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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Nov 26. 2023

나는 어떤 욕심을 부리면서
올해 1년을 보냈을까?

양평중앙성결교회 11월 설교요약



양평중앙성결교회 이윤영 목사님의 매주 설교 말씀을 요약한 기록입니다.






공욕을 소유하는 성도 

하나님 말씀: 삼상 8:1-3


사무엘은 하나님께 귀히 쓰이는 제사장, 선지자, 선견자였다. 이후 그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사사가 되었다. 요엘과 아비야. 오늘 말씀은 욕심에 대한 것으로 욕심은 공욕과 사욕으로 나뉜다.


공욕은 주님의 나라를 위해 욕심을 내는 것으로 주님의 자녀는 공욕부려야할때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반면에 사욕은 나를 위한것, 육을 위한것, 땅의것을 위한 욕심으로 믿는자는 사욕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정복할수없기에 이를 경계시 여겨야 한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 앞에 항상 기도했었다,

당시 제사장 엘리는 나이가 많아서 침대에 자고 있어서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했는데 그 사이 

깨어있는 (어린) 사무엘이 그것을 듣고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후 사무엘은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는 일에 생명을 다하고 욕심(공욕)을 부리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제사장과 선지자 자리에서 여러가지 사욕을 챙길 수 있는 이권이 생겼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 아들 둘은 뇌물을 받고 사욕을 부려서 결국 백성들이 그런 사사는 필요없으니 대신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해서 사울이 왕이 되었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사욕이 있었다면 백성을 설득해서 우리 아들을 이자리에 앉혀야된다고 욕심부릴 수도 있었을텐데 사무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 


공욕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는 생명의 위협이 있을 수 있고 이런저런 온갖 사건을 만나지만 공욕을 이루는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공욕을 이루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어주시기 때문이다. 


올해가 가는 이 시점에 나는 어떤욕심을 부리고 살아왔는가? 


이왕이면 공욕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는욕심)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난 1년 나는 어떤 욕심을 부렸는지 평가해보자. 공욕이 작용했는가. 사욕이 작용했는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했는가? 공욕을 이루기 위해 좋은 환경과 조건을 주셨는데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애썼는지? 세상것과 사욕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살았던건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매일매일이 새날이고 새해지만 올해 남은 한달동안 공욕과 사욕을 구분하여 고칠것은 고치고 이루어갈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목사님이 설교시간을 톻통해 말씀주셨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거룩한 성도의 직분들을 사욕을 위해서 사용하고 이룬 것들이 있다면 회개하는 마음 (뉘우치고 돌이키는 마음)으로 진리안에서 공욕으로 전환하는 일을 이루길 바란다고.


내속에 신앙의 성품속에는 공욕과 사욕이 그대로 들어있다. 

하지만 하나님 자녀로, 공욕에 힘쓰면 점차 사욕이 사라진다, 고 하셨다. 

또한, 공욕을 구하다 보면 이땅 시공간의 사욕의 것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채워주신다. 그러니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사욕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내 심령속에 공욕이 가득가득 채워짐으로 말미암아 내심령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교회 일터 가정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데 애쓰고 힘쓰는, 그래서 큰자의 상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요엘과 아비야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었다. 
신앙의 계대자가 되어 아버지 신앙을 유산받았으면 좋았겠지만 사욕에 지배당하여 제사장과 선지자가 되어도 본래의 직분을 감당할수 없었다. 사무엘의 두 아들로서 주님뜻을 온전히 전할수있는 자리를 이어 받았음에도 두 아들들은 그 역할을 감당할수 없었다. 육신의 정욕과 사욕이 나의 신앙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신앙의 상속자 삼아준 그 자리에서 주님을 아프게 했는데 성경에도 수많은 곳에서 사욕으로 큰 고통을 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순종하는 직분자 


순종하는 직분자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했다. 

엘리사가 집중+전념하여 스승 엘리야의 많은 부분을 배우게 되었다. 


