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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2. 2020

최애 뮤지컬 캐릭터<베르테르>

15주년 베르테르 공연 (2016)




어느새, 베르테르 15주년. 

오케스트라 연주로 공연의 서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역시나 나는 공연자체가 주는 그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 얼마나 기다렸던 조승우의 베르테르인가. 


베르테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조승우 팬으로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이다. 베르테르 넘버는 정말 수백번을 다시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뮤지컬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 벌써 십수년 전의 일. 그때는 주로 밤새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고 또 보는걸로 이런저런 공연들을 섭렵하곤했었는데 고백하자면, 내가 뮤덕이 된 배경에는 조승우라는 배우가 있었다. 조승우에게 먼저 빠져들고난 후, 뮤지컬에 입덕하게 되었던 것. 


그중에서도 2000년도 초반 내맘을 사로잡은건 단연코 <베르테르> 였다. 이 작품에 대한 뮤지컬 음반을 구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얼마나 애썼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루트를 통해 알아봤지만 이미 품절된데다, 재발매 계획도 없던 그 뮤지컬 앨범 때문에 속 썩던 나날들. 그러던 어느날 인터넷을 통해 '대몽'이란 분을 알게 됐다. 당시 화제가 되는 각종 뮤지컬 넘버를 유일하게 대몽님 사이트에서 free로 들을 수 있던 시기였다. 주옥같은 넘버들을 그냥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매일출석하며 글을 남기는 열정적인 내모습을 지켜보던 대몽님이 어느날 갑자기 그 귀한 베르테르 CD 카피본을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우리 집으로 보내주신 사건이 발생했다. CD케이스에 맞춰 가사집까지 복사해서 CD케이스에 맞춰 정성껏 오려넣어 주셨던 그 CD 하나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분이 내 운명의 상대가 아닌가 하고 얼마나 진지했었는지, 돌이켜보면 쑥쓰러운 일이다. 결국, 그와는 *뮤지컬 한 편을 보고 헤어졌을 뿐이지만 그에 대한 감사가 20년동안 이어지는걸 보면 당시 그는 내게 정말로 소중한 것을 주었다. 베르테르 CD 카피본.

내가 정말로 너무너무 구하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소중한 앨범.



그분은 이제 추억의 뒤인길로 가고 없지만,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던 그때 그 앨범은 여전히 내방 CD진열장에 너무도 잘 보관되어 있다. 몇번의 이사와 짐정리, 새로 산 최신버전의 베르테르 앨범사이에서도 굳건히 제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지켜냈다. 


스물셋넷 그 언저리의 일인데, 이상하게도, 바로 어제의 일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 해 조승우가 맺어준 인연들, 사건들. 


그당시에 조승우와 베르테르 덕분에 뮤지컬 세계에 입문해서 라이센스 공연에서부터, 소규모 창작공연까지 두루두루 섭렵했었는데 그때만큼 지금은 모든 공연, 모든 배우를 잘 꿰고 있지는 못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정도 나이가 들었는지 익숙한 배우들을 찾아서 익숙한 공연을 3연 4여녀 보러는 가도,

새로운 작품 새로운 배우 공연에 잘 도전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조승우 뮤지컬엔 캐스트 고민도 필요없지만. 


조승우가 등장하든 안하든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뮤지컬 작품 속에서도 내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건 역시나 <베르테르>다. 처음엔, 롯데라는 그 여자의 모호함에 화가 났었다. 약혼자도 있는 여자가 왜 때문에 베르테르에게 그렇게 과하게 친절하게 굴었던 건지 저 여자가 베르테르를 흔들어놓은것같은 생각이 들어 무작정 미웠던 것 같다. 우리의 순진무구한 베르테르한테 여지를 주는 것부터가 맘에 안들었달까.

그리고 겉으로는 발하임 최고의 신사라고는 하지만 (베르테르에 비해) 인간미 없고 냉정해 보이는 알베르트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베르테르 뮤지컬을 서너번 보고 또 보고, 다시 괴테의 원작을 여러번 읽고 나니, 이제서야 비로소 조금은 베르테르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저이의 순수한 순애보 자체가 롯데에게는 너무나 버거웠겠구나, 싶은 한편 신사라 티는 못내지만 알베르트에게 베르테르도 그 누구보다 인해 괴롭고 불편한 시간을 보냈을거란 생각도 들고.  베르테르, 알베르트 그리고 롯데 이 세 사람 각자의 처한 상황과 입장이 보이고, 공감이 가기 시작한거다. 


