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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r 02. 2023

그런 경험은 이미 충분합니다만

<슬램덩크>를 보고난 후 느낀 것들




요즘 잦은 실수로, 의기소침해있는 팀 막내 뒷모습이 안쓰러워서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보는 걸 좋아하는 친구다) 영화는 The first 슬램덩크, 로 결정했다.


왠지 없던 의욕도 생기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MZ세대가 이 만화를 좋아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언제나 나의 최애는 풋내기 강백호

한편으로는 98년생 (오늘 새삼, 팀 막내랑 18살 차이가 난다는 걸 알았다.....그간 딸뻘 되는 막내에게 너무 과한 프로페셔널리즘을 요구한 것 같아 미안해지는 순간이다)에게 슬램덩크가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없던 농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걸 보면.

본인 인스타에 <인생영화>라는 멘트와 함께 영화 엔딩을 스토리에 올린 걸 보면 나름 괜찮았던 모양이다.


두시간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나에게 필요한 경험을 주세요



근데,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부터…


고교 에이스로 명실상부 no.1 실력을 갖춘 산왕공고 정우성이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찾은 신사에서

게임의 승리도, 타이틀도 아닌 <필요한 경험을 달라>고 기도한다.


고교 넘버원 정우성 이름도 멋지다 ㅎ


북산고와의 경기에서 엎치락 뒤치락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던 산왕고는 결국 1점차로 아깝게 패한다. “이번일이 언젠가 너희들에게 큰 재산이 될거다"라는 감독의 위로를 듣는 순간, 정우성은 내게 필요한 경험은 패배, 였구나, 하고 깨달으며 오열한다.


어쨌거나 그의 바람대로 그에게 필요한 '패배'라는 경험은 얻었다!!


근데, 나는....헤드헌터로서 이미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또 거듭했기에 더이상은 ‘그런’ 경험을 빌지 않는데 그런 일이 또 생겨버렸다.


오퍼협상에서 결렬된 케이스


헤드헌터는 후보자에게 포지션을 제안하는 순간부터 그네들이 이번 이직/포지션을 통해 원하는 희망연봉을 확인한다. 후보자의 희망연봉과 고객사가 제시하는 연봉의 range 가 비슷해야 의미있는 결과가 도출되기에 그렇다.


A 후보자의 희망연봉은 일관되게 같았다. 사전인터뷰때나, 최종인터뷰때 그리고 오퍼협상을 앞두고 같은 금액을 희망한다고 '여러번' 말했고 나는 구두상 오고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행여라도 희망연봉에 대해 기본급과, 인센티브, RSU, 거주지원비용. 차량지원금 등에 대해 후보자와 내가 생각하는 기준의 차이가 있을까봐 기본급과 토탈연봉, 기타 현금성 복리후생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후보자의 희망연봉과 고객사가 제시하는 오퍼 수준을 맞춰갔다. 다행이도 고객사(기업)에서는 후보자의 의사를 반영하여, 후보자가 원했던 희망연봉에 입각한 오퍼를 보내줬고 후보자도 입사일정과 오퍼금액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줬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아침 발생했다. 후보자로부터 기본급의 20%를 더 인상해줬으면 한다는 전화를 받게된 것. 워낙, 드라마틱한 연봉인상이 없었던터라 후보자의 요구가 합당하게 느껴져 별다른 의구심 없이 고객사에 상황을 전달하고, 글로벌 승인이 나기를 기다렸다.


근데 아직 수정된 오퍼가 컨펌되기도 전에 후보자는 입사일정에 대한 변경을 요청해왔다. 이번이 세번째조율이다. 인수인계나 현재 조직 상황상 입사일정을 조율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A 후보자에게 더 좋은 기회가 생겼구나' 하는.

지난한 통화끝에 후보자로 하여금 '결국 더 좋은 기회가 있어서 이번 기회는 인연이 아니었던걸로 마무리하자'는 자백에 가까운 답변을 이끌어 낸 뒤 이 오퍼를 종료했다.

종료라는 의미는, 다시 처음부터 그 포지션에 적합한 후보자를 서치(발굴)하고 사전인터뷰해서 총 3차례 인터뷰를 안내하고, 오퍼협상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통상 한달 발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짧으면.

근데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해도 더 적합한 후보자를 찾는게 마음편하다. 어차피 새로운 회사에 조인해서 만족못할 후보자라면, 오퍼단계에서 결렬되고 입사하지 않는 것이 헤드헌터 입장에서도 기업의 입장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다.


그래서 오퍼협상이 결렬되고, 채용이 취소되는 일은 비일비재하여 괜찮은데 12년차가 되었건만 여전히 힘든것은 태도가 달라지는 후보자들을 대해야 하는 일이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진실을 꺼내야 하는 과정이다.


A 후보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제니퍼와 함께 '을'이라는 포지션으로 이직을 하고자 달려왔고 그과정에서 제니퍼에게 고맙지만 지금 손에 들어온 더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안하지만 제니퍼와 함께 진행한 포지션은 드랍하고 싶다, 근데 그간 고마웠기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는 것. 딱 이 얘기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후보자들은 차마 그 팩트를 전하지못하고 애꿎은 연봉핑계를 대고, 입사일정을 운운하거나, 이제 와서보니 자신이 생각한 포지션과 다르다는 이유를 댄다.

왜 그말이 그렇게들 힘든걸까?



센스있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인터뷰 일정을 정해놓고, 그 인터뷰에 참석하고 싶지 않을때 후보자들은 잠적한다.

그럴때 후보자로부터 답을 얻어내는 백발백중 스킬이 하나 있다. 문자로 <홍길동님, 이번 인터뷰에 참석이 어려운 걸로 알고, 일정 마무리짓겠습니다>라고 메세지를 보내는 것. 100명중 90명은 답을 준다. 죄송한데 , 취소해달라고.


근데 차마 먼저 인터뷰에 참석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거다.


대체, 왜 그럴까?

허태균 교수가 <어쩌다 한국인>이라나 책에서 말한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의 특성을 지닌 한국인들 특유의 특성인걸까?


정우성은 신사에서 이름모를 신에게 자신에게 필요한 경험을 달라고 기도했고 이름모를 신은 그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나는 나에게 필요한 경험은 됐으니,

후보자들에게 진짜마음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고 싶다.


오퍼는 거절하고 드랍되어도 되지만,

처음에 나이스했던 후보자의 태도가 변하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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