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뮤덕
가난한 화가 고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 펀딩 관련 회사의 채용을 도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가난한 화가 고흐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있었다면 나와 같은 이들의 후원으로 고흐가 조금 덜 죄책감을 가지고 그림 그리는 일에 열중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마음이 진 빚. 꿈이 진 빚에 늘 두 어깨가 무거웠던 화가
뮤지컬 빈센트 반고흐. 놀라고 슬펐다. 120년 전에 살았던 (지금은 천재화가라 인정받는) 그의 고민도 지금의 우리들처럼 '돈' 이었다니. 결국, 돈에 허덕이면서, 진짜 원하는 일을 하려면, 당장에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했던 고흐. <하고싶은일 해 굶지않아>라는 책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고흐는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건 가난한 사람들에겐 죄악이야.
밥도 빌어먹어야 하고. 근데 내겐 그런 그림이 전부야, 라고.
돈, 결국 돈이 꿈을 꾸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고흐는 화가공동체를 제안한다.
원없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의 그림 한점이 팔리면 그돈으로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그야말로 꿈 같은 공동체. 그런데, 힘들게 그린 자기 작품이 팔렸다고, 그 돈을 순순히 공동체에 내어주고 같이 나눕시다, 할 화가가 대체 몇명이나 되겠냐는 말이다. 낭만적인...화가양반.
고흐의 두 남자: 한줄기 희망'같았던' 고갱과 그리고 '희망'이었던 테오
여러번의 구애끝에 달랑 한사람 고갱이 고흐의 화가공동체에 동참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흐의 노력이 아니라, 형의 바람을 위해, 고갱에게 일정부분 돈을 줬던 테오의 지원사격때문에 가능했다.
고갱이 머릿속 상상을 그리는 화가 였다면, 고흐는 대상의 본질을 그려냈다.
심약하고 병약한 고흐와 달리 고갱은 건강했고 세련미가 넘쳤다. 어쩌면 너무도 뻔한 결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은 결국 상처만 남기고 헤어지게 된다. 귀잘린 자화상이 나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고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여운 영혼을 위해 조금 더 곁에 있어줄 수는 없었을까, 건강한 그가 좀 참아줄 수 없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갱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하나에 천착하면 다른 것은 쳐다보지 않을 정도록 광기어린 듯한 고흐의 곁에서 나라도 도망치고 싶었을거다. 세월은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평생을 죄책감과 열등감에 시달려야했던 화가.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돈 이야기를 할때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가족을 먹여살리는 일보다는 그림에 열중하던 자신을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동생들. 창녀 시엔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 자신이 그린 그림이 하나도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자기의 프라이드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동시대 화가들의 외면. 그가 미쳐갈 수 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넘버 '돈이라는 놈'
요즘 말이야 인물화를 그리지 못해 모델료가 없어서
그대신 정물화를 그려
요즘 말이야 언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어
물감을 모두 사버렸어 대신 예술가를 만나
항상 미안해 말로다 할 수 없지만
편지에 돈 이야기를 쓸 때마다 내 자신이 너무도 싫어
언젠가 갚을거라 믿고 싶지만 확신할 수 없음에 괴로운 날들 더 이상 부탁하고 싶지 않지만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지만 (돈은 내 영혼을 갈가먹는 벌레)
돈이 많아진다면 조금 더 주어진다면
마음이 진 빚
내 꿈이 진 빚
열정이 기술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진실이니 개성은 다 필요없는 건가.
형식과 구도를 기본으로 하는 밀레, 마네, 램브란트, 그들의 아우라는 대체 어떻게 나오는거지?
by 고흐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해볼만한 것
안다는 것.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진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고, 뮤지컬을 보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것. 다른 매체 특성에 맞춰 연출자가 의도한 방향이 아니라 공감각적이면서도 다양한 방향에서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읽다가 도저히 공감할 수 없어 끝내 책장을 덮었던 적이 있다. 그후로 조승우 덕질이 계시가 되어, 베르테르 뮤지컬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작품을 보고, 드물게도 세번이나 더 읽게되면서 진짜 아는 단계로 나아가게 됐다.
처음엔 나약하다 못해 사랑한다는 고백도 못해보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베르테르가 한심했고
다음번엔 닿으면 부서질듯한 유리같고 불안하고 나약한 남자에게 모호한 행동으로 여지를 준 롯데가 괘씸했다. 베르테르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책임이 마치 롯데에게 있는 것처럼 그녀를 몰아세웠다(속으로;).
그런데 가장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이전과는 달랐다.
권위적으로 보이고 무섭고 속좁게만 보이던 알베르트가, 나약한 베르테르가, 모호하게 행동해서 답답했던 롯데가 끝내는, 이해가 되고 저마다의 다른 환경과 성향에 맞게 형성된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뮤지컬뿐만 아니라 모든 공연에서는 연출자의 의도가 중요하다. 그가 이끄는 대로 관객은 베르테르를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며, 롯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기도, 요물처럼 보기도 하니까.
하지만 연출자의 시각으로만, 보기보다, 다각화된 채널과, 다양한 방향에서 두루두루 그 인물(혹은 사건, 작품)에 대해 공부해서 나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갖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그 작품이나 인물을 오해한다고해도, 그게 무슨 큰 대수랴.
에필로그
[무대 디자인의 힘]
일전에 고스트라는 뮤지컬을 보면서 다시는 아날로그 무대가 아닌 공연 LED가 솟구치는 무대는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빔 프로젝트와 조명을 활용하여 고흐의 그림에 색채감을 더하고, 생명력을 더하면서, 그림 속 배경이 무대와 하나가 되는 멋진 장면을 보면서 영상이 더해진 무대연출이 앞으로의 뮤지컬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겠구나 싶었다.
[배우, 김경수]
검색해보니 김경수라는 배우를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대학가요제에서 수상도 하고, 뮤지컬 시상식에서도 상을 받은 배우였는데 '앞으로 성장하실 것 같다며 성장운운하는 트윗멘션을 보내다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201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