롯데 입장에선 이미 약혼하고 결혼했지만 대화가 통하면서도 정서적 유대감이 느껴지고 모성본능도 자극하는 베르테르를 무자르듯 차갑게 대할 순 없었을거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롯데의 예의 그 착한 성격도 그렇고.

롯데와 약혼한 알베르트 입장에선, 베르테르가 보여주는 절제되지 않은 감정과 불안한 행동이 기이하기도 하고 두렵게도 느껴졌을 것 같았다. 당시 통념으로는 권총 자살소동을 피우고, 살인자를 변호하는 베르테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거다. 

 





도망치듯 여행지에서 돌아온 베르테르는 여행내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던 롯데를 찾아나서는데....

시간은 그의편이 아니었다. 이미 롯데는 알베르트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그때 베르테르가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도망치듯 그 여행을 떠나지않고 롯데에게 고백했더라면 어땠을까?  자주보다 종종 그런생각을 했었다. 베르테르가 했던 그 후회스런 행동들을 다시 돌릴 수 만있다면...



오늘은 베르테르 15주년 공연이 있는 날. 

커튼콜 후, 정말이지 문자그대로 엉엉 울고 말았다. 

엄청난 기대를 안고 간 그곳에, 한때 그 풋풋했던 베르테르의 모습은 사라지고......어느덧 세월의 흔적이 더해진 베르테르가 서 있었다. 이미 그의 나이 서른 일곱. 아마도 이 공연을 끝으로 더이상의 조승우 베르레테르는 만나볼 수 없지 않을까...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에서, 아무리 '젊음'을 제외하고 <베르테르>로 공연된다 하더라도 무모한 사랑을 하고 그 감정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세상 불안정한 그 나이대를 살기에 조승우는 너무도 현실적인 중년이 되어버린거다. 


베르테르라는 작품을 조승우를 통해서만 만났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베르테르는 바로 조승우였고 

나는 그렇게 그의 연기와 노래가 <베르테르의 스탠다드>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고백하자면, 그래서인지, 베르테르를 스쳐간 모든 배우는 모두다 아류처럼 느껴졌기도 했다 '아니 저렇게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베르테르 치고 좀 지나치지 않아?' A베르테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고 '저렇게 바보스러울만큼 답답한 모습만이 베르테르의 전부는 아니라고!' 마치 찌질하게 짝사랑만 전문으로 하는 어리숙한 남자로 보이게 연기하는 B 배우버전을 보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었다.


또, 가장 좋아하는 넘버 #사랑하고있다면 #어쩌나이마음 #발길을뗄수없으면 은 조승우 이외의 배우가 부를 수 없는 곡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지금 다들 잘부르지만 아무렴 우리 승우만하랴....)


오늘은, 그 조승우의 명넘버를 맘놓고 들었다. 

일말의 아쉬운 맘도 들지않고 내가 생각한 아주 완벽한 그대로의 베. 르. 테. 르.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슬픈걸까?

 

커튼콜때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관객들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한듯 그가

꽤 오래 고개숙여 인사한 후

고갤 들어 손을 흔들며 Good bye 인사를 건넸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다시는 조승우 베르테르는 볼 수 없겠구나. 정말 마지막이구나’하는.


베르테르 라는 작품에서만큼은 조승우 시대가 어느덧 공연의 막바지처럼 서서히 끝을 향해 가는 느낌을 받았어.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역할이란게 있는거니까. 군대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연애편지도 쓰고 발렌타인데이 초콜릿도 만들고 하는걸 지금 우리 나이에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나이가 든다는 건, 감사한 일도 많고 몰랐던 지혜도 쌓이고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도 잊히고
그리움도 사그러들어 좋은데 왜 가끔 그렇게 서러운건지 모르겠다.


이제 진짜로  베르테르를 보내주게 때가 된 것 같다.

참, 행복했다. 조승우와 함께.



 2016년 1월 3일 베르테르 15주년 기념공연을 보고 나서



에필로그

금마리 말에 의하면, 2020년 베르테르에는 새로운 인물 카이가 도전한다고 한다. 현재 그녀의 최애 뮤지컬 배우. 갈라콘서트에서 가까이 카이를 봤는데 꽤 밝은 에너지가 전해져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전까지 내게 그는 그저 무색무취의 배우였는데, 카이의 베르테르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지만 아마 나는 꽤 오랫동안은 베르테르 무대를 찾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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