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토요일 아침을 여유롭게 시작하면서 잠언을 들었다(이 글을 수정하는 시점은 주일 아침이다)
줄리가 마음 맞는 사람들과 '플리마켓'을 여는날이라 잠깐 들르기로 했고, 그에 앞서 지난 2년간 한번도 점검하지 않은 차를 점검하러 정비소에 가야했고 그 와중에 틈틈이 다음주 기말고사 시험도 공부해야해서 나름 분주한 오전이었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인 성경먼저 펼쳐들었다.
하루의 시작은 중보기도 or 성경통독으로 설정해두었다,
잠언 11장에서 16장을 듣다가 어제 우연히 알고리즘 통해 보게 된 구혜선이 생각났다. 그와 동시에 며칠전 함께 화사(화요+사이다)를 마신 B와 헤어지고 나서 든 찜찜한 감정의 끝에 내가 했던 말실수가 떠올랐다. 오늘 하루는 사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깨달음의 시작은, 금쪽상담소 구혜선 배우 덕분이었다.
어떤 보이지않는 힘에 의하여 알고리즘이 나를 금쪽상담소 구혜선, 편을 보게한 것이 나에겐 오래된 고민을 해결해줄 실마리를 제공해주게 된 것이다. 예능한편이?
예능한편이라도 그곳에서 배울것을 찾을 수 있었다.
에 대해 고민해왔고 그 해결책으로 '깊이있고 신뢰할만한 몇몇 소수와의 교류로 관계를 제한하는 방법'을 고수해왔다. 그렇게 스스로 고립되기를 자처하면서 나 스스로를 가두어두고 영향력을 한정지었다.
나에 대하여 왜곡된 뒷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아닐 것 같은 사람'을 구별해왔고, 굳이 더 깊은 관계를 만들고자 애쓰지 않았다. 그런데 오은영 박사가 배우 구혜선님에게 해주시는 조언을 듣고, 내 오래된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되었다, 와우!
오박사님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바로 배우 구혜선의 화법이 문제라는 것.
구헤선의 TMI랄지 혹은 자기만의 철학이 담긴 구혜선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구혜선이 주는 과한정보가 "나를 가르치려 드네?"라고 생각되거나 "자기만 일하는 스텝 생각하는 배우인것처럼 말하네. 그럼 우린 뭐야? 자기만 매니저들 생각해서 청담동 샵 안갔다오는데 우린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 배우라서 굳이 청담동 가서 헤메하고 오는 생각없는 배우라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게한다는 게 오은영 박사의 지적이었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이러한 그녀의 화법때문에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로부터 수동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 본의아닌 오해가 쌓여 적대감을 품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을 곡해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 대목에서 나는, 구혜선 같은 나의 모습을 봤다. 본의아닌 오해가 쌓여 나를 곡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들. 수동공격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뒤로 신뢰할 수 있는 소수의 몇몇하고만 깊이있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스스로를 고립했던 경향도 없지 않았다. 내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곡해하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TMI를 방출하고 개똥철학을 설파하면서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친밀감을 형성해왔다. 어차피 한정된 에너지 자원에서 소수 몇몇과 깊이있게 친밀감 형성하는 게 왜 나빠?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나쁜건 아니지만 그러한 태도 이면의 side effect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틀을 좀 개선해나고 싶었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한 거리두기 혹은 선 긋기'에서 보다 열린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왜 내 발언에 방어기제를 꺼내들까?
다 잘되자고 한 이야긴데 왜 내 이야기를 고깝게 듣는걸까?
숱한 날 많은 밤, 그런 고민을 했었다.
용기있게 고민을 상담해준 배우 구혜선님에게 이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녀라는 창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없었을거다. 나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은 이유로 프로N잡러인 구혜선을 불편하게 바라봤던 것은 사실이다. 배우에, 영화감독, 예술가, 수석졸업...TMI 발언, 확고한 자기철학을 가진 그녀가 왠지 모르게 싫었는데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가진 예쁜 배우에 대한 부러움/시기' 였을수도있고, 그녀의 철학처럼 살고 있지 못하는 나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을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녀를 통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대략적으로나마 나에 대한 성찰을 마쳤으니 이제 next step은 회개한 것을 상대방에게 바로 사과하기였는데 언제나 그렇듯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빛의 속도로 사과했다.
