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수업에서 언급된 영화 1탄
이번 글을 통해 언급된 영화는 총 7편이다.
1. 질투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영화 <클로저>
2. 감정은 모두 소중함을 알려준 영화 <인사이드 아웃>
3. 오리엔탈리즘과 재현의 문화정치학을 볼수있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4. 조현병에 대한 실제 사례 존내쉬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
5. 기억에 관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 6.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7. 어떤 상처로 인해 자신만의 색깔이 굳어진 <오베라는 남자>
먼저, 클로저.
스무살 중후반 언저리에 이 영화를 봤을 때나 마흔세살이 된 지금이나 여전히 이 영화는 어렵다. 내 기억에 이 영화가 남긴 건 영화의 시작에 강렬하게 깔린 OST 였다. and so it is, 라며 읊조리듯 시작하는 노래는 can't take my eyes of you 라는 격정적 고백으로 이어진다.
몇년전엔가 신성록 배우주연으로 이 작품이 연극무대에 오른다고해서 친구랑 보러갔는데, 별다른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메모라도 해둘껄.
지난주 <리더의 정서지능>이라는 수업에서 교수님이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영화를 추천해주셨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남자가 있는데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질투라는 감정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남자가 있고 (주드로다!), 그에 비해 덜 매력적이지만 그 감정을 잘 처리하는 남자 (클라이브 오언)이 있는데 결국 그 감정을 잘 처리하는 남자가 관계를 잘 핸들링하여 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하더라, 라는 내용이었다. 질투와 시기는 비슷하지만 큰 차이는 질투는 특정대상이 있지만 시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다. 나는 질투가 많은 편인가? 1에서 10까지의 정도가 있다면 7~8정도의 강도로 질투가 있는 편인 것 같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질투에 대한 공부가 간절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동료사이에서나 친구들사이 심지어 가족사이에서도 질투라는 감정이 드는 것을 보면 질투는 단지 연인관계에서만 솟아오르는 감정은 아닌것 같다. <질투, 나는 왜 그를 믿지 못할까>라는 최기홍 교수님이 번역한 책도 사두었는데 아직 책장에 그대로있다. 믿고 싶은 혹은 믿지 못하는 '그'가 현재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생기면 읽어봐야지.
사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않는게 좋긴 좋겠다. 왜 그를 믿지못할까 고민하며 이 책을 펴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뻐근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댄과 앨리스는 동거하는 사이로 서로 사랑하지만 우연히 만난 사진작가 안나에게 댄이 반하면서 관계가 삐걱거리게 된다. 댄은 앨리스와 동거하는 동안 무려 1년이나 몰래 안나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댄은 앨리스에게, 안나도 안나의 남편 해리에게 그들의 관계를 털어놓는다. 앨리스는 댄과 지내던 집을 나가 클럽에 나가고(스트립댄서다), 해리는 아내가 바람핀 사실에 괴로워하다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마지막 섹스를 나눠주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주겠다고 하면서 점차 정상적인 생활을 찾아가려고 한다. 댄과 안나는 마침내 온전히 둘이 되어, 사랑을 나누면 되는데.....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교수님은 주드로는 질투라는 감정을 잘 처리하지 못했고 클라이브는 잘 처리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나는 두 남자의 질투의 결이 뭐가 그리 다른가 싶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면, 클라이브는 바람핀 아내 (줄리아 로버츠)를 용서하고 안아줬지만 주드로는 전남편과 마지막 섹스를 하고 이혼서류에 사인을 받아온 연인 (줄리아 로버츠)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과정에서 안나가 돌아서고 만다(결국 안나는 다시 해리의 곁으로 돌아간다). 안나를 잃은 댄은 괴로워하다 안나의 전남편 해리의 병원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던중 연인 앨리스 (나탈리 포트만)가 일하고 있다는 클럽을 알게 되고, 해리가 앨리스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해리는 자신의 아내와 바람폈던 댄에게 복수하고자, 댄의 연인 앨리스와 잤다는 걸 알려주게 되고 안나의 전남편 해리(클라이브 오언)와 앨리스가 섹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댄은 앨리스에게 제발 진실을 말해달라며 집요하게 추궁하게 된다. 잤냐, 안잤냐, 진실을 말해달라, 집착하는 댄에게 결국 앨리스도 이별을 고하게 된다. 앨리스와 동거하면서 매일 앨리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지난 1년간 안나와 꾸준히 만나고 심지어 두사람의 동거공간에도 안나를 데려와서 섹스를 해놓고, 댄 이남자의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나싶다.
