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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Sep 29. 2024

'고흐' 작품이 어렵다는
독서토론 멤버들에게

책읽는 헤드헌터 모임 <한뼘> 10월의 책, 반고흐 영혼의 편지




책읽는 헤드헌터 모임 <한뼘>에서 나눌 10월의 책은 <반고흐, 영혼의 편지>다.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작품을 위해 일부러 자신이 가진 정신증을 치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몇번이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달라졌지만 한가지 변함없는것은 가족에 대한 고흐의 죄책감이 내게 너무도 크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고흐에게 크라우드 펀딩이 있었다면 죄책감없이 화상이나 후원가 눈치보지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을까? 고흐가 좋은 상담치료사를 만나서 스키마를 해결했다면 지금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별헤는 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미 죽은 화가는 작품으로 뒷세대에게 말을 걸어온다는데 고흐는 감사하게도 그림 뿐만 아니라 테오에게 남긴 <영혼의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곤한다. 돈을 갚지 못한다면 영혼을 주겠다고 테오에게 한 그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 같다.


고흐의 천재성은, 

그가 오랜시간 하나의 꿈을 위해 버텼다는 것.




(잠시 여담이지만)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서재에 있다는건 축복이다. 빡센 서울살이를 하는동안 서너번의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책들은 내 서재에 꽂혀있었을텐데. 두번째 이사를 하는 순간부터 결심했다. 책은 읽고 나눠주자고. 알라딘에게 되팔건 주변친구들에게 선물하건. 책을 옮기는 작업이 너무도 고됐다. 책이 쌓일수록 책장의 크기도 커져야했고. 그래서 죄다 정리했는데 오늘은 그일이 굉장히 후회가 된다. 양평집 창고에 던져둔 내 모든 뮤지컬 씨디들도 문득 걱정이 된다. 슬램덩크 전집도 비에 맞아 버리게 되었는데......

하루빨리 양평에 나의 거처를 마련해서 더이상 책을 사고 '처분'하는 끔찍한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다.






고흐를 읽다가 중간에 멈췄다는 멤버들에게 내가 고흐를 만날 수 있었던 방법을 소개해주고 싶다.

1. 먼저 고흐를 사랑한 이들로부터 소개받을 것
2. 공감각적 접근으로 고흐를 만날 것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뮤지컬을 통해 그의 삶을 느껴보는 것)
3. 다시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볼것 
** 세가지 과정을 거치게 되면 진정으로 <고흐>를 만날수 있게 될거에요 ^^




한번씩 다시읽는 반고흐 영혼의 편지


한번씩 다시읽는         편애하는 밑줄

본의아니게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수없는 끔찍한, 정말이지 끔찍한 새장에 갇혀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이감옥을 없애는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것.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것과 같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의 규칙만 나열하면서 어떤 수고도 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이 만든 규칙조차 지키려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네가 말한 사람들이 낫다. (중략)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위대한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같은 불세출의 작품들처럼, 고흐의 위대한 삶처럼!


네 말처럼 우리 두사람은 현상의 배후에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기 좋아한다. 달리 말하면 사물을 분석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지. 그림을 그리려면 꼭 필요한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고. 유화를 그리거나 데생을 할때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어느 정도까지는 기질과 성격이 우리를 이끌어주는지도 모르겠다(우리가 브라반트에서 소년기를 보낸 덕분인지도 모르지. 주위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많이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었으니까)

*브라반트는 대체 어떤 곳이길래? 끔찍한 기억이 많은 곳이었을까?


이 개는 한때 아버지의 아들이었지만 그를 길거리로 내쫓은 사람은 아버지다. 너무 오랫동안 쫓겨나 있떤 개는 더 사나워졌다. 그개를 집지키는 개로 삼고 키울수도 있을텐데 그들은 이곳이 평화롭고 어떤 위험도 없는 곳이니 그럴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개는 이곳에 돌아온걸 후회한다. 그들이 친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황야를 떠돌때도 이집에서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문제를 피하는건 내 방식이 아니라네.