"나는 당신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전하지말아달라"는 요지로 술마시던 밤 나는 상대방에게 부탁이란 이름의 강요를 했다. 다음날 아침, 왠지 모르게, 평소와는 다른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감정은 아주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배웠기에 계속 그 감정에 대해 파고들었다.
지혜서라는 잠언을 읽고 있었기 때문인지, 어느 한 구절 덕분에 그 감정의 근원을 알아냈다. 그리고 바로 B에게 연락했다.
"잠언 읽다가 든 생각인데, 내가 당신에게 나와 관련된 말을 삼가해 달라는 것 자체가 무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당신이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닐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을 표출했다. 내 목적은, 앞으로 더 자주 보고싶고 그러기위해서 신뢰하자는 거였지만 어디까지나 내 목적일뿐, 내말을 듣는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았다. 신뢰라는게 말로 형성되는 것도 아닌데 신뢰를 강요한 기분이라 매우 찜찜했다. 심지어 나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당신이 그 누구에게라도 전하지 말아야 할 비밀도 사실은 없다. 만약 전하지 않았으면 하는 비밀이 있다면 그건 내가 말하지 않으면 되는게 아닌가? 그러니 그건 내가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부탁할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관리하면 되는 일이라는 걸 잠언을 읽다가,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날밤 참, 미안했다"
내가 보낸 카톡을 보자마자 상대방도 화답해주었다.
"네가 여러번 이야기해서 살짝 기분나빴지만 오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라고.
역시나,새벽꼭두부터 깨달음이 얻어지고 사과를 하고 싶더라니.아니나다를까 그녀는 살짝이든 아니든 나로 인해 기분이 상했던게 맞았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1초만에 용서를 해주었다.
그리고 다이어트때문에 독주를 선택했던 건데, 다시금 왜 술취하지말라, 라는 구절이 성경에 있는 줄 알게 되었다. 알면 행해야 하는데 다음주 종강파티, 친목모임 등으로 술자리가 있는데 술취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독주는 떠들게 하나니, 라는 잠언을 읽다가 정말 깜짝놀랐다. 하나님, 저만 보고 있는거 아니죠? 와우. 사람으로 하여금 거만하게 하는 포도주와, 떠들게 하는 독주와 그 모든 술을 삼가함으로 지혜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그런 감정선이 예리하고 또 예민한 사람이라서.
말씀 속에서 회개하고 그것에 대해 바로 사과하는 사람이라서.
예능 프로를 보다가도,지나가는 사람을 보다가도, 책 한구절에서라도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라서.
작은 일에도 기회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서.
나의 하루와 나의 일생을 주님께 맡기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고 성령충만함을 기도하는 사람이라서.
타인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남을 도와주고자 하는 오지라퍼 마음이 있는 사람이어서.
나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잘 아는 사람이라서.
(분명 어제까지 나름 우울모드였는데 다이어트 정체기에서 체중이 좀 떨어지고 D-day 가 시작되니 긍정의 기운이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후후훗. 이제 기말고사를 시작해야겠다. 생리와 기말고사라는 변인은 인과관계는 없지만 분명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리전에는 왜그런지 PMS 로 부정적 기운에 사로잡혀 내가 아무것도 할수없을만큼 자신감히 하락하는데, 막상 생리가 시작하면 여느때의 나처럼 긍정적 기운+할수있다 마인드가 장착된다. 이 오래된 PMS 메커니즘의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PMS 논문에는 그 원인을 알수는 없다, 라고 기재되어 크게 실망했다. 원인은 알수없지만 편도체 활성화하는데 내면소통이 도움이 되는 것처럼 PMS 안정화를 위한 방법도 있지않을까 싶으니 한번 논문을 찾아봐야겠다, 대학원 입학후 달라진게 있다면 논문검색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전에는 궁금하면 무조건 책을 찾아봤는데 이젠 논문사이트에서 어슬렁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읽을만한 논문은 왜 죄다 영어+유료인걸까...하하하)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잠 21:23)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잠 17:28)
미려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14장 3절)
지혜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15장 2절)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18장 6절)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19장 1절)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12장 13절)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15장 28절)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15장 23절)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16장 24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25장 11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0장 19절)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장 13절)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장 1절)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17장 9절)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18장 8절)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20장 19절)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20장 3절)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전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12장 19절)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12장 22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