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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l 13. 2024

레거시 언론 종말 후
대안 미디어 시대의 뉴스에 대해서


요즘은 사회전반에 일어나는 뉴스에 무지하다. 즈음의 뉴스를 신뢰할 수 없어서 선택한 방식이 세상의 모든 뉴스로부터의 고립이다. 과연 그것이 나에게 어떤 유익과 해를 주고 있을까?


자정까지 야근하다 퇴근하면 20-30분 남짓 먹방을 보다 잠드는데 이번주 수요일엔가 퇴근 후 쯔양의 먹방채널에서 낯선 장면을 보게되었다. 곱창 20인분을 먹거나, 라면 20개를끓여먹으면서 행복해할 쯔양의 채널에서 불안에 떨며 무언가 큰 잘못을 한뒤 기자회견장에 올라 고개숙인 연예인들처럼 쯔양이 고개를숙인체 무언가 중대발표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사건인 즉슨, 쯔양이 한때 폭력적인 애인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직후부터 협박, 폭력, 현금갈취에 시달려왔다는 믿지못할 이야기였다. 호흡이 가빠지고, 불안이 극도로 달한 상황에서 쯔양은 몇백만 팔로워를 향해 본인이 겪은 끔찍한 사건에 대해 두서없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사건들이 정말 스무살 초반 여자애가 겪은일이 맞는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다음날, 농구선수 허웅과 전 여친의 고소사건이 담긴 뉴스를 보게됐다. 3년간 사귀는 동안 2번의 낙태를 하였고, 그것에 대해 금적적 위자료 3억을 요청하는 전 여친을 허웅측에서 고소한 상황이라고 이해했다. 


몇달전 벌어진 개통령 강형욱과 퇴사한 직원사이의 공방. 진실싸움과 이선균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아침, 축협의 불투명한 국대 감독선임에 대한 사건을 두고 박지성 선수가 용기내어 기자회견을 한 장면을 봤다. 역시 모두 유튜브에서였다, 


그리고 그러한 알고리즘을 통해 역술인들이 허웅의 사주팔자를 넣어 허웅이 의뢰하지도 않은 허웅의 사주팔자를 불특정다수에게 말해주는 영상도 그야말로 떡상하고 있었다. (떡상이라는 표현을 혐오하지만, 그 표현만큼 이상황에 적확한 표현은 없어보였다)


그들 남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사자의 동의없이 당사자가의 사주팔주가 노출되는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연인끼리의 사적인 녹취파일과 카톡대화까지 공개될 필요가 있나?

해당사건 당사자의 인스타그램을 찾아가 온갖 비방의 글로 도배하고 마녀사냥할 권한은 누구에게 위임받은건가?


즈음의 시대에는 뉴스를 봐도 진실을 가릴 수가 없다. 뉴스를 전하는 자들의 자격미달이다. 진실을 가리기 위해 애쓰기보다 사실관계확인안된 내용을 호도하고, 나중에 아니라고 밝혀지면, 그 피해자가 잘못된 뉴스를 통해 생사를 달리했건 말건 자기들 책임은 아니라는 식의 무책임함이 만연해졌다고 해야할까?


뉴스를 봐도 진실을 알수없는데, 

우리는 왜 뉴스를 봐야할까? 레거시 언론이 사라진 이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성향의 대안미디어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특혜로 여겨진 때가 있었다. 분명 그런 때가 있었는데 즈음의 사건을 접하면서, 쯔양 사건과 연계된 여러 유튜버들이 각자 저마다 자기 채널을 통해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사건은 개싸움으로 전락했다. 개싸움보다 고상한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날것의 단어로 표현했다. 


이미지가 좋았던 공인이 예상 못한 일을 겪으면서 이미지가 실추되고, 포토라인에 세워지고, 심판권도 없는 이들에 의해 심판받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폭풍속에서 허무하게 유명을 달리한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즈음은 계속 이선균이 떠올랐다. 이 수치를 견디면, 내일이 있었을텐데. 골방에 갇혀 어둠이 지속될 것 같아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라는 회한이 남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허웅이 잘했다고 편드는 게 아니다. 

전 여친도 괴롭고 허웅도 괴롭고 누구하나 마음 편할수없는 국면이 시작됐다.

합의를 하건, 법정공방을 이어가건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하면되는 거지, 우리가 나서서 안그래도 괴로운 그들에게 이런 저런 비방의 댓글을,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가족모두를 욕하는 험한댓글은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브런치에 글을 남기게 됐다. 


우리들 중에 죄없는 자만이 지금 허물있는 자를 돌로 칠 수 있다면, 

당신들은 주님으로부터 그 권리를 받을 수 있을까?

지금 어둠의 터널에 있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간다, 곧 새벽과 아침이 온다. 반드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날이 오니 힘내라는 것. 

좀비처럼 마녀사냥하고싶은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이말이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악인에 대한 심판은 때가 온다는것. 그러니 모든 것은 그분에게 맡기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혀에 할례하라고 했던 성경말씀 처럼 말과 글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했으면 좋겠다. 말과 글은 한 영혼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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