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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Nov 28. 2024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

#다시 알랭드보통




십여년만의 연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찾은 작가는 '알랭드보통'이었다. 어렵게 찾아온 사랑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해본적 없는 '사랑' '연애'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집어든 책은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 그리고 <안전이별>이었다.

낭만 이후의 연애에 대해서도 준비하며 이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하게 될때 어떻게 그것에 대처해야하는지를 대비해두고자 하는 두 마음 속에서, 낭만적 연애가 지난 후에도 이 사랑을 지속하고 싶다는 열망과 혹여 이별이 찾아올 경우를 대비하려는 두려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랑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또, 끝을 준비해두는 나 자신에 대해 슬퍼졌다. 이 슬픔은, 우리의 관계가 진행되는 동안 아주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게될듯하지만…


알랭드보통은 20대 제니퍼씨를 안심시켜준 유일한 남자였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습성과 태도는 연애할때 제니퍼의 패턴과 습성과 놀랍도록 일치해서 너무도 깜짝 놀랐는데 (나를 사랑하고있는 누군가가 그때그시절의 나를 기술해놓은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묘한 안도감 같은게 생겼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 모두 나처럼 비이성적이고 불완전하고 막무가내구나, 나만 돌아이처럼 구는게 아니구나, 라는걸 그의 소설에 등장한 여자주인공들을 보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40대가 되어서 다시 읽는 그의 문장을 통해, 최근 들어 그 누구에게도 받아본적 없는 위로와 위안을 얻었다.


낭만주의 결혼관에 따라 무수히 많은날 '알맞은'사람을 찾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제니퍼씨는 자신의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데 집착해왔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는걸 알면서도. 나를 포함한 각자각자 우리들은 너무 다양하고 특이해서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일텐데 그것을 간과하며 그와의 차이속에서 여러날 괴로워하고 불안해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 확실히 한가지를 배웠다.

아이가 울때 우리는 아이가 심술궂거나 자기연민에 빠졌다고 비난하지 않고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한다. 배고픔, 수면부족,소화장애가 기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먼저 살펴보는데,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애 같은 면에 조금 더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면 더욱 멋질텐데 하물며 그걸 내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그에게 해주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거다. 조금 더 다정하게, 다가가기.


그런데 ....글로 쓴것만큼 행동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첫눈오면 만나기로 한 그와 만나지 못한 어제 이후로,

차이를 인정하고 더 다가오기위해 노력하겠다는 그의 맘을 듣고서도 노력보다 차이에 집중하며 서운해서 토라져서 전화도 받지않고 동굴속에 있는 나는,

마흔네살이나 되었으면서도 떼쓰고 무조건적 사랑을 바라는 어린아이에서 한뼘도 자라지 않은 것 같다.

서운하면 헤어질결심부터 하고, 도망갈 핑계부터 찾는, 토라졌지만 이해받고 싶어하면서도 상대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않고 동굴안에 틀어박혀 사방을 막아놓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 들어와 안아주기를 바라는.





편애하는 밑줄


보통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다.


러브스토리는 누군가 우리를 다시 보지 않으려 할까봐 두려워할때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항상 보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대 시작된다. 그들이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도처에 있을때가 아니라 평생 서로의 포로가 되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나눌때이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게 없다.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의 혼란스럽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부분을 우리의 연인이 다른 누구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 최고조에 달한다. 이들은 우리를 간파해내고, 신뢰하고 나눌줄 아는 우리의 능력 총량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봐고 공감해주고 용서해준다. 사랑은 우리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바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우리는 흥분, 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는 드디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연인이 나의 본모습에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인정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발견의 기쁨이다.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소통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할 필요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만일 파트너가 설명을 요구하면, 그는 설명을 들을 자격이 없다. 토라진 사람은 키 180cm에 성인의 직업을 견뎌내고 있을지라도 진짜 메세지는 지극히 퇴행적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 젖을 먹는 아기이니, 지금 당장 나의 부모가 되어줘야해. 내가 아기였을때, 사랑에 대한 관념들이 처음 형성되었을때, 사람들이 그래주었듯이 말이야" 토라진 연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호의는 그들의 불만을 아기의 떼쓰기로 봐주는 것이다. 성숙한 자아 너머의 것을 바라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그리고 용서해주는-것이 가끔은 가장 큰 특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는다.