의욕적으로 일하려면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예술과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반성을 하게 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다.


전시대 그림의 등장인물이 하지 않은것, 그건 바로 노동이다.


너도 라파엘로가 '개성적 인물'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라면 "밭갈이 하는 농부에게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농부는 농부다워야하고 밭을 가는 사람은 밭을 가는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하겠다.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요즘은 양홍색과 코발트 색에 푹 빠져있다. 코발트는 아주 신비로운 색으로 사물 주변에 분위기를 만들때 이보다 더적합한 색은 없지싶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불행했을테니까.

*몇년전이었을까. 이 책을 읽다가 연필로 메모해둔 내용이 재미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 같다고 70세 할머니가 자리를 양보해주심" 언제적인지 모르지만 그때도 제니퍼씨는 지하철안에서도 열심히 살았나보다.


화가들이 연합해서 자기 그림을 공통체 소유로하고 그림 판돈을 나누어 가지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식으로 작업하면 공동체가 회원들의 생계와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해줄 수 있을테니까. 12명의 라파엘 전파연합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운동. 빅토리아 시대 아카데미 중심의 관학 예술과 산업사회 관습에 반발하면서 일어났다)과 비슷한 성격을 띠는 인상파 화가들의 공통체 결성은 꼭 실현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화가들이 공동체에 일정 분량의 그림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손실뿐 아니라 이익도 공동소유한다면 서로의 생활을 보장할 수있을 뿐아니라 화상들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외로움을 느끼기보다는 농담을 하는쪽이 더낫다. 이 모든 것을 농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무 괴로울것 같다.


너는 내가 부치는 그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너에게 진 빚을 갚아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했지. 그러나 나로서는 너에게 만프랑 정도를 가져다 줄 수 있게 되는 날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인생은 너무 짧고 빨리 지나간다.


시인, 음악가, 화가...그 모든 예술가들이 불우하게 살았다는건 이상한 일이다.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루앙에 가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수없듯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수없다. 중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빈센트 당신도 평화롭게 별까지 걸어 갔다면 좋았을텐데..


요즘은 너에게 그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보는 중이다. <수확>을 그리는 동안 밭에서 직접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쥘 뒤프레는 그를 후원해주는 예술애호가를 만나다지. 나도. 그럴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너에게 지우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화가가 자기 그림에 너무 몰두해서 감정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가정생활이나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할때, 그래서 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지금네가 하고있는 일역시 그만큼 힘든 일이다. 너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화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너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두명이 쓸수있을 경비를 혼자서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범죄자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고갱에게. 이 멋진 세상에서 결코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점을 자네도 분명히 알아주길 바라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그림을 그리느라 너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는 채무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감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편할까.


아무래도 요령있게 살아내기에는 내가 너무 현실적이지 못한 것 같다.


빈센트 1890년 7월 사망/ 테오 1891년 1월 사망 (6개월)






<영혼>에 대한 고흐의 생각들

예술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단지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네. 더 깊은 원천으로부터, 바로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솟아나온 것 아닌가.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1883년 9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고흐는 시엔고 헤어지고 트렌테로 갔다. 그는 시엔과 그녀의 아이를 버렸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그녀는말이야날닮은사람 #가난한사람 #나처럼상처많고겁이많은여자 #우리는서로의고통을나누어먹네
1884년 여름. 10살연상의 마르고트와 사귀면서 결혼을 생각했으나 그녀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갔다.
1885년 4월.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렸다.


1888년 2월. 하얗게 눈내린 아를에 도착했다. 노란집을 아틀리에로 꾸며 화가공동체 거점으로 삼으려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고갱을 초대했다. 9월 16일 고흐는 고갱이 와주기를 기대하며 노란집으로 이사했고 10월 23일 도착한 고갱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12월 23일 고갱과 심하게 다툰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랐다.


