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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Oct 31. 2023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했다

부제: 내 오랜친구 '이석증'이 선물한 토닥토닥 day 에 대하여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 있어? 너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아?

그럴때매다 나는 오히려 묻고싶어진다. 한번도 물어본적은 없지만.

당신은 어떻게 당신에 대해서 그렇게 모를 수가 있어요? 당신의 일인데?


그러나 오늘, 나는 그간 내가 오만했음을 인정해야했다. 나역시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했을뿐 나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갑자기 어지러움증이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안의 스트레스가 이토록 차올랐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모든인간은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나'는 (착각) 안할 것 같죠? 여러분은 인간 아닙니까?" 

남들 다 착각해도 자신은 착각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인간 심리에 대해 허태균 교수님이 말씀해주신게 생각나는 아침이다. 왜 교수님 말투까지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까? 뭐지, 그리운건가.







오늘 나는 쉬기로 결정했다. 지난 1년여간 발길을 끊은 친구가 모처럼 나를 찾아왔는데 그럴땐 영락없이 모든 것을 멈추고, pause 하듯 쉬어주어야 한다. 그 소중한 친구의 이름은 '이석증'. 이 친구가 찾아오면 모든 것이 all stop. 처음 이 친구가 찾아왔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12번을 토할정도로 속이 매스꺼웠고 그래서 침대머리맡에 세수대야를 올려두고 시도때도없이 게워내야했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고개를 돌릴 수 없을만큼 괴로웠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던 시간들. 지금은? 다행히도 최근 2-3년 사이 그 정도까지의 고통감이 온적은 없었다. '지금 이 상태로 조금 더 지나면 12번 토할만큼 어지러운 고통이 찾아갈 것 같은데?' 정도의 경고를 줄 뿐 이전과 같은 고통스런 순간이 오기까지 방치하지 않게 되었다.


잘 환대해서 보내야지, 라는 생각에 집중하지만 그래도 이 친구가 갑자기 왜 찾아왔는지에 대해서 짚을 건 짚어봐야겠다. 10월 31일, 올해가 두달 남은 이 시점에서 이 친구는 갑자기 나를 왜 찾아왔을까? 이유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아닌데.


그가 찾아온 이유를 찾아내야 어떻게 환대해서 돌려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이 생기기에 이 친구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귀인을 통해 추측해봤다.

귀인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라는 사람은 귀인을 참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귀인이란 심리적 추론으로 그가 왜 그랬지? 아 그래서 그랬군, 하며 나름의 합리적인 추측을 하는 과정인데 타인의 심리를 추론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왜곡될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한사람이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귀인하는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어느정도 예측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귀인은  '사람의 성향을 탓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며 외적인 요인도 바라봐주는 것'으로 구분되는데 후자의 경우 사람과 상황에 대한 이해심이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간단히 사례를 들어볼까. 일단 귀인에는 성향귀인과 상황귀인이 있다. 예를 들어 제니퍼가 어떤 미팅에 늦었다고 치자. A라는 친구는 제니퍼는 왜 시간약속을 안지키지? 정말 무례하군, 하고 제니퍼를 판단했고, B라는 친구는 제니퍼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오늘 회사에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B는 제니퍼의 지각이 예외적이라고 생각하고 지각의 원인에 대해 다른 부분을 찾아내려고했는데 이것이 상황귀인(외적귀인)이다. 반면에 A는 제니퍼랑 오랜 세월을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제니퍼가 보통때 지각하지 않는다는것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는 가장 간편하게 제니퍼=게으른 사람, 이라고 행위자(제니퍼)가 가진 개인적인(내적인)요소에서 지각의 이유를 찾았다. 이게 성향귀인이다. 귀인이 왜 중요하냐면 A처럼 생각하면 늦게 온 제니퍼에게 화가날수밖에 없고 왜 늦었는지 비난할 가능성이 높은데 B처럼 생각하면 늦게 온 제니퍼를 이해해주려는 마음을 갖고서 '근데 오늘 왜 늦었어?'라면서  조금 더 부드럽게 상황을 이야기할수있게 되기 때문이다. 늦은 것으로 인해 다툴일이 조금 줄어든달까.