의사전달을 잘하는 기본요건은 자신의 성격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의사 전달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분노나, 성적취향 또는 일반적이지 않고 거북할 수 있는 자기 의견에 대해 자신감을 잃거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숙고할 줄 안다. 의견전달을 잘 하는 이런 사람은 어릴 적, 모든 명네서 적절하고 완벽한 것을 요구하지 않고도 아이를 사랑할줄 아는 보호자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축복을 누렸음이 분며아다. 그런 부모는 자식이 -적어도 한동안은-가끔 이상하거나 난폭하거나 화를 잘 내거나 심술궂거나 기이하거나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수용할 줄 알고 그래도 가족의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줄 안다. 그렇게 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고도 고백과 솔직한 대화를 지속할 수 있게끔 하는 용기의 매우 귀중한 원천을 이루어낸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전달을 잘하는 사람 못지않게 드물거나 중요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 역시 특별한 자신감이 그 비결이다. 어떤 확고한 가정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정보로 인해 경로를 이탈하거나 그 무게에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있는 수용력 말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얼마간 담아둘 혼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경험을 통해 모든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트너로부터 두렵거나 충격적이거나 구역질 나는 말을 거의 듣지 않을 때가 바로 걱정을 시작해야할 순간이다. 친절해서든 사랑을 잃을까 애절하게 두려워해서든 그런 말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파트너가 달콤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의 상상력을 은폐하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징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희망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보에 귀를 닫아버렸고 그럼으로써 그 희망이 더욱 위태로워지리라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Jennifer: 파트너의 진심을 들었는데, 그가 내게 달콤한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상상력을 은폐하지 않고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어른스러게 행동하지 못하고 저 농밀한 내면의 어린아이 자아가 튀어나와 오랫동안 토라져있는 것일까? 나의 이러한 행동은 은연중에 파트너가 모든 상황과 고민을 솔직하게 터놓을 수 없게 하는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걱정이 되면서도 표현하기보다 한껏 움츠러들어서는 이런 나에게 찾아와 나를 다독여주고 미안하다말해주고 안아주기를 바란다. 겉으로는, 조금 도 다가올 틈을 주지 않으면서말이다.


마음이 전이에 말려들면 우리는 사람이나 상황을 믿어주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불안에 빠져 즉시 과거가 지정해놓은 최악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과거의 혼란에 의거하여 지금 벌어지는 일을 해석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꽤 굴욕적인 일로 느껴진다. 우리가 우리의 파트너와 실망스러운 부모, 남편이 잠시 지체하는 것과 아버지의 영원한 유기, 더러운 빨랫감 몇개와 내전의 차이를 모르겠는가 하는 것이다. 전이의 위험성을 인정하면 비난보다 공감과 이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두사람은 갑자기 폭발하는 불안이나 적대감이 항상 그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그러니 그런 폭발에 매번 분노나 상처받은 자존심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격분과 비난이 동정심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두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


분별있고 예의바른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수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수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뿐이다.


우리가 파트너에게 부당한 요구들을 하고 그 곁에서 매우 부조리해지는 까닭은 우리 내면의 불명료한 부분을 이해하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고통을 많이 해소시켜주는 누군가가 또한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바로잡을수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적같은 능력을 보고 감탄했던 어린아이가 수십년뒤 어른이 되어 그때의 경외감에 별난 경의를 표하듯 상대방의 능력을 과장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사랑과 가르침의 관계를 바라보는 유용하고도 시류와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그들이 보기에 사랑은 무엇보다 먼저 타인의 훌륭한 점을 찬탄하는 감정, 고결한 특질과 대면했을때 느껴지는 흥분이었다. 그결과 사랑의 깊어짐은 항상 보다 고결해지는 방법-화를 잘 참거나 관대해지는 법, 탐구심을 키우거나 더 용감해지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욕구를 수반하게 됐다. 성실한 연인이라면 상대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 수용은 관계의 목적을 나태하고 비겁하게 통째로 배신하는 행위였다. 이 고대 그리스의 렌즈를 통해 본다면 연인이 상대방의 성격으로 인해 불행하거나 불편한 점을 지적해도 그가 사랑의 정신을 포기했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파트너의 자아를 더 발전시키려는, 사랑의 본질에 아주 충실한 일을 하려 했다고 축하받아야 한다.