안나와 사귀고 있다는 댄의 고백을 듣자마자 바로 댄의 집을 나와 클럽에서 일하던 앨리스는 클럽을 찾아온 안나의 전남편 해리와 섹스를 나누게 된다. 해리 입장에선 자신의 아내와 바람이 난 댄을 향한 복수로 댄의 연인과 잠을 자고 싶었을테니까 앨리스는 복수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런데 앨리스는? 앨리스가 댄과 섹스를 한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리는 자신의 아내 안나와 행복한 일상을 이어가고, 앨리스도 자신의 원래 고향 뉴욕으로 돌아가고 댄만 홀로남겨진다.
여기서 이해 안가는 부분 하나 더는, 왜 앨리스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해리에게만 말해주었나, 하는 부분이다. 댄이 알던 앨리스는 사실 제인이었다. 앨리스는 왜 댄에게는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으면서 해리와 섹스했던 진실은 말해준것일까? 나는 도저히 이해가....가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 교수님 이야기처럼 주드로에 비해 클라이브가 질투라는 감정을 잘 처리한게 맞는건가?
언니의견을 물으려고 영화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다보니 우리는 앨리스와 잔 사실을 주드로에게 알리고, 주드로가 열받을 것을 알고 아내와 마지막 섹스를 하고 이혼서류에 사인해준 것, 이 모든것들이 더 야비하게 느껴지는데. 주드로가 솔직했던 것은 아닐까? 교수님께 일단 메일을 드려놓았다. 교수님외에는 누구도 명확하게 이 부분을 해결해줄 것 같지 않아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설명주셨다. 친절하게!!! 자세히!!!!!
댄은 매력적인 사내아이로서 여러 상대에게 호감을 얻는 법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애착 관계에 위협이 생기거나 상처를 입으면 그때 발생하는 두려움이나 화를 견디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감정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상처받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애착 관계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을 겪겠죠. 그때 화가 나더라도,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길 바랍니다.
왜 인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정신증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주변 가까이에 그런 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와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조현병'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었는데 드라마 '괜사'이후 괜찮은 작품을 찾지 못했다. 관련 영화라고 해서 찾아본 몇몇 작품들이 (파이트 클럽 등) 그닥 흥미롭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달랐다. 조현병에 걸린 미국 수학자 '존 내쉬' 교수의 삶을 다룬 실화기반의 영화로, 이 병의 증상에 대해서나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요소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제일 충격적이었던건, 식스센스급 반전같은 '사실'이었다. 대학시절부터 방을 같이쓰던 룸메 찰스와 찰스와 조카 마시와 그에게 은밀한 일을 부탁한 정부 비밀요원 파처가 모두 그가 만든 환각이 만들어낸 존재라는 것.
존 내쉬는 파처와 함께 비밀리에 소련의 암호 해독을 하는 국가 기밀 업무를 하며, 이 때문에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감시하고 해할 것이라는 망상(delusion)도 함께 가지게 됐다. 환각과 망상이 지속되지만 아내 덕에 꾸준히 치료를 받았던 존 내쉬 교수는 조현병이 발병한 이후에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증상은 호전됐지만 옆에 앉은 학생에게 "자네도 지금 내가 보는 저 옆에 앉아있는 남자가 보이나?"라고 물을 정도로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환각에는 실제 하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환청, 실제 하지 않는것이 보이는 환시(괜사 조인성의 경우 어릴적 맞는 엄마를 지키지 못해서 갖게 된 죄책감이 만들어낸 도경수가 환시로 보인다), 실제 하지 않는 것을 느끼는 환촉이 있는가 하면 ‘병적인 믿음’인 망상에는 ‘누가 나를 감시하고 내 뒤를 미행한다' 등 각종 피해망상과 주위의 변화가 나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망상, 부정망상(의처증, 의부증 등), 애정망상 등이 있다.
어릴때 (에어팟이 없던 시절인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대화를 나누는 아저씨들을 종종봤고, 병적으로 아내를 의심해서 힘든 삶을 지낸 지인의 아들 이야기도 익히 들었는데 어쩌면 그들 모두가 존내쉬 교수와 같은 조현병이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원하지 않는 환청과 환시와 환촉이 계속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다면, 주변사람들에 대한 관계망상이나 의심이 든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모두가 존내쉬 교수처럼 자기 병의 증상을 완화시키면서 자신의 일을 수행해나가고, 격리하고 피하기보다 사랑으로 감싸줄수있는 가족이 있는 것은 아닐텐데......정신증 환자들의 처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딱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편견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뿐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지만 말이다.
음
수업 전에 본 영화라, 시간될때 다시 한번 봐야 기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베 스타일의, 조금은 기이하지만 어떤 '상처'로 인해 자기만의 색깔이 굳어진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책을 읽고 영화도 봤는데 <리더의 정서지능> 수업시간에 감정에 대해 논하던 교수님께서 이 영화를 언급했다.