그럼 다시 이 글의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녀석이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귀인을 해보자. 성향귀인으로 추측해보자면 다음 두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수면패턴이 깨진것과 혼자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 지난 2~3주간 수면패턴이 깨졌다. 2시 넘어서 자는것은 기본 어떤때는 새벽 세시에도 자면서 평소 유지했던 7~8시간의 적정수면시간이 5시간 아래로 떨어졌다. 게다가 집순이 제니퍼, 혼자있을 시간이 필요한 제니퍼가 최근에 2주간 친구와 함께 지냈고 지난주말에도 3일내내 다른 친구네서 지내면서 혼자 쉼을 갖지 못했다.


상황귀인으로는 일적인 스트레스와 타인과의 비교로 생기는 자존감의 손상으로 볼 수 있다. 팀장으로서 매주 팀장미팅에 들어가야하는것은 숙명이나 최근들어 혁신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춰야한다, 인당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마음이 많이 쓰였던 것 같다. 지금 내 업무에서 혁신을 도모하려면 난 뭘 바꿔야하지? 전문성갖고 일했던 것 같은데 막상 전문성에 대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고나니 내가 정말 전문성이 있긴 한건가? 그간 열심히는 달려왔는데 정말 전략적으로 효율성을 도모한게 맞나? 잘해왔던 것들에도 회의감이 들었고, 왠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요구받는 것 같아서 마음의 저항감이 커져갔다. 그렇다고해서 동료의 성과에 대해 시기가 생긴다거나 다른 동료를 칭찬하는 것이 기분 나쁘진 않았는데 왠지 좀 주눅이 들고 남들은 다 잘하고 있는데 나만 멈춰있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를 믿고 함께해주는 팀원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가 올라갔다. 최근들어 급격히 줄어든 프로젝트에 대한 BD(business development) 압박감도 받았던 것 같고. 입으로는 괜찮다, 말했지만 속으론 안 괜찮았는지 며칠잠도 못자고 운동도 안하고 무기력감을 느끼다 결국 이렇게 이석증이 찾아온게 아닐까.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이석증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너 정말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그럼 다시 재정비해. 너는 쉬면서 차분히 생각도 정리하고 계획도 세워두고 책도 읽으면서 회복하는 타입이잖아. 오늘은 남 눈치보지말고 그냥 오롯이 너 혼자 쉬어.
토닥토닥 day 만들어서 너 스스로를 토닥토닥해줘.

니가 타인에게 미안해하거나 자책감 갖지 않도록 내가 나타나줄께.
나를 활용해. 어지럽다고 하면서 쉬면 되잖아. 근데 제니퍼, 쉬어도 괜찮아. 충분히 잘해왔잖아 올해. 학교공부도 열심히했고 학교일도 맡아서. 팀분들 성과관리도 잘했고 팀운영도 잘한데다 너 스스로 개인실적도 좋았잖아. 남들에 비해서 부족하다고? 남들과 비교하고 회사의 니즈에맞추다보면 제니퍼 니 행복은 저멀리 안드로메다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걸?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 중요하지. 너의 상태자존감을 올려주니까. 근데 너는? 진짜 너는 언제 행복한데? 책읽고 쉬면서 산책하고 영어공부든 공부하고 브런치에 글쓰고 가족 들과 마당에서 놀때 아니야? 회사에서 인정못받을만큼 일 못한것도 아니고 그간 노력안한것도 아닌데 인정받으려는 욕구 조금 내려놓고 너 스스로 인정할수있는 가치를 위해 공부하고 투자하는것에 자부심을 가지면 어떨까?

굳이 나(이석증)를 소환해내지 않아도 너는 충분히 쉬어도 돼.
오늘 하루 미뤄두었던 양재천 산책, 아란 잉글리쉬 공부하기, 좀머씨 읽기, 글쓰기, 낮잠자기, 마음껏 즐겨. 그래도 괜찮아.