믿는 직분자인 내가 먼저 바르고 온전해지기를 힘써야 한다. 성령세례 매일매일 내 육체에 받아야 한다. 남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청소봉사 같은것을 통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주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예배실 마지막에 나갈때 돌보면서 불끄는 것, 마지막 나가는 사람 정리하는 것 그런 사소한 일들도 중요하다.


한번 지나간 시간과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돌이키는 사람

감화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이 맡긴 일을 하면 그일을 하면서 하나님 의지에 대해 깨닫고 감동하게 된다.

지혜롭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직분자는 말씀을 듣고 생활화해야 한다. 언행일치!

세상에서 큰자가 되는것 보다 하늘에서 큰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돌이켜야 하는가?   

세상에서 쫓던것으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왜? 육신의 삶이 짧기 때문이다.

죄악에서 돌이켜야 한다. 아직도 매어 있는 것, 작은죄, 말씀 거스르고 진리를 떠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게으름으로부터 돌이켜야한다. 진리와 지식으로 깨어있기!


사건과 시험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드러난다.

목사, 집사, 권사, 장로 등 각자 서야 할 자리가 있다. 

제때 제가 있을 곳에서 제할일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자가 된다.


[제니퍼의 깨달음]

하나, 다른사람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들어줄때, 내 이야기와 경험위주로 이야기하지말고 하나님의지 구하면서 상대방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둘, 상대방이 질문하지 않으면 내 이야기 길게 하지않기!

셋. 내게 맡겨진 직분, 하나님의 일을, 주께 대하듯 하면서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기! 



하나님의 은혜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나님 말씀: 시편 116:12-14) 

매년 11월 셋째주는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100년전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정착한 절기다.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교황의 타락과 정치적 탄압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본토 친척, 생활의 근간을 버리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이라는 대륙에 도착했다. 이 청교도가 미국에 도착해서 네가지 목표를 세우고 교회를 세웠다. 


1. 신앙의 자유 보장 (교회는 있는데 교황이 없는 회중교회) 

2. 나라는 있는데 왕이없는 나라를 원함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 

3. 언어 (공용어 영어) 

4. 땅이 비옥한 프리마우스?라는곳. 


이 네가지 목표로 교회를 세우게 된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 인사하고 이웃사람 초대해서 큰 잔치를 베푼것으로부터 '추수감사절'이 유래되었는데, 이후로도 이 날은 미국국경일로 지정되어 청교도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가을 첫수확을 조상에게 바치는 우리의 명절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어떤 교회는 추석 전주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기도 한다.  조상보다 먼저 하나님에게 제사 지내자는 의미로.

그래서 교회마다 추수 감사절이 다르지만 그 날짜가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 절기를 지키면서 우리가 감사의 조건을 지키는지가 중요하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는게 더 중요하다는게 모사님의 말씀. 


오늘 시편 116편의 배경은, 

다윗의 친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이스라엘 왕이 되어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를 죽이고 왕이 되려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성공직전에 이르기 직전 상황이다. 다윗이 언제라도 압살롬 부대에 잡혀 죽을지 모르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장면이다.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구원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상황. 기본구원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생명구원선에 탄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도 있지만 그 가치를 모르고 물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에 있다. 우리는 항상 내 영이 강권하고 온전한지 아니면 병들고 주저앉았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 


절대적인 하나님 주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까.

절대적인 감사를 드려야 한다. 감사에는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가 있다..

상대적인 감사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감사 (하나님께 하는 하나님 자녀의 감사가 아니라 자기과시 감사로 생명구원선에 탄 사람들은 절대적인 감사를 해야한다)하는 것이고,

절대적인 감사는 가시도 꽃도 모든 조건을 초월해서 감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환경이나 조건속에도 감사할수있는 신앙이 가득해야 한다는 것.


사람에게 감사하는게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했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긍정적으로 말하는사람과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보고 똑같은 사건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앞에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시편 대부분은 저자는 다윗인데 다윗은 간혹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의 삶 대부분은 주님에 대한 감사가 충만했다.


** 절기는 모두 주님에 대한 감사. 말씀주신것을 감사하는 절기가 추수 감사절이 되어야 한다. 말씀의 피동이 되어 깨우치며 교훈이 되는 일로 고백되는 감사가 늘 충만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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