶어서 온거 맞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맨날 먹고 바로 잘껀데 굳이 왜 우리집으로 오는거니? ㅋㅋㅋ


대략 와줘서 고맙다는 뜻이다.

반가웠다. 셋이 완전체로 만난게 사실 좀 오랜만이기는 하다. 

M 의 동탄집에서 마지막이었는데 그게 언제였더라...



애들이 자는걸 확인하고 조심조심 조용조용 설거지를 하고, 남은 건 주말에 강아지들 주려고 냉동실에 얼려두고, 뒷정리를 대강하고 컴퓨터 책상앞에 앉아서 브런치를 열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걸 적었다. 주말동안 한 철학자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오늘 나는 이기적으로 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해. 


디톡스 중이니, 다음에 만나서 맛있는거 같이먹자. 


하지만 무상.....형성된 모든 것들은 소멸하는 법이라며 만나는 모든 것, 도착한 모든 곳을 아름답게 보게되었다는 싯다르타 덕분에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늦은 저녁 힘들게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그둘을 기꺼이 나의 공간으로 초대했다. 그녀들과 나 사이에 별일아닌 초대지만, 쉬고싶고+디톡스중이었으니 잠깐, 고민이 되긴했었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나는 내가 필요하다는 이들에게 결코 시간을 아끼는 타입이 아니다. 아니'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옆에 있어주고(상대방이 이제 됐다고 할때까지)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고민거리가 있다면 해결해주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십지라퍼이기도 하고. 그런 내가 최근 1년 사이 회사 성과로 인해 실적에 쪼이게 되면서-사실 그 누구도 나를 쫀 적 없다. 나 스스로 나를 닦달했을뿐- 내가 가진 제니퍼 특유의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음과 감정에 휘둘리면서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모든 관계를 피곤하게 생각하게 됐다. 최대한 단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도그럴것이 오전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만하는데도 일할 시간이 부족한 일을 맡고 있다보니 일외적인 이야기들이 버거워졌던거다.


그러나 역시 철학자는 철학자.

철학자 한분이 나의 즈음의 삶에 경종을 울려주셨다.

인생무상이라고.

형성된 모든 것들은 소멸한다고. 그것을 깨달은 싯다르타는 죽음을 앞두고 만나는 모든 것, 도착한 모든곳이 아름답게 보이더라는 고백을 했다고.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되고

벚꽃도 피면 지고 마는데 그것이 인생인데 나는 무엇을 쫒아 그렇게도 급급했나. 내가 가진 인간성을 내려놓을만큼 다급하고 절박했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게됐다.


퇴근 후 먹방을 보면서, 밀린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을때는 결코 깨달아지지 않았던 것들이

인간관계론, 자기경영노트, 같은 자기계발서를 통해서는 절대로 돌아볼 수 없는 것들이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김선우 시인이 그랬던가.

나는 나에 대한 습관, 아니냐고.

내가, 나의 이상향에 도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무언가를 계속 읽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유튜브 시대와  넘쳐나는 ott 컨텐츠의 유혹속에서 꾸준히 읽어야한다고.

읽는만큼 달라진다고.

(그 언젠가 이책을 쓴 분과 소개팅을 하게되면서 읽게 된 책이었다...그분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TMI.....)


아직은 나의 이상향과 지금의 나의 모습이 주는 간극에서 절망이 오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꿈꾸는 이상향에 내가 도달하기를 바라며 이밤, 코골며 자는 친구들 곁으로 가보고자 한다.

가서? 가서 뭐...보다 만 드라마를 이어보기, 하다 자겠지.

먹고싶은 생크림 케익 먹방도 좀 보면서....ㅋㅋ



책은? 내일 다시 읽는걸로!  

영어는?  

만보걷기는? 



습관이란게ㅡ 쉽게 고쳐지면 습관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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