에필로그

"너 정말 괜찮아? 괜찮다고 했지만 정말 괜찮은거 맞냐고?" 한번더 물어봐주는 사람

강릉 툇마루 흑임자커피 생각난다. 진짜 최고!


어제 친구랑 만두국을 먹으러 갔다가 친구가 내게 짜증을 냈다. 나를 만나러 오는 찰나에 오만떼만 사람들이 <배려>라는 이름으로 친구를 힘들게 한 모양이다.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닌데 오늘은 그 모든게 부담이고 짜증이 났다며 울었다. 그아이의 힘든 하루 마지막에 제니퍼가 김치만두와 고기만두를 섞어줄까? 하는 배려 한스푼을 얹었는데 그게 기어코 친구를 울게 만들었다. 눈물을 닦고나서 이내, 친구는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넸다.


 "친구야 괜찮아. 미안하다고 안해도 돼.

너는 내가 만만하고 편안한지 나한테만 짜증내더라.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고, 니가 내게만 그런다는거 아니까 괜찮아. 너도 누군가 한사람한테는 편하게 짜증도 부리고 그래야지. 나는 화도 못내고 조심스런 관계보다 서로 불편한거 이야기하고 그러는관계가 훨씬 좋아. 생각해보면 너는 불편한것도 나한텐 다 이야기하더라 ㅋㅋ 다른사람한텐 안하면서. 어쨌거나 나는 괜찮아.

만두먹어. 오늘 하루종일 반미 샌드위치 반조각으로 버틴거면 정말 배고팠겠다. 배고프면 더짜증나고 화나니까 일단 배부터 채워"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착한척 하는것도 아니고 내가 이 친구를 좀 안다.

언제나 다 괜찮은 친구. 웬만하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데다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러블리한 내친구. 근데 그 친구가 일년에 한번 힘들어할때가 있는데 겨우 한번뿐이니까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최대한 친구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워낙 미안할 일도 안만들고 미안하단 말도 잘 안하는 친구라 그친구가 미안해하는 상황을 빨리 넘기고도 싶었다.


친구는 말했다.


"근데 정말 그렇긴 한것같애. 다른사람한테 안하는 것들을 네게 하는걸 보면 네가 만만하고 편안한것 같애. 근데 너, 정말 괜찮은거 맞아?"


나는 이질문이 참 좋았다. 한번 더 내 맘을 확인해주는 것.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괜찮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괜찮지 않을 수 있는 제니퍼의 마음을 알기에 친구는 한번 더 내가 정말 괜찮은지 확인해주었다.


"니가 나를 만만하게가 아니라 편안하게 생각해서 그러는거라면 괜찮아.

근데 내가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았는데 짜증내면 당연히 안괜찮지. 그땐 내가 말해줄게. 나 안괜찮다고.

 근데 1년에 한번정도 사람들의 배려와 관계에 치여서 짜증내고 우는거니까 아직까진 괜찮더라.

너는 겨우한번이니까, 그리고 오늘 내가 너의 폭폭함에 대미를 장식한건 맞으니까. 오늘은 정말 괜찮아"



그리고 어제 하지 못한 말에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정말 괜찮은 것, 맞는지 한번 더 물어봐준 것 고마워. 칭구야.


물론 내 오랜된 친구가 아니라면 '내가 괜찮다고 했음 괜찮은줄 알지 두번세번 나의 상태를 체크하는거 그것도 참 무례하네?' 하면서 <정말 괜찮은것 맞냐>고 물어오는 상대를 불편하다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이제니퍼씨. 일견 좀머씨 같은 부분도 있고 때로는 오베같은 측면도 가진 나에게 대체 어떤 반려자가 어울릴까 새삼 걱정이 됐다. 그 특이하고 사려깊은 반려자가 대체 있기는 할까.

어쨌거나 오늘은 일단 하루 푹쉬면서 나에게 쉼을 허해야겠다. 자책감갖지말고 쉬어도 되는 토닥토닥 day를 온전히 누려볼 작정이다. 어지럽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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