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말 못 하는 동물에게 약 먹이는 일은
먹이는 사람이나 강제로 먹어야 하는 아이나 서로에게 참 힘든 일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
14년을 살다 간 내 반려견은 심장병으로 약 2년간 투병을 하다 떠났다.
그때 평생 강아지에게 먹여볼 약은 다 먹여본 것 같다.
약뿐만 아니라 주사를 직접 놓아 수액도 맞히고, 산소도 공급해주고
어떻게든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덜 힘들게 해주고 싶어서
당시에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끝내 병원에서 가슴 아프게 떠나보낸 기억 때문에
지금도 어지간하면 병원에는 가고 싶지가 않다.
냥비가 오고 일 년쯤 됐을 무렵이었다.
눈꺼풀 위에 평소에 없던 뭔가가 났길래 걱정스러운 마음에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수의사는 보더니 눈 다래끼라고 했다.
간단히 제거 수술로 떼어내면 된다고 해서
마취를 시키는 것이 내키진 않았지만 다행히 별문제 없이 제거했다.
근데 작년에 똑같은 위치에 또 재발하고 말았다.
제거했는데 왜 또 생긴 건지...
혹시 다른 병일까 싶어서 너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니 무서운 말들만 나와서 겁만 잔뜩 먹었다.
검색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가뜩이나 병원 가기 싫어하는 녀석인데 또 스트레스를 주기 싫었지만
계속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이번엔 다른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도 눈 다래끼라는 진단이 나왔다.
여기서 살짝 안도의 한숨...
그런데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냥비는 정말 병원을 싫어했다.
귀를 한껏 눕힌 채 수의사가 손을 대려고 하면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러니 진료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과거에 제거를 했는데 같은 자리에 또 생겼다면 수술로 떼어내도 또 생길 수 있다며
이번에는 그냥 약물로 치료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항생제랑 연고를 처방받아서 거의 3주를 먹였다.
이제까지 중성화 수술 때를 제외하고는 냥비에게 약을 먹여본 적이 없어서
알약으로 처방받은 건 처음이었다.
"알약이 먹이기 더 쉽긴 한데, 먹여본 적 있으세요?"
"고양이는 아직 먹여본 적 없지만 강아지는 수도 없이 먹여봤어요"
나는 해보겠노라며 호기롭게 알약으로 처방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자신 있게 도전!
인터넷 검색과 유튜브를 통해 고양이 알약 먹이기 영상을 수십 번 참고했으나
냥비는 캡슐이 팅팅 불도록 먹고 뱉는 일만 수차례 반복했고...-_-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손으로도 먹여보고, 필건도 써봤지만
고양이 약 먹이기에는 아직 나의 내공이 너무도 부족했나 보다.
하지만 점점 요령이 생기면서 3주째에는 제법 익숙해졌는데 -
개인적으로 가장 편한 방법은 약 먹이기 전에 담요로 갓난아기 싸듯이
냥비 몸을 감싸서 고정하고 먹이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가만히 있고 잘 받아먹었다.
지금은 담요 없이도 먹일 수 있게 되었다.
단, 약은 한 번에 먹여야 한다.
만약 실패했는데 연속으로 먹이려고 하면 반항할 수 있으니 좀 쉬었다가 다시 시도해야 한다.
연고는 발라주자마자 그루밍하려고 해서 넥카라를 해주었다.
그렇게 열심히 약을 먹어서 그런지 다래끼는 좀 줄어들었고(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음)
상처도 많이 아물었다.
한 번 수술을 했던 곳에 재발해서 지금 약간 혹처럼 되어버린지라
아예 없애려면 또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
없애더라도 같은 자리에 또 날 수도 있을 거라고 해서 사실 좀 고민 중이다.
아니, 많이 고민 중이다. 냥비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병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이게 다 못난 집사 탓인 것 같아 그저 미안한 마음뿐.
저러다 그냥 없어지면 제일 좋겠는데 참 내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걱정이다.
항생제 주사도 맞고, 약 먹느라 고생하고 있는 우리 냥비.
진정제 투여하고 깰 때 힘들어하는 거 보면서
정말 어지간하면 병원 갈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아프지 말자, 냥비야.