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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29. 2022

주스타의 아내 허캐롤

캐롤도 결혼을 하다니! 캐롤 너마저.



팀에 캐롤이라는 아이가 있다.

2018년에 입사했을때 망고, 라는 영어이름을 쓰고 싶다던 그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묘한 매력을 지닌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영화 <캐롤>의 캐롤이란 이름을 쓰게 했었는데.

그때 그 아이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망고, 는 좀..


1년정도 헤드헌팅 일을 배우다가 다시 원래 있었던 병원으로 돌아가서, 정신과 간호사 일을 하다

본인이 간호사로서 이루고 싶은 것들은 대략 다 이루었다고 나를 찾아왔더랬다. 

그렇게 다시 인연이 닿아 올해 6월부터 헤드헌터로 컴백하게 되었는데

헤드헌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녀또한 어쩌면 조금은 특이한 경력(간호사라는)을 가진 헤드헌터가 되었다.


캐롤과의 인연은 양평 교회 중고등부에서 시작됐다.

그때 내 나이 서른살무렵이었고, 꽤 늦게 교회봉사라는걸 시작해서 모든게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기였다. 이를테면 이 작은 교회만의 오래된 룰이라거나, 어떻게 아이들을 다뤄야 할지에 대한(심지어 간식을 준비하는 작다면 작은 소소한 부분도 처음이라 어려웠다), 그리고 까탈스러운 권사님 대응법 같은 


소소하다면 소소하달수있지만 알아두면 좋을법한 교회생활팁을 주로

캐롤로부터 배웠다. 띠동갑차이가 나는 어린 아이였지만 교회안에서 의지가 되기도 하고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매력적인 성도님(;) 이었달까. 


이 아이가 어느덧 자라고 자라서 간호학과에 입학하더니 또 어느날은 간호학과를 졸업해서 결국에는 간호사가 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간호사로 지내면서 선배들로부터 태움을 당하거나 (간호사들 세계의 용어라고 한다) 일에 대한 회의가 느껴질때 어려운 점을 모으고 모아두었다가 캐롤은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간헐적으로 만나 우리는 술을 마셨다. 연애랄지, 진로랄지, 본인이 가진 고민들을 자주 털어놓곤 했었는데 그 시간들이 내게도 참 즐거웠다. 

그런 많은 날들 중의 하루였다. 그날도 여전히 간호사로 재직중이지만 더 넓은 곳에서 더 다양한 뜻을 펼치고싶다던 아해에게 


"헤드헌터 한번 해보면 어때?" 라고 묻게 됐다. 

좋아요! 짧고 명쾌한 대답. 그렇게 그 아이는 헤드헌팅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2022년, 재입사를 앞두고 다시 만난 어느날, 잘 할 수 있겠냐, 재입사만큼 어려운게 없는데, 하고 물으니 캐롤은 이렇게 말했다.


2018년에는 팀장님이 헤드헌터 한번 해보면 어떠냐, 해서 멋 모르고 들어왔다면

지금은 제가 하고싶고 잘 할 수 있을것 같아서 재입사한거라 뭔가 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으래?

그렇단 말이지. 뭔가 확실히 4년전과 다르긴 다르지만, 그래도 조금 더 두고볼일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왜? 많은 기대들이 얼마나 서로를 부담스럽게하고 실망스럽게 하는지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캐롤이라는 양반이,

올해 서른살이 되었는데, 그 서른살이 되는 본인 생일에 결혼식을 거행한다, 고 했다. 



어디서? 제천에서. 

누구와? 스무살 초반무렵부터 사귄 첫사랑 주스타와.




캐롤도 결혼을 하게 되다니. 캐롤 너마저...

(브로콜리 너마저, 는 어쩌다 그런 이름을 짓게 되었을까;;)


남의 남편 실명을 이렇게 거론해도 될른지 모르겠지만 허캐롤 남편의 이름을 쓰지 않고서는 허캐롤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을만큼 이름이 특이해서 남들 다 보는 브런치지만, 그의 이름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말이다. 


어쨌거나 몇달 뒤 결혼을 앞둔 캐롤에게

주스타의 아내 허캐롤, 이란 제목으로 짧은 단편을 하나 써줄까싶다.

(캐롤의 성이 허, 다. 망고라고 이름지었다면 허망고로 불릴뻔했는데 다시금 아찔...하다)


주스타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허캐롤을 위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본인이 (주스타가 아닌) 굉장히 멋진 남자를 만나는 소설을 써달란다. 

결혼선물로는 적합한 것 같지 않아서 극구 반대했다. 

허캐롤의 남편이 될 그 분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허캐롤이 멋진 남자를 만나는 글을 써주고 싶지 않은 까닭에서다. 이미 멋진 주스타를 만나기도했고,

멋진 누군가를 만나는 글을 써야 한다면 그건 내 자서전이 되야 할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다른 멋진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는 쓸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자 

에필로그라도 만들어서 살짝 언급이라도 해달라는 포기를 모르는 허캐롤.

그렇다면 프롤로그 쯤에 한번 언급해줄께, 라며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다.


그런데 어떤 글을 써주지? 나름 선물인데.

그나저나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_안나 까레리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_칼의 노래

화창하지만 쌀쌀한 4월의 어느 날이었고 시계는 13시를 치고 있었다_1984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말이 기억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때는 이점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을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서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_위대한 개츠비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트 코퍼필드식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지겹기 때문이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했다가는 부모님이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_호밀밭의 파수꾼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_이방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_설국

나로 말하자면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_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_피터팬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홀로 돛단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그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_노인과 바다

때로는 크리스마스에도 악마같은 아이가 태어난다_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_엄마를 부탁해

내 이야기를 하자면 훨씬 앞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할수만 있다면 훨씬 더이전으로 내 유년의 맨 처음까지, 또 아득한 나의 근원까지 올라가야 하리라_데미안

최고의 시대이며 최악의 시대였다_두도시 이야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_인간실격 (feat. 첫문장이 인상적이었던 소설)




다소 꽤 무지막지하게 막막하지만

일단 아이가 좋아라하니 뭔가를 좀 끄적끄적 해봐야겠다.

아직 6월이니까 지금부터 쓰면 11월엔 뭐라도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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