1889년 여전히 환각증상이 있었고 그를 불안하게 여기던 주민들 고발로 병원에 감금되었다. 4월 17일 테오가 조안나 봉제르와 암스테르담에서 결호했다.

*고흐도 이 결혼식에 참석했을까?









고흐 영화 2편

러빙 빈센트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Lianne La Havas - "Starry Starry Night" from Loving Vincent 

https://www.youtube.com/watch?v=vp5qJlr4go0

2. 고흐, 영원의 문에서


고흐관련 담화 

요한나 반고흐에 의해 고흐와 테오 불멸의 편지가 영어로 번역되고 고흐 작품이 전시되었다는걸 알았다.

반고흐 in Paris





제니퍼 N차 관란 뮤지컬 <빈센트 반고흐> 음악감독 선우정아

1. 뮤지컬 후기

https://brunch.co.kr/@jennifernote/115

2. 빈센트 뮤지컬 넘버

오베르의 밤, 선우정아 작곡 

<빈센트 뮤지컬 음악감독>

빈센트 넘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빈센트 넘버, 고갱은 말이야


3. 고흐에게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들

돈 맥클린 strarry strarry night with lyrics









고흐덕분에 함께 떠오른 두남자를 소개하려고 해요. 

고갱 그리고 마왕.

오랜시간 미워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고갱을 소개합니다. 어렸을때 <귀잘린 자화상>의 그림을 보고 연유를 들었을때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나는 고흐가 고갱을 사랑했다고 했다. 고흐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떠난 고갱을 첫번째로 미워했다. 그리고 삼십대가 되어 만난 고흐 뮤지컬을 통해서도 고갱이 두번째로 미웠다. 

화가연합공동체를 꿈꾸며 한껏 들뜬 고흐를 맞춰주지 못하고 지겨워하며 결국 떠난 것에 대해서. 테오가 자기 빚을 탕감해주고, 테오가 이렇게 저렇게 뒷돈도 챙겨주었을텐데 싶었다. 

그러나 마흔이 되어 다시 고흐를 읽고, 고흐가 귀를 자르게 만든 원인으로서의 고갱이 아니라 화가로서 고갱을 만나고 나니 그간 고갱을 미워했던 것에 사과를 하고 싶어졌다. 너무도 멋진 불멸의 화가 고흐지만, 나라도 그의 곁에서 일주일을 버티기 어려웠으리란걸 이제는 안다. 고갱은 고흐와 달랐을 뿐 (너무도 달랐다) 고흐가 맞고 고갱이 틀린게 아니었다.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게 되는 순간, 어른이 되는건가....싶기도 하다. 미안했어요 고갱. 하지만 여전히 제가 더 사랑하는 쪽은 고흐라...(눼..맞아요...안물 안궁...맞습니다...)


에너지 법칙이란게 있다. 시간이 지나 에너지의 형태는 변하더라도 총 에너지는 변하지 않고 보존된다는. 그렇기에 죽어서 소멸됐다고 여긴 것 조차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세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마왕을 소개합니다. 







달과 6펜스 >>>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뷰가 영 시원찮다. 고갱은 여름에 읽고싶었는데.내년 여름 다시 읽고 리뷰를 보강할 생각이다. 

마왕신해철 >>> 왜 리뷰를 작성해두지 않았을까. 다시 마왕을 멤버들과 함께 읽어봐야겠다. 리뷰도 쓸겸! 


Epilouge 

1. 고흐에게.....어떤 의미였을까?

What might "stars," "paintings," and "Theo" have meant to Van Gogh? 




2. 고흐 음악 같이 듣기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고흐 음악을 들으려고 미니 씨디플레이어랑 꿈의 뱅앤올룹슨 스피커샀다.

2006년에 시음회를 가보고 내내 사고 싶었는데, 미니 스피커쯤은 사도 되겠지 싶어서 질렀다. 함께 들어봅시다:)



3. 제일 좋은 고흐 작품과 이유가 있다면?