오베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를 통해 애착관계를 형성했는데 어느날 아버지에게 좋은 성적을 자랑하러 가는길에 아버지가 기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고 그건 내 책임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듯하다. 그러다 아내 소냐와 여행하던 도중 오베가 화장실에 간사이 버스가 전복되어 소냐가 다리를 잃고 아가도 잃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강하게 한듯하다. 이후 오베는 마을에 차가 들어오면안된다는 규칙을 일방적으로 만들고 차가 들어오면 쫓아다니면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오베라는 남자의 감정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 다시 한 번 보고 기록을 이어나가야겠다.
나의 메인 정서로 말할 것 같으면 단연 '슬픔'이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내 오랜 동료이자 친구이자 팀원인 써머는 인사이드 아웃이 개봉했을때 내게 저 슬픔이 인형을 사주었다. 내 감정의 대부분의 프로세스는 먼저 슬픔이 들어오고, 그 뒤에 분노, 화, 상처입은, 후회, 과민함, 수치심, 죄책감, 질투심, 불안함, 두려움이 오는것 같다. 때때로 감사함, 연민, 배려, 흥미로움, 기대됨 같은 감정들이 오기도 하고.
어쨌거나 '라일리'를 행복하게 위해 감정컨트롤 본부에서 무진장 애를쓰는 '기쁨이'를 보면서 한번, 상상의 친구 코끼리 '빙봉'이 라일리의 컨트롤 본부로 돌아가려는 기쁨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에서 또 한번 오열하면서 위로받았다.
"슬픔이란 감정없이는 다른 감정도 색을 잃는거야. 까칠, 소심, 버럭, 기쁨, 슬픔 모두 그것 고유의 쓸모가 있는 감정이기에 진화되는 과정에 여전히 남아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슬픈일이 많은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말자"
<인식의 다양성과 개인차> 수업을 통해 다양성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두고 각각의 전공분야 교수님들의 특강을 듣는 중인데, 지난 수업에서 꽤 충격을 받았다.
포스트휴머니즘, 기술과 인종 담론, 기계 학습의 창조성 등에 대한 논문을 저술하고, 인공지능의 윤리학에 대한 책을 준비중인 신혜린 교수가 준비한 '미디어를 통해 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에 대한 강의였는데 20년전 필립스 광고며, (면도기 CF인데 면도기를 여성으로 의인화해서 그 여성=면도기, 이 벌거벗은 남자에게 다가가 면도를 해주는 미래지향적 느낌이 풍기는 광고였는데 너무 끔찍했다. 충격적이기도 하고.
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 일단 직접 한번 보시기를.
1980년대 작품인데 2019년을 배경으로 한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의 도입부도, 비교적 최근 작품이며 배두나 등 한국을 사랑하는 워쇼스키 작품인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오리엔탈리즘 장면도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인을 그린 한국 배경에 일본 가구와, 일본식 배경을 넣는 워쇼스키는 굳이 한국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짬뽕시켜놓은 것은 아닐거다 애초에 한국과 일본과 중국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서양인들 특유의 시선으로 아무래도 좋겠지 싶었을지 모른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의 작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동양 문화의 여러 측면을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이르는데, 서양인의 관점에서 재현된 동양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들이 동양문화와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만큼 끔찍한게 우리가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우리문화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제 그것을 안 이상, 더이상 몰랐던 에전으로 돌아갈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평이 넓어진다는 건 좋은 일인데 왠지 지금보다 더 까탈스러워지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될 거 같다. 좋은건데 마냥 좋은것만은 아닌 그런 것?
주인공이 기억하는 폭력적인 아빠에 대한 기억이 사실은 왜곡된 기억이었다, 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영환데 (아빠는 엄마와 레슬링 연습을 하고 있었을 뿐 엄마를 때린게 아니었다!)
주인공 폴은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을 억압했고, 이후 부모님의 갑작스러 죽음에 대한 슬픔의 감정, 이모들에 대한 분노의감정을 처리하지 않았다. 어떤 감정이 처리되지 않으면 다른 감정들도 같이 처리되지 않는 다는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이나 이미지 등이 아름다워서 자칫 주제에 대해 소홀히 넘어갈 수 있는데 꽤 흥미로운 영화다. 수업 전에 본 영화라 '기억'에 집중해서 다시 한번 보고 내용을 기록해봐야겠다.
'심리학 수업시간에 언급된 영화들'이라는 리스트로 글을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정리개념으로 포스팅을 해보았다. 목적은 첫째 언급된 영화들 모두 보기.
둘째, 수업내용 기억하듯 수업시간에 언급된 영화들 다시 보고 기록해두어 오래오래 기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