현재보다 더 진보한 세계, 그리스식 사랑의 이상에 조금 더 깨어있는 세계에서는 우리가 어떤 것을 알려주고자 할 때에 어색함과 두려움과 공격성이 약간 줄어들고, 피드백을 받을때에도 다소 덜 호전적이고 덜 예민해질 것이다. 신뢰하고 협력하는 분위기에서는 두 프로젝트-가르치기와 배우기, 상대방의 결점을 환기하고 상대방의 비판을 혀용하기-가 결국 사랑의 참된 목적에 충실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사랑의 다른 측면을 가르쳐준다. 아이가 울때 우리는 아이가 심술궂거나 자기연민에 빠졌다고 비난하지 않고 무엇이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생각한다. 배고픔, 수면부족,소화장애가 기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잘 알아본다. 만일 이 본능을 성인들의 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입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성인들의 관계에서도 심술궂음과, 잔인함을 보아 넘기고 거의 항상 그 이면에 깔려있는 두려움, 혼란, 피로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인류를 사랑으로 바라본다는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린애 같은 면에 조금 더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면 더욱 멋질 것이다.


성적 욕구는 확고히 친밀해지고자 하는 염원에서 나오며, 그렇기에 사전의 거리감을 전제로 하고, 그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매우 독특한 기쁨이자 안도감을 선사한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불안정 애착, 두려워하고 집착하고 지배하는 행동양식이고 회피애착은 방어 및 후퇴작전이다. 불안정한 사람은 파트너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질투심을 분출하고 그들의 관계가 더 가깝지 않은 것을 슬퍼하며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쉽다. 한편 회피적인 사람은 공간이 필요하단 식의 말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불안정 애착의 징후는 침묵, 지연, 막연함 같은 애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즉시 모욕이나 악의적인 공격과 같이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사소한 모욕, 경솔한 말, 부주의를 파탄의 전조라도 되는 양 불길하고 강력한 위협으로 느낀다. 좀 더 객관적인 설명은 와닿지 않는다. 이들은 내심 그들의 삶을 위해 사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그들은 보통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약함을 설며하지 못하고 그래서 심술궂다거나 성마르다거나 잔인하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회피애착 유형은 정서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상대방에게 노출을 줄이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회피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설득력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쉽게 가정한다. 자리를 피하고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다. 유감스럽게도 회피적인 사람은 두려움에 찬 방어적인 행동양식을 파트너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결과 그들의 소원하고 무덤덤한 행동들 뒤에 숨어있는 이듀들은 안개속에 싸인 채 진실과는 정반대로 무정하고 무심하다는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킨다. 회피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었을뿐, 마음속으로는 상대방을 깊이 염려한다.


그의 애착유형은?

나는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만 상대방이 종종 뚜렷한 이유도 없이 실망스럽거나 이기적으로 나온다. 나는 스스로 타인과 너무 가까워지는걸 용인하면 상처를 입게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나는 혼자 지내도 괜찮다. 회피애착.
나는 타인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지기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는만큼 그들도 나를 소중히 여길까 하고 걱정한다. 그때문에 아주 속이 상하고 화가 날때가 있다. 불안정 애착.
나는 비교적 쉽게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해진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그들이 나에게 의지하는데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혼자있거나 다른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안정애착.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이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능력에는 적정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사랑은 매우 상이한 두가지 양식인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로 이루어져있다. 후자를 실행할 준비가 된 동시에 전자에 대한 우리의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집착을 인식할때 결혼을 하는게 바람직하다. 처음에는 사랑받기에 대해서만 알고 인생을 시작한다.  아주 그릇되게도 사랑받는 일이 표준처럼 보이게 된다. 아이들은 마치 부모가 거의 항상 온정 어리고 기꺼운 마음을 유지하며 자발적으로 그들을 위로해주고 인도해주고 즐겁게해주고 먹여주고 씻겨주는 것처러 느낀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개념을 성년기까지 갖고 간다. 성인이 되었을때 우리는 보살핌을 받고 다 받아들여지던 그느낌을 되살리고 싶어한다. 우리는 마음속 은밀한 구석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예측하고, 우리의 심정을 읽어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모든 면에서 더 나아지게 해줄 연인을 그린다. 이건 낭만적인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중요한 여러분야에서 파트너가 우리보다 더 현명하고 합리적이고 성숙하다는 것을 인정할때 우리는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우기를 바라야 하고, 그들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 또한 다른 순간에는 최고의 교사로서 모범을 보이고,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방도알리라 지레짐작하지 않고 우리의 제안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사람을 찾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알맞은, 사람의 진정한 표지는 완벽한 상보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차이를 수용하는 능력이다. 조화성은 사랑의 성과물이지 전제조건이 아니다.

Jennifer: 그렇다면 그는 나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같다. 그런데도 나는왜 사랑의 성과물인 조화, 에 대해 전제조건처럼 생각하고 그를 놓으려고 했을까?


사랑의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고 사랑의 여정에서 거쳐 갈 길이 우우라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 이처럼 우리자신에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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