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많은 김장이 끝났다.

by 책읽는 헤드헌터
2023년 11월 18일 김장



요즘엔 설과 추석명절보다 김장하는 날이 더 큰 가족행사라는 말이 있다. 나도 그말에 공감한다. 오히려 설과 추석은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귀찮으면 떡이나 전도 사먹으면 되고 쉰다는 것 외에 딱히 부담이 크지 않은데 김장하는 날은 다르다. 일년내내 가족들 모두가 나눠먹는 김장에 빠진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년에 80세가 되는 우리 엄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65세 전후까지는 혼자서 김장을했다. 50포기씩 배추를 절궈서 사흘정도 날마다 김장을 했다. 총각김치 하루, 배추김치 이틀, 무김치 하루, 이런 식으로.


엄마는 김장은 물론 밭일과 설거지하나도 시키지 않고 혼자 다 했다. 지금은 절대로 그렇게 놔두지 않았겠지만 어릴땐 철이없었던건지 아니면 학교 간 사이라서 몰랐는지 엄마 혼자 그 일을 다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어린시절, 엄마와 아빠가 가장 많이 다툰 주제도 딸들에게 일을 시킬것이냐, 말것이냐, 였다.

왜 이렇게 딸년들을 아끼냐, 버젓이 다 큰 자식들하고 같이 고추모종도 하고 콩잎도 따야지, 라는게 아빠의 입장이었고 엄마는 딸들 아깝다고 시키고 싶지 않다면서 싸웠다.

그년들 놔뒀다 국 끓여먹으려고 하냐, 는게 아빠의 단골대사였다.


근데 엄마는 왜 우리한테 일을 하나도 안 시켰어?
아빠랑 그렇게 싸우면서까지?


아까웠어. 그냥 아깝더라고.

나는 딸들 일 시키는것 딱 비각이었어.


철학자 강신주가 그랬다.

사랑은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라고.

그렇다고 아빠가 우릴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방식이 달랐을뿐.

딸년들도 부모를 아낀다면 밭일 논일을 도와야 마땅하다, 고 아빠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참 이중적인 사람이다. 딸을 그렇게나 아꼈으면서 말을 다정하게 해주지 않았다.

사는게 고단해서그랬을거라고 지금은 이해하지만

'넷째 다섯째 저것들은 낳지 말았어야돼' 라거나 차마 글로 쓸수없는 험한 말들을 많이했다.


엄마의 뇌경색때문에 재활치료를 해야했던 1년동안 같이 병실 생활을 하면서, 엄마가 아빠를 만났던 상황들이나, 새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집을 나온 이야기도 듣고, 딸 다섯을 남 부럽지 않게 가르치고 싶어서 억척스럽게 야채장사를 했던 일들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시절 이해할수없던 엄마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뇌경색 이후 걸음걸이도 불편해지고 편측마비때문에 일상생활에 제약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나 나,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들이 더 많았다.


엄마의 말이 다정해졌고,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예배에 나가고 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엄마가 되었고

개들에게도 측은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되었고

손주들에게도 인자한 할머니가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할머니가 되었달까! ㅎㅎ


이 글을 쓰면서 엄마를 인터뷰하는 도중에 엄마가 너무 큰 소리로 방귀를 뀌었다.

엄마는 초등학생 애들처럼 방귀 이야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래서 누구라도 방귀를 뀌면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일주일내내 웃을일도, 누구와 대화할일도 없는 엄마를 웃기려는 사명을 가지고

방귀소재를 놓치지 않는다.


"아오!! 진짜 소리 크다. 대체 뭘 드셨대"

"아니 그럼 나오는 방구를 밀어넣니? 니 이불로 안갔어. 이불이 다른데 뭐" 하고 딴청을 하면서 더 큰 방귀를 뀌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어제끼는 우리 오마니.


..

.


지난주부터 오늘까지 내내 엄마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이야기는 온통 김치 이야기뿐.

"김장이 끝나서 후련해.아주 잘됐지 뭐야...."

"내년엔 김장을 안한다고? 말이 되나 김장 해야지. 니들이 안해도 나혼자 할거다"

일주일 내내 다끝난 김장에 대한 회고 중이다. 참 대단한 우리 엄마.


김장한다고 배추랑 알타리 무 씨부터 뿌리고

여름내 보살피고 가을에 거둬들이고 겨울에 얼세라 뽑아서 씻어두고 고추가루 빻아서 쟁여두고 한결같이 진짜 너무나 대단하다.

학교다닐때, 장한어머니상을 우리 엄마가 4번은 넘게 받은것 같다.

참 장한 우리엄마.


다 자라다 못해 어느새 마흔하고도 셋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내가, 장한 우리 엄마를 위해 해줄수 있는건 별로 없다. 매주 엄마를 보러 오는 것. 엄마가 좋아하는 추어탕과 족발을 번갈아 사다드리는것. 싫다고 뿌리쳐도 안아주고 얼굴에 뽀뽀해드리는 것. 오만개 넘는 엄마의 질문에 짜증내지 말고 친절하게 대답해주는것.



우리 엄마가 내게 바라는건 언제나 소소한 일들이다.






11월 18일

걱정많은 김장이 끝났다.

애들은 내년엔 김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장철에 남이 하는것을 보면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것이다.

남들은 김장하는데 우리만 안하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애들아 내년엔 더 많이 하자

은숙이가 총각김치 얼마나 잘먹는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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