고흐 그림 색칠하기 !

2021년 독서토론 <다시 보는 어린왕자> 참고


4. 고흐를 읽다가 논문을 찾아보게 될줄은!

뇌전증을 앓은 역사속 유명인들 (논문)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블라디미르 레닌, 프랭클린 루즈벨트, 그리고 반고흐까지 모두가 뇌전증을 앓았다. 논문에 의하면 반고흐 이전의 인물들 (시저, 나폴레옹) 의무기록이 없어서 역사에 기록된 내용에 의한 추론이고 반고흐는 본인이 남긴 편지와 의무기록에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측두엽 뇌전증이라는 병명을 진단받게 되었다.

(논문 요약 발췌) 뇌전증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록 중의 하나는 반 고흐가 1888년에 프랑스의 한 병원에 입원한 때의 의무기록과 당시의 편지인데, 그 입원의 동기와 경과는 다음과 같다. 1888년 10월부터 “Studio of the South”에서 동업을 하던 폴 고갱(Paul Gauguin)과 그 해 12월 23일에 크게 다투고는 그에게 술잔을 던지며 칼로 위협하고, 스스로 귀를 자르는 등의 행동을 하여 경찰에 신고되어 아를(Arles)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당시의 주치의는 Felix Rey라는 젊은 의사였는데, 그는 반 고흐에게 뇌전증을 진단하고 브롬화칼륨 (potassium bromide)을 처방하였다. 브롬화칼륨은 1970년대까지도 항경련제나 안정제로 사용된 약물로서, 반 고흐가 입원 후에 이 치료를 받고 약 3주만에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브롬화칼륨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자신의 증상이 매우 좋아졌다고 하였으며, 퇴 원 후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를 그려냈다.

이후 반 고흐의 뇌전증 진단은 1889년에 다시 한 번 확인 되는데, 생 레미(St. Remy)의 Théophile Peyron이라는 의사는 의 무기록에서 “반 고흐에게는 긴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뇌전증 발작이 있다고 본다.”라고 기록하였다. 한편, 반 고흐의 뇌전증에서 그 원인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당시에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술(absinthe)과 그 성분인 투우존(thujone)이다. 특히 반 고흐가 술을 마신 후에 정신증상이나 뇌전증 발작이 있었다다는 점에서 뇌전증 발작의 원인 물질로 지목되어왔다. 1873년에 는 épilepsie absinthique라는 명칭이 사용될 만큼 뇌전증과의 연관성이 입증되었고 1920년대에는 뇌전증 모델을 만드는데 사용하였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γ-aminobutyric acid-A 수용체 대항제로 작용하는 구체적인 기전이 밝혀졌다.

고흐의 뇌전증의 세부 분류에 대해서는 Gastaut가 1956년에 반 고흐에 대해서 정신 운동성 뇌전증(psychomotor epilepsy)을 언급한 후로, 측두엽 뇌전증에서 보이는 Geschwind syndrome(측두엽 뇌전증 환자에서 hypergraphia, hyper- or hypo-sexuality, circumstantiality, hyperreligiosity 등의 행동증상을 보이는 증후군) 등으로 설명하는 시도가 있었다. 반 고흐의 뇌전증은 정확 한 날짜와 자세한 증상을 여러 편지에서 세부적인 기록에 의거하여 확인할 수 있으며 뚜렷한 유발요인(투우존)도 있고, 여기에 무기록이 더해지므로 그의 뇌전증은 확실한 진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가능한 뇌전증의 세부 분류로는 측두엽 뇌전증이나 약물 에 의한 뇌전증 등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5. 테오는 왜 자살했을까? 

고흐의 어머니에게는 빈센트라는 큰아들이 있었다. 그가. 죽고 두번째 아이에게 빈센트 반고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셋째 아들 테오 반고흐는 자신의 아들에게 형의 이름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반고흐 어머니는 모든 아들을 잃었다. 



그래픽노블 빈세느 반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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